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원’이라는 이름은 국보 금동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에서 가져왔어요. 국립중앙박물관은 이 작품에 대해 석가모니가 태자였을 때 인생의 덧없음을 사유하던 모습이라고 소개합니다. 사유원은 자연과 건축물을 통해 인생을 사유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공간인 셈입니다. 그래서인지 사유원의 건축물은 마치 침전하듯 콘크리트 속으로 이어지지만, 그 마지막에는 도리어 자연을 거대하게 펼쳐 보입니다. 내면을 들여다보는 여정 속에 웅장한 자연의 깨달음이 다가오는 전개죠. 미학보다는 철학을, 외형보다는 본질을 추구한 것이죠. 사유원의 열 일곱 지점을 천천히 산책하며 차례로 둘러보았습니다.
#1. 치허문, 비움에 이르러 평온을 지키다
사유원의 정문은 붉은빛 도는 강철판으로 만들었어요. '수목원'으로 자처한 곳에 강철 소재를 사용한 것이 이질적이면서도 녹 오른 철의 쇠락이 되려 자연과 어우러집니다.
정문으로 사용되는 ‘치허문’(致虛門)'은 건축가 승효상이 설계했어요. 이름은 도덕경 제16장 "극도의 비움에 이르러 지극한 평온을 지키다"라는 뜻의 '치허극 수정독(致虛極 守靜篤)'에서 가져왔답니다.
승효상은 사유원의 설계와 건축에 생각과 손을 보탰어요. 그가 사유원에 지은 건축물은 굵직한 것만 모두 다섯 개. 이 외에 정문과 각기 다른 형태의 생태 화장실, 벤치와 조명, 식수대 등 수목원 부대시설을 같은 강철 소재를 사용해 세심하게 디자인했어요.
치허문 입구에서 출입증과 지도, 엽서와 식사권을 받았어요. 입장하자마자 사유에 빠진 미륵보살이 온화한 미소로 반깁니다. 오른손에 볼을 댄 미륵보살은 현세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을 위한 상념에 잠겨 있어요. 사진작가 준초이가 국보 제83호 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을 담은 작품입니다.
계단을 조금 오르면 완만한 경사 길이 나와요. 비나리 길입니다. 걷는 동안 비워지고 비워져 극도의 비움에 이를 수 있다면 좋을 거예요. 산등성 위로 아침 햇살이 들기 시작했어요.
숨이 차오를 즈음 '좌망소(坐忘所)'가 쉴 자리를 내밀어요. '고요 속에 머무는 곳'이에요. '좌망'은 조용히 앉아서 잡념을 버리고 무아의 경지에 들어가는 수양 법을 일컫는 답니다.
사유원에는 곳곳에 한자가 있어요. '붕소(鵬所), 새의 정원'처럼 정원의 경관마다, 건축의 공간마다 한자로 이름이 붙어있어요. 심지어 나무 벤치에도 ‘고요히 머물며 마음을 비우는 곳’이란 뜻의 ‘좌망심제(座忘心齊)'란 한자를 박아 놓았죠.
한자는 지어 붙인 이름이기도 하고, 경관을 보는 감상이기도 하며, 때로는 한 줄짜리 시(詩)이기도 해요. 한자의 뜻을 새기고 나면 사유원의 풍류와 운치를 훨씬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어요.
'우리들은 이제
별 담은 샘물 한두 잔 비우고는
마련된 쉴 곳으로 모두
돌아갈 것이다'
#2. 소요헌, 하루를 성실하게 소모하는 일
비나리 길에서 이어진 초하루길의 끝은 콘크리트 장벽이 늘어선 건축과 닿아 있습니다. 건물은 땅속으로 스며들듯이 뿌리내리고 있어요. 콘크리트 장벽에는 담장을 넘어온 자연의 덩굴이 실핏줄처럼 퍼져가는 중입니다.
2021년 9월 개장한 사유원은 팔공산 지맥에 위치한 70만 평방미터의 광활한 공간이에요. 발길이 닿는 곳마다 세심한 인간의 손길과 자연의 시원을 동시에 느낄 수 있죠.
사유원은 개장 당시부터 쟁쟁한 건축가가 참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입소문을 탔어요.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승효상을 비롯해 프리츠커 건축상을 수상한 포르투갈의 건축가 알바로 시자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설레게 했습니다.
사유원을 대표하는 ‘소요헌(逍遙軒)’은 시자의 작품입니다. 피카소의 걸작 [게르니카]와 [임신한 여인]를 전시하기 위한 ‘아트 파빌리온’으로 설계됐는데요. 본래 스페인 마드리드 오에스테 공원에 지으려 했으나 작품 유치와 건축이 취소되면서 설계도로만 남아 있다가 사유원에 세워졌어요.
소요헌이란 이름은 장자의 ‘소요유(逍遙遊)’에서 따왔습니다. ‘우주와 하나가 돼서 평안하게 노닌다’는 의미로 절대 자유의 경지를 나타내요.
소요헌은 긴 상자처럼 생긴 콘크리트 구조물을 Y자 모양으로 연결했어요. 두 갈래로 갈려 한쪽은 삶을, 다른 한쪽은 죽음을 상징합니다. 전쟁의 폭력과 참상 그리고 그 너머의 희망을 말하고 있죠.
왼쪽 죽음의 길 끝에는 지붕을 뚫고 떨어지는 강철 구조물이 있어요. 한국 전쟁의 격전지였던 이곳에 폭력과 전쟁을 형상화한 공간을 구현했습니다. 오른쪽 삶의 길 끝에는 생명의 탄생과 희망을 상징하는 커다란 알 모양의 조형물이 놓여 있어요.
사유원을 거닐다 보면 유명한 건축가의 건축물을 보는 것도 가치 있지만 그 건축물이 자연과 얼마나 잘 어우러져 있는지 건축물이 건축물 자체로 보이지 않고 자연 속에 파묻혀 오히려 돋보이지 않는다는 점에 놀랍니다.
특히 사유원에서는 길게 놓인 의자에 한 번씩 앉아보아야 해요. 그 자리에서 시선이 낮아질 때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답니다.
낮아짐은 삶의 실상을 마주하게 해요. 다른 사람의 형편을 헤아리는 배려를 선물로 받습니다. 삶은 낮아짐을 통해 세워지는 것이죠.
소요헌 입구에는 알바로 시자의 드로잉과 가구를 전시해 둔 라이브러리, '요요빈빈(姚姚彬彬)'이 있어요. 통유리로 내다보이는 자연마저 지극히 건축적입니다.
#3. 소대, 새 둥지 전망대
소요헌에서 나와 오른쪽 거님길로 완만한 경사를 내려가면 알바로 시자가 설계한 전망대 ‘소대(巢臺)’가 보여요. 20.5미터 높이의 전망대는 앞으로 15도쯤 기울어져 있는데요. 오히려 자연스러워 보여요.
소대 뒤편 잔디 끝에는 멀리 팔공산과 치허문과 마주한 창평저수지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너른 평상이 놓여 있습니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햇살 속에서 생각을 비우기에 안성맞춤입니다.
기울어진 전망대에 오르는 동안에는 벽의 기울어짐을 온전히 온몸으로 느낄 수 있어요. 컴컴한 계단을 오르다 이내 중간에 뚫려 있는 창 풍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두 개의 창은 소요헌을 향하고 한 개의 창은 '현암'을 거쳐 소유원 산자락을 관통해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명정'을 향하고 있어요. 앞으로 헤치고 갈 길이 저 깊은 숲 안에 놓여 있는 것이죠.
소대는 시자가 ‘소요헌을 한눈에 전망할 수 있는 곳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사유원에 요청해 마련됐어요. 그의 목적대로 소대의 창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요헌의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소대 전망대에서는 너른 평상에서 보았던 팔공산과 저수지 물길이 새의 눈 높이에서 내려다보여요. 소대란 이름은 ‘새 둥지 전망대’라는 뜻인데요. 머무르는 시간 내내 시원한 바람이 소대를 감싸며 지납니다.
소대 외벽을 담쟁이가 기어이 타고 오르고 있어요. 올해는 이만큼, 또 다음 해에는 저만큼 올라 마침내 장벽을 뒤덮고 장벽을 넘어서겠죠.
생명이 뻗친 길이 실핏줄 같아요. 생명은 울렁이는 동맥의 힘으로 실핏줄 끄트머리까지 피와 산소를 보냅니다. 이 위대한 건축과 공간이 세월을 얻고 폐허가 되고 다시 자연이 되는 광경을 상상해 봤어요.
#4. 풍설기천년, 고난의 풍파 그 몇 천 년인가
소대에서 다시 소요헌을 거쳐 초하루길과 비나리 길이 만나는 길목으로 돌아 나오면, '앵당'이라는 작은 연못 뒤로 또 하나의 장벽이 길을 막아 서요.
좁은 회랑을 걸어 들어가 통로 모퉁이를 돌아서면, 갑자기 시야가 탁 트이면서 더러는 서고 더러는 앉아 있는 듯한 모과나무 군락과 마주쳐요. ‘아’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온답니다. 흉터처럼 울퉁불퉁한 수피를 두른 모과나무 노거수가 당당하게 늘어서서 뿜어내는 오라가 대단해요.
이 공간에 붙여진 이름은 ‘풍설기천년(風雪幾千年)', 뜻을 풀면 ‘고난의 풍파, 그 몇 천 년인가’예요. 사유원이 잉태된 심장부와 같은 곳이죠.
'멀리 소백산을 바라보며 마음에 가득 쌓인 탐욕을 씻어내는 전망대'라는 '소백 세심대(小百洗心臺)' 연못 뒤 구릉 주위로 늙은 모과나무 108그루가 서 있습니다.
모과나무 둥치 아래에는 붉은 강철판 구조물을 분재의 수반처럼 덧대 놓았는데, 늙은 나무의 굴곡진 수피와 붉게 녹슨 쇠의 이질적인 질감이 이렇게 잘 어울릴 수 없어요.
바람과 서리, 인간의 욕망을 견뎌낸 반 천년 모과나무들과 조경은 그냥 쉽게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조경가 박승진과 정영선, 카와기시 마츠노부가 조경을 설계하고 돌 하나까지 아무 데나 놓지 않은 치밀하게 짜인 정원이죠.
이곳에 놓인 모과나무는 나무 둥치로 밀반출되려던 것을 설립자가 지켜내고 길러온 500년 역사를 가진 나무들이라서 더 진귀한 풍광을 만들어 내요.
사유원 설립자는 대구에 본사를 둔 태창철강의 유재성 회장인데요. 태창철강은 철강 자재 유통·가공업을 하는 향토기업이에요. 창립일이 해방 이듬해인 1946년까지로 거슬러 올라가는 대구를 대표하는 중견기업이지만, 소비재에는 손을 대지 않아서 일반 소비자에게는 낯선 회사죠.
철강회사는 적잖은 돈과 시간을 들여 본업과는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수목원을 왜 만들었을까요? 그 단서가 대구 성서공단의 태창철강 본사 건물에 있습니다. 사선과 직선 그리고 곡선이 어우러진 조형미 넘치는 태창철강 본사 사옥은 회사 건물이 아니라 마치 미술관처럼 보여요.
대구경북건축가회장을 지낸 향토 건축가 박종석이 설계한 사옥은 밤 풍경이 더 인상적이에요. 야간조명이 켜지면 외벽에 은하수 같은 별빛이 새겨집니다. 파리 에펠탑과 개선문 조명 디자인을 맡았던 프랑스의 얀 케르샬레의 작품입니다.
사옥 앞에는 1500평 규모의 한국식 정원도 있답니다. 정원에서는 모과나무와 소나무, 배롱나무, 산수유나무, 팽나무 등 다양한 나무들이 자라고 있어요. 사옥 1층과 지하에는 300석 규모의 소극장도 있어요. 사옥 건축과 정원 조성에서 드러나듯이 유 회장은 건축과 자연 그리고 예술에 깊은 애정과 지극한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사유원의 시작도 ‘모과나무’였어요. 유 회장은 정원사의 귀띔으로 일본으로 밀반출되는 수령이 300년 남짓의 모과나무 4그루를 부산항의 컨테이너에서 목격했어요. 팔려 가는 늙은 나무가 해외로 입양 가는 고아처럼 느껴졌던 것일까요. 유 회장은 일본인이 치르기로 한 나무 값 2,000만 원에다 웃돈을 얹어 모과나무를 사들였어요.
이것이 소문나자 노거수를 팔겠다는 사람들이 찾아왔어요. 유 회장이 이후에도 줄곧 나무를 사들이게 된 계기입니다. 이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수목원의 꿈을 품은 씨앗이 됐어요. 모과나무를 처음 산 것이 1989년의 일이니 수목원의 씨앗은 34년 전에 뿌려진 셈이죠.
건축가 승효상은 풍설기천년 구릉 꼭대기에 팔공청향대(八公淸響臺)라는 전망대 겸 쉼터를 만들었어요. 모과나무 계곡을 내려다보고 별유동천의 배롱나무를 바라보며, 멀리 팔공산의 청정한 울림을 품고 있는 곳이랍니다.
팔공청향대에서 바라보는 풍설기천년은 정원이라고 하기엔 엄청난 스케일이라 그냥 자연스레 만들어진 풍경인 것 같아요. 팔공산의 정기를 받아 천년을 맞이할 108그루의 희귀한 절경을 그려봅니다.
#5. 별유동천, 별천지의 다른 세상
풍설기천년 바로 옆 구릉에는 배롱나무 정원 ‘별유동천(別有洞天)'이 조성돼 있어요. 설립자인 유재성 회장이 200년 넘은 배롱나무를 수집해 온 것을 조경가 카와기시 마츠노부가 사유원에 정성스럽게 옮겨 심었어요.
짙고 맑은 붉은 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여름에는 별유동천이 말 그대로 '별천지의 다른 세상'이 된답니다.
치허문, 별유동천, 한유시경과 같은 이름은 유 회장이 시문을 짓듯 지어 붙인 거예요. 이렇게 지은 한자 이름 하나하나가 힘차면서도 날아갈 듯한 중국 서예가 웨이량(魏良)의 필치로 새겨졌어요. 공간 이름이 지어질 때마다 중국 시안(西安)을 오가며 받아 온 글씨들입니다.
사유원은 오랜 풍상을 이겨 낸 나무와 몸을 낮춘 건축물의 변주로 만들어 내는 고요한 사색의 공간이다. 사유원에서는 자연이 위안이 되고, 이름이 정취와 풍류를 보태며, 건축이 시선과 생각을 이끈다.
#6. 현암, 오묘하고 아름다운 집
사유원에서 승효상이 가장 먼저 지은 것은 소나무 숲속 한가운데 앉힌 집 ‘현암’(玄庵)인데요.
그는 작업 노트에 “수목의 풍경이 주가 돼야 하는 장소이므로 건축은 특별한 형태가 되지 않아야 했다. 그저 집 지을 장소만 잘 선택하면 그 주변 풍경을 잘 감상하는 시설로 족한 일이라 건축은 되도록 드러내지 않으려 했다”라고 적었습니다.
승효상이 사유원에 지은 건축물들이 한결같이 존재감을 과시하지 않고 땅에 낮게 스며든 이유입니다.
'오묘하고 아름다운 집’이라는 뜻을 가진 현암도 마찬가지입니다. 계단이 없다면 건축물이 있는지 쉽게 알아챌 수 없어요. 내리막 계단마저 작은 집을 안은 자연의 품 속으로 들어가는 듯싶습니다.
장식이나 꾸밈없이 단순한 형태로 짓되 삼면을 모두 ‘베젤’이 없는 통창으로 마감해 계절 따라 거대한 자연 풍경의 장쾌한 수평 파노라마를 실내로 끌어들였어요.
아쉽게도 하루 세 번 열리는 티 하우스 시간 외에는 건물 내부를 개방하지 않지만, 소박하고 단정한 건축물이 푸른 숲과 어우러져 빚어내는 미감이 돋보입니다.
대신 현암의 옥상 코르텐 마루에 오르면 열린 하늘 아래 저만치 '소대'가 고개를 내밀고, 그 너머로 팔공산 산맥이 흘러내려요.
사유원의 주인공은 건축물이라고 할만하죠. 건축가가 설계한 수목원은 자연마저 지극히 건축적이에요. 자연경관까지도 건축 설계 방식으로 여행자의 시선을 분석하고 해독해 재구성해 냈어요.
#7. 금오유현대, 깊고 그윽한 정취
사유원 곳곳에는 조망이 좋은 전망대가 있어요. 그중 별유동천과 현암 사이에 있는 금오유현대(金烏幽玄臺)는 금오산의 깊고 그윽한 정취에 빠져드는 곳입니다.
치허문과 풍설기천년에서 본 녹슨 강철판을 두른 전망대가 서쪽 금오산을 향해 쭈욱 뻗어 있어요.
인생은 생명 성장의 정점을 지나면 녹 슬기 시작해요. 하지만 치밀한 녹은 오히려 더 이상의 부식을 막는 피막으로 작용한답니다. 적당히 녹이 슬어야 더 강해지고 영속성을 얻는 것이죠.
삶이 녹 슨다고 마냥 부서져 내릴 이유는 없어요. 아집과 고집이 아닌 녹을 두르고 타인과 어우러지는, 조망 좋은 삶을 이뤄가야겠다고 다짐했어요.
1930년대 미국의 한 석탄 마차 제조업체는 특정 강철 합금이 요소에 노출되었을 때 강철을 부식시키는 대신 보호하는 녹 층이 생기는 것을 발견했답니다.
사유원에서 건축자재로 사용하고 있는 '코르텐강'은 내후성강판을 최초로 만든 미국 US스틸에서 붙인 브랜드 이름이에요. 이후 일본 신일본제철에서도 코르텐강을 생산해요. 1980년대 후반 우리나라 POSCO에서 고내후성 압연강재를 생산하면서 코르텐이라는 이름 대신 '내후성강판'이라는 제품명을 사용하기 시작했죠.
일반적으로 철강재는 비바람에 노출되면 수분‧염분‧아황산가스(이산화황) 등의 작용으로 부식돼 붉은 녹이 슬기 쉬워요. 그러나 소량의 인(P), 동(Cu), 크롬(Cr), 니켈(Ni) 등을 첨가하면 표면에 치밀한 녹 층이 형성돼 물과 산소의 투과를 막아 내후성을 띠게 되고 더 이상의 부식 진행을 억제한답니다. 내후성강판은 일반강에 비해 4~8배의 내후성을 갖기 때문에 보통 도장을 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해요.
내후강성판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다른 색상을 띄는데요. 대기 노출 초기 단계인 1~2년 동안엔 일반강과 같이 부식이 진행되면서 황색이 붉은색으로 변해요. 녹 형성 단계인 3~4년이 경과했을 땐 부식산화층 내부에서 크롬, 구리, 니켈 등의 작용으로 안정산화층이 형성됩니다. 5년~10년이 지나 완료 단계에 접어들면 원소들의 영향으로 치밀하고 안정된 암갈색의 산화피막층을 형성해요.
사유원의 건축물도 세월이 흐를수록 암갈색으로 변해 자연과 더욱 닮아갈 것입니다.
사유원을 걷다 보면 곳곳에서 의외의 공간을 만납니다. 빛과 바람을 느끼며 볼일을 보게 한 사유원의 야외 생태 화장실도 그중 한 곳이에요. 방향을 틀어 타인의 시선으로부터는 감추되, 사용자가 사유원 전경을 가득 눈에 담으며 볼일을 볼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어요.
생태 화장실을 만들자는 설립자의 의견에 따라 사유원에는 여섯 곳의 '측간'이 마련돼 있어요. 승효상이 지은 ‘다불유시’(多不有時)라는 곳도 있는데요. WC의 영어 발음을 한자어로 넉살스럽게 표현했어요.
그저 바닥에 작은 네모 하나 파낸 생태 화장실은 전남 순천 선암사의 해우소와 닮았어요. 시인 정호승은 시 ‘선암사’에서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 해우소에 가라, 쭈그리고 앉아 실컷 울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난다"라고 했죠.
자연이 키워 나눠준 숨을 사용하다 내보내며 근심을 풀어 버리기에도, 쭈그리고 앉아 실컷 울기에도 어울리는 곳이랍니다.
# 대구 군위 사유원 방문 팁
사유원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수목원’으로 불러요. 평일 입장료가 5만 원 이랍니다. 그럼에도 사유원은 하루 제한 인원 300명을 꽉 채워요. 사유원 누리집이나 네이버에서 예약할 수 있는데요. 운영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고 마지막 입장 가능 시간은 오후 3시예요. 매주 월요일에는 휴원합니다.
사유원은 팔공산 자락에 있어 대중교통으로 접근하기 쉽지 않아요. KTX 동대구역에 내리면 인근에 공유 차량을 이용할 수 있는 쏘카존이 11곳 있어요. 동대구역에서 차로 50분가량 소요됩니다.
대구 군위 사유원
• 주소 : 대구 군위군 부계면 치산효령로 1176
• 방문시간 : 매일 09:00 - 17:00 (매주 월요일 정기휴무)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정상운영, 그 다음 평일 휴원)
• 입장료
[평일] 성인 50,000원 / 학생(초,중,고) 45,000원
[주말, 공휴일] 성인 69,000원 / 학생(초,중,고) 62,000원
• 주차장 : 무료
• 문의: 0507-1317-1371
사유원에서는 설립 당시 수목원으로 사용되는 10만 평 땅에서 몇 명이 있어야 혼자라고 느낄 수 있는지 전문가에게 의뢰했더니 300명이라는 결론이 나왔다고 해요. 현재 평일 300명, 주말 350명으로 입장을 제한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사유원의 산책길은 목련길, 백일홍길, 모과길, 고송길 등 1~4시간 코스로 다채로운데요.
하지만 이곳을 여러 번 찾은 사람조차 길을 헤매기 십상이에요. 여러 갈래로 뻗어 나간 길은 걸을 때마다 새롭게 느껴집니다. 오가는 사람이 적은 길은 고요하고 한적해 숲속에 오롯이 혼자만 있는 느낌이 들어요. 자연 속에 몸을 숨기고 내면에 집중한 건축 작품처럼 사유원에서는 다른 사람이나 환경이 아닌 나 자신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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