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은 을사년 ‘푸른 뱀띠’ 해입니다. 안타깝지만 새해에도 소비심리는 크게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요. 2025년은 크게 성장하지도 그렇다고 크게 하락하지도 않는, 지금의 불황 심리가 지리하게 유지되는 ‘밋밋한' 한 해가 될 것이란 전망이에요. 이렇게 정체가 계속되며 내일에 대한 기대가 높지 않은 시기에는, '현재'의 '자잘한’ 움직임이 중요해져요. 그렇다고 트렌드가 움직이지 않는 것은 아니랍니다. 기술이나 인구구조는 멈추지 않고 변화하기 때문에, 그에 따른 트렌드의 도도한 변화는 계속됩니다. 2025년 우리 사회를 이끌 트렌드는 무엇일까요?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발표한 2025년 10대 소비 트렌드 키워드를 정리했어요.
# 2025년 10대 소비 트렌드 키워드
1.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는 나만의 소비 스타일, ‘옴니보어’
옴니보어(omnivore)란 사전적으로는 잡식성이라는 의미지만, 파생적으로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갖는다"는 뜻도 가지고 있어요. 사회학적으로는 특정 문화에 얽매이지 않는 폭넓은 문화 취향을 가진 사람을 의미하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주어진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는 자신만의 소비 스타일을 가진 소비자를 ‘옴니보어’라고 불러요.
옴니보어는 늘어난 기대수명과 이로 인한 인구구조의 변화, 순차적 인생 모형의 폐기 등 새로운 인생의 포트폴리오를 마주한 사람들의 모습을 반영합니다. 역사상 가장 많은 세대가 공존하며 온라인을 통한 세대 간 교류가 활발해진 것도 옴니보어가 등장한 배경입니다.
옴니보어 소비 현상은 나이와 성별, 소득, 인종에 따른 경계와 구분을 지우고 완전히 새로운 소비시장을 만들어가는 중입니다. 고정관념이 사라진 시대, 모든 전제는 원점에서 다시 시작되고 있답니다.
2. 대한민국 행복 담론 ‘아주 보통의 하루’, ‘아보하’
한국 사회의 행복 담론이 바뀌고 있어요. ‘행복해야 한다'라는 믿음에서 한 걸음 비켜서서 너무 행복하지도 너무 불행하지도 않은 일상, 그저 '무난하고 무탈하고 안온한 삶'을 가치 있게 여기는 태도를 '아주 보통의 하루', 줄여서 '#아보하'라고 해요.
매일 전쟁을 치르는 것처럼 힘든 사회에서, 오늘을 힘껏 살아낸 것만으로 스스로 대견하지 않은가요? 꼭 행복까지 이르지는 않았더라도 말이죠. 누군가는 보통의 하루에 집중하는 사람들에 대해 도전 정신이 없다거나, 너무 지쳐서 그런 것이라며 평가절하할지도 모르지만, 이들은 게으른 것도, 탈진한 것도 아니에요. 하루하루 열심히 살고자 하는 삶의 태도에는 변함이 없답니다.
무언가 더하지도 빼지도 않은 일상적인 소비가 우리가 숨쉴 수 있는 안전지대인지도 몰라요. 특별한 행복이 찾아오지 않았더라도 오늘, 아주 보통의 오늘은 중요해요. #아보하. 대한민국 행복 담론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열리고 있습니다.
3. 기성품에 나만의 독창성을 덧붙이는 소비, ‘토핑경제’
남과 똑같은 것은 싫어요! 피자에 토핑을 추가하듯이, 기성 상품에 나만의 독창성을 덧붙이는 소비자가 늘고 있어요. 범용상품을 변형해 개성을 부여하는 커스터마이징 시도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오늘날 소비자들은 더욱 색다르고 다양한 토핑을 얹어가면서 옵션 추가가 기본보다 비싼,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도 마다하지 않아요. 이처럼 상품이나 서비스의 본질적인 부분보다 추가적이거나 부수적인 요소인 '토핑'이 더욱 주목받아 새로운 경제적 효과를 창출하는 시장의 변화를 '토핑경제'라 해요.
사람들은 무엇보다 꾸미는 데 열중합니다. 티셔츠에는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의 와펜을 꼭 붙이고, 가방에는 키링 세 개쯤은 달아주는 식이죠. 또한 '최고의 상품'보다 자신에게 딱 맞는 '최적의 상품'을 추구해요. 소비자는 제조사가 제공하는 여러 요소들을 다양하게 조합해 자기만의 최적 조합을 만들어내고, 넣고 빼기 손쉬운 모듈형 토핑을 활용해 상품을 그때그때 변형하는 것을 즐겨요. 토핑경제의 도래는 요즘 시장이 소비자들의 개성과 창의력을 발휘하는 효능감의 경연장이 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답니다.
토핑경제에서는 소비자가 자신의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야 해요. 당신의 상품은 아직 미완성입니다. 고객이 토핑을 더해줄 때까지는.
4. 가장 인간에 가까워지는 혁신 기술, 페이스테크
누구나 첫인상이 중요해요. 얼굴에 공을 들이는 이유이기도 하죠. 기술도 마찬가지랍니다. 무생물인 기계에 표정을 입히고, 사람의 얼굴과 표정을 정확하게 읽어내며, 사용자마다 각자의 얼굴을 만들어내는 기술인 '페이스테크'가 중요해지고 있어요. 페이스테크는 점점 더 복잡해지는 첨단 기술을 처음 접했을 때, 직관적으로 사용법을 알리고 인지오류를 줄여줄 뿐만 아니라 친근감을 제공해 사용자들을 매료시킵니다. 이제 사용자는 얼마나 정교한 인공지능을 탑재하고 있느냐 보다 얼마나 사람과 유사한 느낌을 주는가로 로봇의 완성도를 판단해요.
지금까지 사용자 인터페이스 즉, UI가 중요하게 여겨져 왔다면, 앞으로는 가르쳐주지 않아도 쉽게 인지하고 직관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어포던스(affordance)가 주목받 을 거예요. 가장 쉽고 직관적인 어포던스를 위해서는 페이스테크가 무엇보다 중요하답니다.
생성형 Al 만능시대, 앞으로는 사람의 감정을 읽고 대응하는 능력을 갖춘, 최대한 '인간적으로' 다가오는 기업과 상품이 선택받을 거예요. 신기술의 향연이 펼쳐지는 치열한 경쟁 구도에서 페이스테크는 기술이 가장 인간에 근접할 수 있는 혁신적인 무기입니다.
5. 작고 순수한 것들이 사랑받는 힘, ‘무해력’
작거나 귀엽거나 서툴지만 순수한 것들이 사랑받고 있어요. 작고 귀엽고 순수한 것들의 공통점은 해롭지 않고, 그래서 나에게 자극이나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며, 굳이 반대하거나 비판할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죠. 이러한 특성을 '무해함'으로 범주화하고, 이렇게 무해한 사물들의 준거력(referent power)이 강해지는 현상을 '무해력'이라고 해요.
전 국민의 사랑을 받은 푸바오와 그 뒤를 잇는 레서판다, 밤톨이(햄스터) 같은 깜찍한 동물들, 세상 모든 것을 작디 작게 만드는 미니어처 열풍, 서툰 말씨와 대충 그린 이모티콘이 더 사랑받는 현상에는 이런 '무해력'이 자리해요.
무해력이 주목받는 이유는 단지 귀엽거나 예뻐서가 아니랍니다. 경제 불황과 불안한 미래, 날로 심해지는 정치·사회적 갈등, 코로나 블루에 이은 코로나 레드(분노)에 지친 젊은이들은 스스로를 '긁힌 세대'라고 부르며 자조해요. 이러한 암울함의 반작용에서 귀엽고 순수하고 단순한, 해가 없는 대상을 찾고 있는 것이죠. 그렇지만 무해한 존재들을 단지 '부정적인 것의 부재'로만 인식해서는 안 돼요. 무해력은 이제 어지럽고 혼탁한 세상에서 한 줌의 희망을 느낄 수 있는 생존의 비결이 되고 있어요.
6. 한국적 정체성의 범세계화 양상, ‘그라데이션K’
K-팝, K-푸드, K-드라마 등 수많은 K 상품이 해외시장을 주름잡는 가운데,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은 250만 명을 돌파해 인구의 5%에 육박해요. 이러한 상황에서 "진정으로 한국적인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이 쉽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한국은 단일민족이 단일국가를 형성하고 있는, 세계적으로 드문 사례라는 고정관념 내지는 자부심이 있었죠. 하지만 범세계적으로 동조화가 커지는 대이동의 시대, 전 지구적으로 취향을 공유하는 글로벌 소셜미디어의 시대에, K를 단일한 기준에 의한 이분법으로 규정하기 쉽지 않아요. '그라데이션K'은 한 색깔에서 다른 색깔로 서서히 변화하는 '그라데이션' 개념을 사용해 한국적 정체성을 파악하려는 개념입니다.
K의 그라데이션은 사람, 문화, 시장 등 다양한 영역에서 감지됩니다. 먼저 국내 외국인의 비중이 크게 높아지면서 학교와 일터에서의 일상이 달라지고 있어요. 콘텐츠, 음식은 물론 도시의 풍경까지 한국 문화와 세계 문화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어요. 기업에게는 국내 외국인 거주자와 관광객, 나아가 해외 소비자라는 새로운 목표시장이 열렸어요.
세계화와 로컬화가 서로 빠르게 섞이면서 지금 K는 0과 1사이에서 그라데이션이 진행중인데요. 그라데이션K는 산업적·문화적인 시사점을 던집니다. "무엇이 진정으로 한국적인 것인가?"에 대한 보다 유연한 담론이 필요한 시점이죠.
7. 디지털 시대 아날로그적 체험을 추구하는, ‘물성매력'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는 비물질의 시대지만 우리는 여전히 체감할 수 있는 그 무엇을 갈구합니다. 특정 대상에 경험 가능한 물성(materiality)을 부여함으로써 손에 잡히는 매력을 지니게 만드는 힘을 '물성매력'이라고 해요.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콘텐츠 물성화입니다. 스크린에서만 존재하던 애니메이션, 드라마의 세계가 오프라인 공간에 구현되고 있어요. 브랜드의 가치, 콘셉트, 라이프스타일이 중요해지면서 브랜드 자체를 소비자에게 전달하고 '체험'시키는 브랜드 물성화 사례도 늘고 있답니다. 실생활에 침투한 로봇, 회사의 철학을 품은 '사옥'도 물성화의 한 형태입니다.
세상은 빠르게 디지털화하지만, 외부세계와의 감각적인 소통을 위해 체화된 경험을 추구하는 아날로그적 선호는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 몸으로 감각하고 싶은 본능과 디지털 가상세계의 효율성이 서로 보폭을 맞추지 못하는 지체를 빚을수록, 물성매력은 그 존재감을 더욱 드러낼 전망입니다. 지금 소비자는 그 어느 때보다도 사물 본연의 감각을 몸으로 느끼고 싶어 해요.
8. 기후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 실천하는, 기후감수성
역대급 무더위가 삼켜버린 2024 대한민국. 기후변화의 문제는 언젠가 다가올 수도 있는 미래가 아니라 당장 해결해야 할 '현존하는 위험'으로 급부상했어요.
기후 문제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그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기후감수성'이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고 있는 뜨거워진 지구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수 덕목이 됐어요. '장마' 대신 '우기'라는 말이 더 많이 쓰이고 날씨를 불문하고 '레이니룩'이 대세가 되는가 하면 늘 먹던 생선과 과일의 생산지도 빠르게 바뀌고 있죠. 날씨보험이 등장하고 취약계층을 위한 기후복지가 중요해지고 있어요.
그동안 우리는 이상기후를 북극곰이나 태평양의 투발루 주민들이나 겪는 '남의 일', 예외적 현상으로 여기곤 했죠. 하지만 물폭탄, 찜통더위 같은 용어가 여름마다 반복되는 일상어가 되면서, 기후문제는 늘 발생하는 상수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고 있어요. 이제 기후감수성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끓는 지구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수적 과제가 되었습니다.
9. 비즈니스 상생의 열린 마인드, ‘공진화 전략’
제품과 서비스 사이의 상호연결성이 높아지면서 하나의 상품이 홀로 시장에서 자리 잡기 어려워지고 있어요. 예전에는 자동차 하나만 잘 만들면 됐지만, 전기자동차가 등장하면서 충전 호환성이 요구되고, 자율주행 기능이 발달하면서 주행 데이터의 공유나 스마트폰과의 부드러운 인터페이스 연동성 역시 필요해 졌어요. 상호연결성이 높아진 오늘날의 경제에서는 이처럼 같은 업종은 물론이고 다른 산업과도 긴밀한 연계를 통해 공동 성장을 도모해야 하는데요. 이러한 환경 변화를 고려해 자연 생태계의 공진화(co-evolution) 개념이 경제 생태계에도 적용되고 있어요.
나약한 인류가 지구 전체를 호령할 수 있게 된 것은 환경 변화에 맞춰 끊임없이 진화해냈기 때문이에요. 상생을 도모하는 자연 생태계의 공진화에 비즈니스의 해결책이 숨어 있답니다. 변화무쌍한 경제 생태계에서 공진화는 필수적인 선택이 됐어요. 급변하는 시장 상황에 유연하고 개방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서로 경쟁하면서도 과감하게 협력할 수 있는 상생의 진화 전략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에요.
10. 실천 가능한 자신만의 작은 밸류업, ‘원포인트업’
요즘 직장인은 위대한 인물을 롤모델 삼아 장기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실천하며 조금씩 성취감을 쌓아 가려고 해요. 지금 도달할 수 있는 한 가지 목표를 세워 실천함으로써, 나다움을 잃지 않는 자기계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원포인트업'이라고 해요.
원포인트업의 핵심 요소는 먼저 일반화된 성공 공식을 일률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각자 가장 '나다운 성공'을 찾는 거예요. 또한 혁신을 통해 자신을 완전히 바꾸는 것이 아니라, 오늘 실천할 수 있는 한 가지에 집중하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이러한 실천을 기록하고 공유하며 성취감을 고양시켜 서로에게 동기를 부여하죠.
코로나 사태 이후 불확실성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큰 위험을 부담하기보다는 작은 개선에 만족하려고 해요. 안온하고 평안한 보통의 하루를 중시하는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놀라운 성장보다는 작은 루틴을 실천하는 것에 만족하죠. 기업에서도 일반적인 기준에 의한 공채보다는 직무 중심의 특채가 자주 이루어지다 보니, 획일적인 스펙 쌓기보다는 자신의 장점을 명확히 찾아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한 시대가 됐어요.
우리가 매일 들여다보는 스마트폰 너머에는 멋진 세상이 펼쳐져 있어요. 하지만 소셜미디어에서 보는 누군가의 삶은 사실 잔뜩 과장된 것이랍니다. 내가 부러워하는 그 사람 역시 내 게시물을 보고 열등감을 느껴요. 누구도 강요한 적이 없는데 우리는 끊임없이 누군가와 비교하며 높은 기대를 이룰 수 없는 현실에 괴로워해요. 비교를 멈추고 ‘나의 작은 일상’에 집중하는 것은 어떨까요? 풍진 세상에서 별일 없이 하루를 보냈다면,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잘 하고 있는 것이죠. 작은 일상은 소중할 뿐만 아니라 힘도 세요. 남보다 잘 하기 보다, 스스로 과거보다 나아지는 새해가 되길 바라요.
자료: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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