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짜인 동선, 몰입할 수 있는 큐레이션을 자랑하는 대림미술관의 새로운 전시는 일본 팝아트의 거장인 ‘케이이치 타나아미’의 전시입니다. 전후 일본 미술계의 아이콘이자 동서양의 경계를 넘나든 예술가로서, 그 중요성을 논할 때 결코 빠트릴 수 없는 이름인 케이이치 타나아미는 단순한 미술가를 넘어 현대 예술 트렌드의 선구자이자 문화적 혼합의 대명사로 길이 남을 것 같습니다.
'케이이치 타나아미’는 동양의 앤디 워홀로 불릴 정도의 독창성을 바탕으로 다채로운 작품들로 자신만의 세계를 표현해 왔는데요. 국내 최초 특별전으로 대림미술관에서 열린 케이이치 타나아미의 여정과 유산을 한 번 감상해 볼까요?
# 아시아 팝아트의 선구자 케이이치 타나아미 특별전 (Keiichi Tanaami : I’M THE ORIGIN)
• 위치 :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4길 21 대림미술관 7
• 운영 : 2024.12.14 (토) – 2025.06.29 (일)
화-목,일 11 : 00 – 19 : 00, 금-토 20 : 00 종료 (입장마감 1시간 전, 월요일 휴무)
• 가격 : 상시할인 7,500 – 10.500원
이번 전시에서는 미국 만화와 팝아트에서 영향받은 실크 스크린 ‘노 모어 워(NO MORE WAR)’ 시리즈, 미국 대중문화를 재해석한 ‘굿-바이 마릴린 (Good-by Marilyn)’, 어린 시절 경험한 전생과 재생의 이야기를 담은 ‘죽음과 재생의 드라마(The Story of Death and Rebirth)’ , 팬데믹 기간에 제작한 ‘피카소 모자상의 즐거움(Pleasure of Picasso-mother and Child)’ 시리즈 등 대표작들을 모두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도쿄에서 태어난 타나아미는 어린 시절 제2차 세계대전을 직접 겪으며 미국폭격기, 섬광, 공중 정찰기 등 직접 목격한 전쟁의 끔찍한 기억을 평생 작품 활동의 근본적 원동력으로 삼았습니다. 그의 작품을 들여다보면 폭격기와 도시의 파괴, 화염 등 전쟁을 상징하는 혼돈의 이미지들이 자주 표현되는 걸 발견할 수 있는데요.
타나아미는 나아가 삶과 죽음, 일본이 서구 문화와 충돌하고 융합하는 과정, 동서양의 경계를 넘나드는 과정을 작품에 반영하며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작품으로 표현합니다.
# INTO TANAAMI’S WORLD 펼쳐진 어둠과 그 너머의 세계
입장과 동시에 보이는 1층 공간에서는 거대한 설치물, 아치형 다리를 주제로 한 미디어와 병풍 형식의 콜라주로 표현한 ‘백 개의 다리(A Hundred Bridges)(2024)’ 로 전시가 시작됩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방공호로 피신하며, 밤 하늘 전체를 뒤덮는 진홍빛 화염이 무지개다리처럼 반원을 그리며 아른거리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고 하는데요. 그의 작품 속에서 다리는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인간의 삶과 죽음, 현실과 이상 등의 다양한 주제를 연결 짓는 철학적인 매개체로 등장합니다.
본격적인 그의 작품 세계로 들어가 볼까요? 1층에서 작가 특유의 세계관을 확인할 수 있었다면 2층부터는 작가의 본격적인 작품들을 만나보게 됩니다. 실크스크린과 콜라주 작품을 통해 미국 대중문화와 팝아트의 영향을 받으며 창조된 시리즈가, 3층 공간에서는 전쟁과 질병으로 인한 트라우마와 환각적 경험에서 비롯된 심리적 불안을 표현한 작품이 소개됩니다. 타나아미의 독창적인 조각과 영상 작품이 펼쳐지는 4층까지의 전시를 통해 작가의 풍부한 창작 세계에 몰입할 수 있습니다.
# IMAGE DIRECTOR
한계를 지정하지 않는 다양한 매체 실험과 작업 방식, 그래픽 디자이너에서 순수 예술가가 되기까지
유년 시절 만화가를 꿈꾼 작가는 어린 시절 경험한 전쟁의 기억과 당시 접한 미국 잡지, 만화, 영화 속 이미지로부터 영향을 받아 장르와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작품 세계를 구축해 나갔습니다. 1975년 월간지 [플레이보이(Playboy)] 일본판의 첫 아트 디렉터로 임명되며 독창적인 레이아웃으로 주목받은 타나아미는 개인 작업도 꾸준함을 잃지 않았는데요.
특히 팝아트, 사이키델릭아트 등의 영향을 받은 타나아미의 포스터 작업은 작가만의 독창적 시각적 언어로 표현되며 계속하여 디자인에 탐구를 이어나갔다고 합니다.
미국 잡지, 엽서, 만화 속 이미지와 일본 대중 매체 등 다양한 이미지를 활용해 제작한 300여 점의 콜라주 작업은 그의 예술 세계의 초석이 되어 기존의 콜라주 작업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그만의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됩니다. 작가는 아트 디렉터, 디자이너, 그래픽 아티스트 등 다양하게 활동하며 팝아트의 선구자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으며 동양의 앤디워홀이라 불렸죠. 상업성과 순수 예술의 경계를 허물고 ‘이미지 디렉터’라고 스스로를 칭하며 독창적인 정체성을 구축했습니다.
# CREATIVE ILLNESS
투병 이후 꿈, 환각, 환영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예술적 탐구와 혁신
타나아미는 1981년 결핵으로 인해 투병을 시작합니다. 디자이너로서의 커리어를 정리하고 전업 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한 타나아미는 생사의 기로에서 경험한 환각과 환영의 트라우마를 토대로 강렬하고 독자적인 시각적 스타일을 본격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삶과 죽음’을 상징하는 모티브를 등장시키거나 회화, 조각 등 완전히 새로운 작업 방식들을 시도합니다.
천장까지 빼곡히 진열되어 있는 <피카소-모자상의 즐거움 (Pleasure of Picasso-Mom and Child)> 시리즈를 천천히 살펴보세요. 코로나로 인해 활동이 취소되자 타나아미는 경전을 필사하듯 자신만의 해석을 입혀가며 피카소의 작품을 묘사하기 시작합니다. 240여 점의 피카소 시리즈는 2020년 팬데믹 당시 타나아미가 몰두했던 작가의 창작을 향한 열정을 보여주죠.
# TANAAMI’S UNIVERSE
전설적인 만화가 후지오 아카츠카와의 협업, 지나 온 순간들을 회고한 타나아미 스타일의 정점
2024년, 88세가 된 타나아미는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의 기억을 섞어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반영한 대형 작품들을 제작합니다. 작품 속에는 전쟁 장면을 연상시키는 거친 파도 위를 떠다니는 전투기, 미국 만화책에 등장하는 캐릭터 등 초기 시절 모티브를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이한 모습과 형태의 생명체들은 작가 자신을 비롯해 전쟁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이자 두려움에서 해방된 존재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예술을 통해 긍정적 이미지로 전환시키고자 하는 타나아미의 의지를 보여줬어요.
10대 시절부터 만화가 후지오 아카츠카의 팬이자 만화가를 꿈꿨던 타나아미는 공교롭게도 아카츠카가 세상을 떠난 이후 그의 작품과 콜라보 작품을 제작하게 됩니다. 아카츠카 만화의 핵심 요소와 타나아미만의 감각적인 색채가 결합되어 탄생한 작품들 속에서 아카츠카의 심볼과 그것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찾아보세요.
# TANAAMI’S CABINET
다양한 브랜드들과의 협업, 실험적인 시도를 통해 탄생한 무한한 예술의 가능성
이번 대림미술관 ‘타나아미 케이이치’ 전시는 미술관 옆 카페로 이어지며 큰 규모를 자랑합니다. 그동안 타나아미가 브랜드들과 함께 협업하여 탄생한 다양한 콜라보 작품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아디다스, 바비 등 글로벌 패션 브랜드와 아티스트들과 세대를 뛰어넘는 콜라보를 선보인 타나아미의 작품들을 감상해 보세요. 타나아미는 80이 넘는 나이가 되어서도 아디다스, 베어브릭, 스투시 등 다양한 글로벌 브랜드들과 협업하며 세련되고 감각적인 작품들을 선보입니다.
“어떤 일이 대담하고 흥미롭지 않다면,
그것을 해야 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나는 멈출 수 없다.”
삶의 강렬한 기억과 경험을 양분 삼아 일생을 걸쳐 지켜 온 예술 활동을 한 번에 만날 수 있는 전시였습니다. 타나아미만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셨나요? 대림미술관 앱을 이용하면 각 섹션과 주요 작품에 대한 설명을 무료로 들을 수 있어 전시 감상 전후로 참고하기 좋을 것 같아요.
화요일부터 일요일은 11시, 12시, 13시 일3 회 무료 도슨트가 함께 준비되어 있으니 함께 들으며 관람한다면 전시를 보다 폭넓게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미술관 옆집으로 이어지며 보통의 전시보다 대규모로 준비된 케이이치 타나아미의 전시. 어떠셨나요? 이어지는 생의 단계에 따라 영향을 받고 변화를 반복한 작가의 창작 여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는데요. 끊임없이 새로운 변화를 모색했던 작가의 작품 세계가 궁금해지셨다면, 대림미술관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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