국내 파운드리의 자존심을 지키다
1980년대 이전의 반도체 산업은 반도체 설계, 생산, 조립, 테스트 등의 생산 과정을 일괄 처리하는 종합반도체기업(IDM) 위주로 성장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종합반도체기업들은 비핵심 영역을 아웃소싱하면서 핵심 역량에 집중했다. 이때부터 생산 라인(Fab•팹) 없이 반도체 설계만 전문으로 하는 팹리스(Fabless) 기업들이 생겨났다. 반도체 산업도 전문화•분업화 된 것이다. 이 무렵 반도체를 수탁 생산하는 파운드리 서비스가 등장했다. 미국 반도체기업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의 총괄부사장을 지낸 대만인 모리스 창이 처음으로 사업화하면서부터다. 그는 1987년 대만의 대표적인 반도체 기업 TSMC를 설립했다.
▲ 부천공장(Fab1) ▲ 상우공장(Fab2)
동부하이텍은 국내 유일의 순수 파운드리 기업이다. 경기 부천, 충북 상우에 자리 잡은 2개의 팹은 월 9만6000장의 200㎜ 웨이퍼를 처리할 수 있는 생산 능력을 가지고 있다. 2014년만 해도 동부하이텍의 공장 가동률은 70% 중반에 머물렀지만 현재는 90%대까지 올라섰다. 스마트폰용 전력반도체와 터치스크린칩, 보안카메라용 이미지센서, 초고해상도(UHD) TV용 디스플레이 구동칩 등 제품군 전반에서 주문이 늘었기 때문이다. 동부하이텍이 생산하는 LCD 구동칩(LDI), 이미지센서(CIS), 고전압반도체(High Voltage), 주문형 반도체(ASIC) 등은 TV, PC, 스마트폰, 자동차 등 다양한 제품의 핵심 부품으로 사용된다
동부하이텍은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각각 17.4%, 174.3% 증가한 수치다. 이는 아날로그반도체를 비롯한 제품 수주 증가에 따른 가동률 상승, 수년간에 걸친 원가절감, 신디케이티드론(차관단 대출) 이자율 인하, 환율 효과 등에 따른 것이다. 해외 시장 선전 역시 매출 증가에 한몫했다. 파운드리영업본부는 동부하이텍이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Analog/Power 공정 분야의 역량을 집중하면서 중국 고객을 다변화했다.
중국 반도체 시장에 뛰어들다
삼성과 애플에 편중됐던 스마트폰 시장에 중국 업체가 들어서며 변화가 일어났다. 지난해 스마트폰 출하량 상위 10개 업체 중 7개가 중국계 기업이다. 스마트폰은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중국 시장의 성장은 한국의 80~90년대의 성장과 비교할 수 있다. 최근 성장이 다소 둔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있지만, 중국이 세계에서 첫 번째로 손꼽는 이머징 마켓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동부하이텍이 중국에 본격적으로 발을 내디딘 것은 시장의 가능성을 확인한 2008년입니다. 이때부터 중국 시장 공략의 밑그림을 그려나갔죠. 사전조사를 통해 중국에 600여개의 팹리스 업체가 있다는 것을 파악했습니다. 우선 중국의 군소 업체들을 대상으로 프로모션을 진행했습니다. 그로부터 2년 뒤, 중국 내에 모바일(스마트폰), 보안, 자동차, 가전 시장이 확대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중장년층의 모바일 소비가 늘어나면서 해당 시장도 커지기 시작했어요. 기회를 놓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중국 현지 영업을 담당하고 있는 박종원 차장이 시장 진출 과정을 설명했다.
동부하이텍은 2013년 중국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며 상해에 지사를 설립했다. 중국 스마트폰용 반도체 주문 물량에 원활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다. 중국 내 팹리스 업체를 발굴하여 신규 거래선을 확보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당시 동부하이텍은 중국에 20여개의 팹리스 업체를 고객사로 확보하고 있었다. 동부하이텍은 중국 지사를 통해 스마트폰, 태블릿PC, TV 등에 들어가는 전력반도체, 센서, 터치칩 등 다양한 고부가가치 제품 수주 확대에 박차를 가했다.
“현재 상해 지사가 동부하이텍 파운드리 사업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상해에는 Onbright와 RDA 등 대형 팹리스들이 있습니다. 북경에는 다탕(Datang)과 수퍼픽스(Superpix)가, 심천에는 중국 전기차 시장 1위 업체인 BYD와 하이실리콘(HiSilicon, 화웨이) 등의 팹리들이 포진해 있고요. 각 지역별 거점을 중심으로 기타 지역들도 두루두루 파악 중입니다. 동부하이텍은 이들 기업과 파트너십을 맺고 다양한 반도체 칩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팹리스와 파운드리 기업간 긴밀한 협력은 팹리스 산업 발전의 핵심 요소입니다. 팹리스 기업이 미세 공정과 첨단 기능을 적용한 제품을 시장에 적기에 공급하려면 파운드리 기업과 사전 기술 협력이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현지에서 근무 중인 동부하이텍 직원들은 주요 고객들이 위치해 있는 상해, 북경, 심천 등 3개 지역을 오가며 업무를 소화해 내고 있다. 박종원 차장은 지역 간의 이동조차 만만치가 않다고 말한다. 땅이 워낙 넓은 탓이다. “중국의 북쪽에 북경이 있고 중간에 상해, 남쪽에 심천이 있습니다. 상해를 중심으로 다른 지역을 오가고 있습니다. 북경에서부터 심천까지 넉넉잡아 3천키로 정도 됩니다. 비행기를 타면 북경이든, 심천이든 2시간 반이면 가지만 날씨가 안 좋거나 비행기 표를 놓칠 때는 어쩔 수 없이 기차를 이용해야 합니다. 기차를 탈 경우 상해에서 북경까지는 5시간, 심천까지는 12시간이 걸립니다. 평소에는 일 생각하느라 잊고 지내다가도 이럴 때마다 중국에 있음을 실감합니다.”
중국 반도체 시장을 사로잡다
동부하이텍의 중국 진입 과정에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하지만 탄탄한 기술력이 모든 과정을 이겨내게 만들었다. 파운드리영업본부 해외영업팀 김태규 과장은 동부하이텍의 강점으로 ‘신뢰성’과 ‘CIS•BCD 공정’을 꼽았다.
신뢰성 제품 기능의 시간적 안정성을 나타내는 개념이다. 제품이 갖추고 있어야 할 품질을 일정 기간 유지하고 큰 사고에 이르는 일 없이 고객만족도를 확보하는 것을 뜻한다. 신뢰성 확보를 위해서는 내구성, 안정성, 설계 신뢰성에 대한 고려가 충분히 이루어져야 한다. |
“동부하이텍의 경쟁력은 저전력 아날로그 반도체 공정기술에 있습니다. 우리 공정에 대한 중국 내 평판은 현재 세계 파운드리 업계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TSMC와 견줄 정도로 좋습니다. 픽셀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복잡한 공정들을 거쳐야 하는데, 그것을 구현할 독보적인 기술을 동부하이텍에서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CIS 공정을 사용하는 중국 팹리스 업체 가운데 한 곳을 제외한 나머지 업체 모두 동부하이텍의 공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중국 현지 파운드리 업체들보다도 특성이 훨씬 월등하다는 평입니다.” (김태규 과장)
동부하이텍은 후면조사형(BSI, Back Side Illumination) CIS 공정도 개발 중에 있다. 시장이 BSI로 이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BSI CIS는 반도체 웨이퍼 뒷면을 가공해 빛을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기존 전면조사형 CIS는 이미지센서 상부에 위치한 배선 때문에 빛이 퍼지는 문제가 있었다. BSI는 배선 층이 아래에 있어 빛 손실이 없다. 따라서 보다 나은 사진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고 촬영 감도 역시 높아진다.
파운드리 사업은 메모리반도체처럼 대량생산을 통한 원가경쟁력으로 승부하는 분야가 아니라 다양한 주문형 반도체를 고객의 니즈에 따라 생산하는 게 특징이다. 규모에서는 다소 밀리더라도 특화된 기술로 틈새시장을 집중 공략하면 승산이 있을 것이다. 동부하이텍은 안정적인 공급을 위한 대형 고객사를 확대하고, 중국을 중심으로 확대되고 있는 중저가 스마트폰 시장에서의 점유율 확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
동부하이텍은 그동안 스마트폰 분야에서 쌓아온 전력반도체와 센서 기술력을 바탕으로 신성장분야로 주목 받고 있는 사물인터넷(IoT), 웨어러블, VR(가상현실) 등에도 사업을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시장조사기관 IHS에 따르면 올해에도 웨어러블•IoT 분야에서 반도체 수요가 늘면서 파운드리 시장이 향후 수년간 연평균 7% 수준의 성장을 지속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중국 시장은 이미 최첨단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는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현재 중국에서는 보험, 화재 등 2, 3차 산업도 부흥하고 있습니다. 그룹 내에서도 많은 기회가 있을 거라고 봅니다. 최첨단을 걷고 있는 반도체 쪽은 더할 나위 없겠죠. 우리는 톱을 노릴 수 있는 하드웨어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장성이 큰 중국 반도체 시장에서 영역을 더욱 확대하고, 또 다른 이머징 마켓 진입에 속도를 높여 시장을 넓혀 나가겠습니다. 동부하이텍 짜요(加油)! 동부그룹 짜요(加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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