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화성 시내에서 나와 남양리로 빠지는 길로 가다 보면 멀리 숲이 울창하고 높지 않은 동산이 보입니다. 안으로 조금 들어서면 높이 쌓아 올린 두 개의 붉은 벽돌 탑이 눈에 들어와요. 두 탑은 무척 강렬하게 사람을 끌어들입니다. 이곳으로 다다르는 길은 유서 깊은 산사에 들어가는 길처럼 호젓하답니다. 곧게 뻗은 길을 천천히 올라가다 보면 어느새 두 탑이 눈앞에 우뚝 서 있죠. 이곳 남양성모성지에서는 기적이 일어나고 있어요. 건축, 조각, 조경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국내외 작가들이 한 데 모여 야트막한 동산을 문화 성지로 탈바꿈 시키고 있답니다.
# 세계적 작가와 3만 명이 만든 기적
건축은 지어질 공간이 드러낼 인상과 그 안에 내재된 잠재성을 탐구하는 데 초점을 둡니다. 건축물을 설계하는 일은 주위 환경과 잘 어울리는 형태를 만들고 그것에 꼭 맞는 다양한 활동과 정서적인 경험을 불어넣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어요.
종교건축의 핵심은 어디론가 ‘들어가는 길’을 만드는 일인데, 그곳에 다다르면 자신이 왔던 길을 돌아보게 되고 ‘신 앞에 선 단독자’가 되어 절대자와 교감하게 되는 것이죠. 사람들은 성스러운 공간에 머물며 명상하고 기도할 수 있기를 원하는데, 종교 건축가는 침묵과 명상, 기도를 위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역할을 해석하고,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건물은 시각적 인식과 감성적 관계를 형성하는 3차원 모델의 빛과 형태를 구성합니다.
남양성모성지는 그런 종교건축의 기본에 아주 충실하며 많은 은유와 상징을 그 안에 자연스럽게 녹여냈어요. 스위스 건축가 마리오 보타, ‘건축가들이 가장 존경하는 건축가’로 꼽히는 스위스 건축가 페터 춤토르, 이탈리아 조각가 줄리아노 반지, 한국의 승효상, 한만원, 이동준 건축가와 정영선 조경가 등이 10년 넘게 이 장소를 만드는데 몰두하고 있답니다.
남양성모성지는 1866년 병인년에 박해를 받고 처형된 무명의 천주교 신자들을 현양하는 순교지입니다. 오랫동안 방치되다가 1983년부터 성역화가 시작됐지만, 1989년 성지 조성 임무를 맡고 이상각 신부가 부임했을 때만 해도 성지에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땅은 아카시아 나무만 듬성듬성하게 있는 골짜기이자 농지에 불과했죠.
이상각 신부는 이곳을 자연과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걷기도 하고 명상하는 곳으로 만들고 싶었죠. 마음 속에는 담양의 소쇄원을 염두에 두었답니다.
이후 35년 동안 이상각 신부는 건축주 대표로 성지 조성 프로젝트를 끌어가고 있어요. 산책길, 휴게 공간, 명상과 기도를 위한 순례 행렬을 하나하나 만들면서 남양성모성지를 ‘도심 속 안식처’로 바꾸고 있답니다. 이곳을 걷다 보면 오랜 시간 이 땅에 들인 그의 정성과 수고로움이 느껴집니다.
1991년 한국의 첫 성모 성지로 선포된 남양성모성지는 교황청에서 선정한 세계 30곳의 성모 성지중 하나로 10만 평에 달하는 거대한 공원입니다. 건축주는 3만 명이 넘으며, 월 2만 원씩, 50개월 기부에 나선 천주교 신자들이지요.
2011년에는 남양 성모마리아 대성당을 건립하기로 하고 스위스 건축가 마리오 보타에게 설계를 의뢰했어요. 그리고 마침내 햇수로 10년이 되는 2020년에 본당 건축이 완성되었답니다.
# 대성당을 건축한 ‘영혼의 건축가’, 마리오 보타
마리오 보타는 아직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여든 나이의 현역 건축가입니다. 그의 작업은 스위스 뿐 아니라 전세계에 무수히 많이 지어졌는데 줄무늬를 섞은 벽돌과 기하학적 형태를 능숙하게 다루는 방식이 시그니처라 할 수 있어요.
우리나라에서도 붉은 벽돌을 높이 쌓아 올린 교보문고 강남사옥과 이태원 리움미술관에 있는 원형 건물 등이 우리에게 익숙하죠. 또한 그는 종교 건축물도 많이 설계해 ‘영혼의 건축가’라고도 불린답니다. 독특한 조형과 감성으로 이루어진 성스러운 공간이 인상적이죠.
이상각 신부는 마리오 보타에게 대성당 설계를 의뢰하며 세 가지를 부탁했답니다. “빛으로 충만하고, 소리가 좋으며, 관리비가 많이 안 드는 대성당을 지어달라”는 것이었어요. 이에 보타는 “대성당은 디테일이 생명이니, 서두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대성당을 설계하는 데만 꼬박 5년 걸렸어요. 대성당의 형태는 골짜기에 자리 잡은 대지에서 영감을 받았는데, 보타는 골짜기의 지형을 두 개의 탑을 통해 완성하고 일종의 울타리를 만들고자 했죠.
주변에 울창한 숲과 광활한 언덕이 펼쳐져 있는 남양성모성지에서도 가장 중요한 위치에 놓인 대성당은 나지막한 산에서 도시로 이어지는 남북축의 계곡 사이에 있어요. 보타는 성지의 끄트머리 골짜기에 마치 댐처럼 건축면적 4,953㎡의 대성당을 살짝 묻었답니다. 자연 지형을 중요하게 고려하다 보니 커다란 볼륨을 지닌 공간은 대부분 지하에 계획했어요.
그리고 앞부분에 52m 높이의 원통형 타워 두 동을 세웠어요. 두 개의 탑 사이에 50m의 긴 빛의 틈이 생겼고 성당 내부로 비치는 자연광은 섬세한 빛의 결을 이루며 마리오 보타 고유의 영적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어요.
그리고 앞부분에 52m 높이의 원통형 타워 두 동을 세웠어요. 두 개의 탑 사이에 50m의 긴 빛의 틈이 생겼고 성당 내부로 비치는 자연광은 섬세한 빛의 결을 이루며 마리오 보타 고유의 영적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어요.
대성당은 약 60만 장의 붉은 벽돌로 지어졌어요. 벽돌로 쌓기 까다로운 포물선, 원통 모양의 디테일이 수두룩하답니다.
타워의 모습이 강렬하다 보니 성지에 도착하면 자연스레 대성당을 향해 걸어 나가게 되는데요. 마리오 보타는 “건축의 힘이 그 규모나 물리적인 형태가 아니라 주변 환경, 즉 풍경과 건축 환경이 이루는 공간적 관계성에서 온다”라고 말합니다.
# 빛과 소리의 향연, 대성당
마치 거대한 벽을 만나는 듯했던 외부의 느낌은 내부로 들어가면 완전히 반전이 된답니다. 보타는 신자들의 공간은 수평적이기를 바랐어요. 작은 안내판부터 의자, 파이프 오르간 디자인, 십자가와 성화 설치까지 세세한 모든 것이 보타의 손을 거쳐 탄생했답니다.
‘빛의 타워’의 타원형 천창으로 빛이 깊게 떨어지고 둥근 천장에서도 빛이 머물러서인지, 무언가 둥그렇고 부드러운 공간에 안온하게 안겨 있는 느낌이 들어요. 기존의 성당들이 가지고 있는 절대적인 느낌이나 웅장함과는 사뭇 다르답니다.
유리 천장을 통해서는 내부로 빛이 쏟아지는 타워 아래에는 제대(祭臺)를 설치했어요. 때론 이 빛이 천사의 날개 모양을 그려내기도 합니다.
또한 대성당은 충분한 울림과 명확한 소리 전달이 이뤄지도록 설계됐어요. 성당의 천장과 벽을 둘러싸고 있는 이중벽은 막혀 있지 않고 뚫려 있는데, 그 사이를 단풍나무 패널이 촘촘히 에워싸고 있어요. 마치 거대한 오디오 스피커나 악기의 내부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분위기랍니다.
마리오 보타는 “오늘날 교회를 세우는 것은 과거로부터 이어진 역사의 연속성을 위한 일이고, 또한 풍경에 균형을 주는 일”이라며 “기도의 장소에 들어서면 침묵과 존경의 순간이 저절로 찾아오는데 그때 건축이 사람들을 도울 수 있어야 한다”라고 설명합니다.
대성당의 제단에 걸린 십자가 조각과 성화 ‘최후의 만찬’과 ‘수태고지’는 이탈리아 조각가 줄리아노 반지의 작품입니다. ‘20세기 미켈란젤로’라고도 불리는 그에게 작업을 부탁한 것도 마리오 보타였답니다.
십자가에 매달린 채 고개를 떨구고 있는 일반적인 예수상과 달리, 두 눈을 뜨고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는 예수상은 낯설고 충격적이죠. 십자가 뒤에서 거꾸로 박은 날카로운 못은 손과 발을 뚫고 나와 45도가량 하늘로 솟아 있어요.
높이 3m, 길이 10m의 성화 두 점은 특이하게도 뒷면이 그려져 있는데, 최후의 만찬 중인 예수와 열두 제자의 뒷모습, 천사로부터 수태고지를 받는 마리아의 뒷모습을 볼 수 있어요.
대성전에는 약 1,500명의 신자를 수용할 수 있는 집회 공간이 있고, 측면에는 8개의 작은 제실이 있어요. 각 제실에는 예루살렘의 성 프란치스코 수도회에 머물며 무덤 성당, 겟세마니 성당, 최후의만찬 수도원 등의 관리와 순례자 안내를 맡았던 안선호 베다 신부께서 성지를 보수할 때 간직했던 예수의 무덤 돌, 성모의 무덤 돌 등이 봉헌돼 있습니다.
지하 1층에는 평일 미사를 열 수 있는 350석 규모의 소성전이 있고 그 옆으로 성소, 상점, 화장실 등의 부대시설을 마련했답니다. 마리오 보타는 “한국 교회에 주는 반지의 선물”이라며 설계비로 사무실에서 작업하는 직원들의 비용 수준만 청구했어요. 줄리아노 반지 역시 작품료로 재룟값 수준만 받았죠. 십자가와 그림을 현장에서 설치하는 비용이 더 많았을 정도였어요.
# 순교지에서 치유의 땅으로
마리오 보타의 생각대로 대성당은 거대한 규모에도 불구하고 골짜기처럼 움푹 파인 대지에 잘 스며들어 있어요. 계곡의 댐이나 산등성이 사이의 구름다리처럼, 웅장하면서도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룹니다.
세계적 작가들과 3만 명이 만든 기적은 이후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지요. 대성당의 설계를 마리오 보타에게 맡긴 후 이상각 신부는 페터 춤토르를 만나 성지에 작은 기도실 설계를 의뢰했어요. 페터 춤토르는 이를 수락하면서 한국에 그의 첫 프로젝트가 들어서게 될 예정이랍니다. 페터 춤토르는 이곳에 작은 티 채플(TEA CHAPEL)을 제안했고, 치유와 명상의 공간으로 조성할 계획입니다.
남양성모성지에는 대성당과 티 채플뿐만 아니라, 성지 순례자와 방문객, 그리고 지역을 위한 평화 나눔센터도 함께 조성될 예정입니다. 평화 나눔센터는 건축가 이동준이 맡았어요. 성지의 랜드스케이프 디자인에는 건축가 승효상이 참여했는데 ‘순교자의 언덕’을 조성하고 있답니다.
이상각 신부는 “작은 사람들의 작은 정성이 모여 여기까지 왔다”며 “힘들고 지친 현대인들이 이곳에서 따뜻한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소망했어요. 순교지에서 치유의 땅으로 변모하고 있는 남양성모성지는 힘든 시절을 기적처럼 살아가는 모두에게 희망을 건넬 채비를 하고 있답니다.
이상각 신부는 “작은 사람들의 작은 정성이 모여 여기까지 왔다”며 “힘들고 지친 현대인들이 이곳에서 따뜻한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소망했어요. 순교지에서 치유의 땅으로 변모하고 있는 남양성모성지는 힘든 시절을 기적처럼 살아가는 모두에게 희망을 건넬 채비를 하고 있답니다.
크지는 않지만, 깊은 계곡,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가면 성당은 점점 크게 보이다가 그 앞에 이르면 거대하고 절대적인 존재로 나타나요. 길의 끝에 이르러 만나는 성당, 그리고 그 안에 있는 포근한 내부 공간과 더불어 오랜 시간을 들여 조성한 길도 좋아요. 그 길 주변의 다양한 나무와 성지를 상징하는 조각들 사이로 사람들이 스며드는 모습을 보면 현대의 종교건축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남양성모성지는 종교라는 울타리라기보다는 그저 사람들이 자연을 느끼고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자신과 신을 만나게 하는, 과거의 역사적 의미뿐만 아니라 현재와 앞으로 이루어질 미래를 함께 경험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장소가 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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