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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면 일, 육아면 육아! 슈퍼 대디를 꿈꾸는 ‘요즘남편 없던아빠’

가정은 소비가 이뤄지는 기본 단위이기 때문에 설령 1인 가구라 할지라도 소비 경제에서는 늘 중요한 주체로 인식됩니다. 과거에는 가정 경영의 주체가 주부였기에 그 관심이 주로 여성에게 머물렀는데요. 최근 우리 가정에 작지 않은 변화가 감지되고 있어요. 젊은 남편·아빠들이 이전 세대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가사 노동과 육아를 포함한 가정 경영에 나서고 있답니다. 우리나라가 직면한 가장 큰 화두인 저출산 문제의 해결에 절반의 역할을 하면서도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요즘 신랑들의 전에 없던 모습을 따라가 봤어요.

 

# ’요즘남편 없던아빠’의 등장

예전에는 결혼은 혼기가 차면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고 남성에게 가정생활은 일 다음이라 여겨졌어요. 최근 이런 결혼과 가정에 대한 생각이 변하고 있습니다. 특히 남성들의 생각이 빠르게 바뀌고 있는데요. 매체에서도 남성들을 가리킬 때 ‘한 가정의 가장'이라는 무거운 표현 대신, 아내의 직업 활동을 지원하는 '내조왕', 자신만의 살림 노하우 하나쯤은 겸비한 ‘살림남',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에 진심인 ‘딸바보·아들바보'와 같은 감성 어린 표현으로 대체되는 중입니다.

 

밀레니얼 세대로 불리는 Y 세대는 1980~1994년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인데요. 밀레니얼 남성들은 귀한 아들로 자랐지만 그만큼 귀하게 자란 딸들과 함께 학교와 직장을 다니며, 여성이 아내·엄마·딸·며느리이자 직장인으로 '워킹맘'이 되는 것처럼 남성 또한 일뿐만 아니라 남편·아빠·아들·사위의 멀티 역할을 해내야 한다는 데에 공감하고 있어요.

 

베이비붐 세대 부부가 남편은 바깥일을, 아내는 안살림을 맡아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본분이라 생각했다면, 밀레니얼 부부는 부부가 힘을 합쳐 합리적·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하며, 가정은 희생의 장소가 아니라 개인으로서 행복과 성장을 추구하는 적정 행복의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밀레니얼 남편은 일이면 일, 육아면 육아까지 완벽하게 해내는 슈퍼 대디를 꿈꾸기도 하는데요. 때로는 녹록지 않은 현실에 고군분투하는 '요즘남편 없던 아빠’들의 모습입니다. 물론 이는 30~40대 초반의 밀레니얼 남성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랍니다. 이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생각에 공감한다면 누구든 요즘 남편이 될 수 있어요.

 

# 요즘 신랑의 결혼 조건

요즘 밀레니얼 세대에서는 배우자를 찾을 때 "남성은 경제력, 여성은 외모가 중요하다"라는 오랜 통념이 깨지고 있어요. 결혼정보 업체 조사를 살펴보면 요즘 신붓감들이 신랑감 고르는 기준으로 외모가 경제력을 제치고 1순위에 올랐어요. 여성의 경제력이 높아지면서 이제 여성도 남성의 외모를 중요시하게 된 것이죠.

 

만남의 과정도 바뀌었는데요. 소개팅 후 '애프터 신청'이나 데이트 코스 제안을 여성이 먼저 하기도 하고, 집은 본인이 장만해 뒀으니 결혼 상대만 있으면 된다는 여성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띕니다.

 

결혼에 이르기까지 신경 써야 할 것도 많아졌어요. 배우자에게 바라는 것은 매력적인 외모만이 아닙니다. 2순위로 언급된 경제력은 사실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도 경제력이라 할 만큼 중요한 요소로 여겨져요.

 

경제력이란 소득과 자산 정도뿐만 아니라 안정적인 직업, 부모님의 노후 대비 여부와도 연결되기 때문이죠. 심지어 상대편 부모님의 노후 자금이 연금인지 부동산으로부터 얻는 월세 수익인지까지 꼼꼼히 체크하기도 해요.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고려도 철저한데요. 결혼과 출산이 나이를 먹으면 으레 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가치관에 따른 선택이 되면서 만남 상대의 결혼 의향은 물론, 결혼 시기, 자녀 계획도 결혼 전 확인해야 하는 사항이 됐어요.

 

부부가 취미 생활을 함께 즐기는 결혼 생활을 꿈꾸는지, 혹은 경제적 자립을 통해 조기 은퇴를 지향하는 '파이어(FIRE)족'을 꿈꾸며 저축과 투자에 힘쓸 것인지도 고려해요. 가족 문화에 대한 대비도 필요한데요. 시누이가 많은지, 명절에 제사를 지내는 문화인지도 탐색 대상이 됩니다.

 

물론 신부를 고르는 작업도 까다롭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외모가 중요한 것은 물론, 남성 혼자 경제활동하는 것으로는 자산을 형성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높아지면서 여성의 직업 안정성과 경제력도 중요하게 고려되고 있어요.

 

# 요즘 신혼부부의 결혼 풍경

다행히 짝을 찾았다면, 이제 기나긴 결혼 준비의 여정이 시작돼요. 역시 가장 어려운 일은 신혼집을 마련하는 것인데요. 일반 직장인이 혼자서 집을 마련하는 것이 어려워지면서 '남자는 집, 여자는 혼수'라는 공식은 옛말이 됐고 대신 신랑 신부가 반씩 주택 비용을 마련하는 ‘반반 결혼'이라는 말이 생겼어요.

 

결혼 준비에 있어서 둘이 "힘을 합친다"는 개념이 강해지면서, 신혼부부들은 가장 줄이고 싶은 품목으로 예단과 이바지 등을 꼽고, 그 비용을 혼수나 신혼여행처럼 의미 있는 데에 쓰기를 원한답니다.

 

대신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 중요해지고 있는 것이 '프러포즈'입니다. 결혼식 날이 잡혀 있는 사이라도 남성이 여성에게 '정식' 프러포즈를 하는 것이 중요한 의례로 여겨지고 있어요.

 

새로운 프러포즈 문화는 '예랑이'가 가장 긴장하는 지점 중 하나예요. 한 장의 사진으로 남을 감동적인 순간을 위해, 장소와 선물 선정으로 골머리를 앓는 것이죠. 위안이 되는 것은 최근 프러포즈를 받은 예비 신부가 청혼해 줘서 고맙다는 의미에서 예비 신랑이 좋아할 만한 선물을 준비하는 '답 프러포즈' 문화도 생겼어요.

 

"남녀가 달라야 하나?"라는 의식은 결혼식 풍경에도 반영되고 있어요. 신랑이 먼저 입장한 후 신부 아버지가 신부를 신랑에게 넘겨주는 모습이나 신부가 눈물을 훔치는 장면을 기대했다면 반전 모습일 텐데요. 이제는 신랑 신부가 함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입장하거나, 부모님께 절을 하던 신랑이 눈물을 훔치면 신부가 옆에서 토닥이는 모습도 낯설지 않게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요즘남편의 역할 분담

요즘남편에게 전통적인 가부장제란 역사 속 이야기가 됐어요. 자본주의 키즈인 밀레니얼 세대가 꾸린 자본주의 가정에서 가장의 지위는 경제력이 결정합니다. 남성이 경제활동을, 여성이 가사를 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깨지고 가정 내 역학 관계가 다변화되고 있는 거죠.

 

맞벌이 부부의 경우, 아내의 소득이 더 높다면 남편이 육아휴직을 하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라는 인식이 번지고, 아내가 능력이 있다면 기꺼이 내조를 맡겠다는 소신을 밝히는 남성들도 많아졌어요.

 

맞벌이인 요즘남편에게 가사 분담은 돕는 것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예요. 요즘남편들 사이에서는 가사와 육아에서 '시키면 잘할 수 있다'는 수동적인 자세가 아니라 능동적이며 재빠른 판단을 통한 협조적 자세가 결혼 생활의 성공 요인으로 꼽히고 있어요.

 

누가 어떤 일을 맡을지도 고정관념을 탈피합니다. 합리성과 효율성을 추구하는 밀레니얼 가족답게 분담하는 기준은 대체로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잘하는 것을 맡는다"는 원칙을 따라요. 요리는 여성이 잘할 것이라는 고정관념도 버려야 하는데요. 요즘 여성 또한 이전과는 다르게 성장했기 때문이랍니다. 남편이 요리를 즐긴다면 아내는 뒷정리를 담당하고, 남편이 더 꼼꼼한 성향이라면 가계부를 맡는 식입니다.

 

요즘남편에게 요구되는 눈치력은 새로 꾸린 가족만이 아니라 본가와 처가까지 확장되요. 남편과 아내 모두 외동인 경우가 많아지면서 결혼 이후에도 원가족의 아들 노릇, 딸 노릇이 중요해졌기 때문이에요. 시가와 처가와의 관계를 동등하게 챙겨야 하는 만큼, 챙겨야 할 가족은 2배가 됩니다.

 

각자 자기 부모님과의 소통을 따로 담당하는 것은 기본. 양가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커뮤니케이션하는 남편의 능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어요.

 

부모님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에는 매우 현실적인 이유도 있어요. 요즘 부부들에게는 신혼집 마련이나 자녀 돌봄에 부모의 도움이 절실할 때가 많기 때문이에요. 부모 가정을 중심으로 근거리에 거주하며 도움을 자주 받는 것을 '위성 가족'이라고 하는데요. 부모보다 가난한 첫 세대라는 요즘남편들은 처가 근처의 위성 가족을 마다하지 않아요.

 

소위 '패밀리지(패밀리+마일리지)'를 쌓는 것은 눈치력의 정수라 할 수 있어요. 부부간, 혹은 부모와 자식 간에 점수를 많이 따두면 마일리지처럼 써먹을 찬스가 생긴다는 의미예요. 예를 들어 남편이 혼자서 장인 장모를 모시고 흔쾌히 주말을 보냈다면, 남편이 다음 친구 모임에 나갈 때나 사고 싶은 물건이 생겼을 때 눈치 보지 않고 행동할 수 있는 '패밀리지'가 주어지는 식이랍니다.

 

# 없던아빠의 육아 생활

▲ 광주시 아빠육아 사진공모전 최우수상작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말타기 놀이'

아침 일찍 아빠가 출근할 때면 엄마와 아이들이 현관으로 나와 배웅하고, 다시 아이들이 등교할 때면 엄마가 배웅 나와 노란 버스에 손 흔들던 풍경이 익숙했어요. 요즘엔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는 아파트 단지 앞, 주말 아침 소아과 대기실, 주말 백화점 문화센터와 놀이터에서 아빠 혼자 아이 손을 잡고 있는 풍경을 낯설지 않게 볼 수 있어요.

 

직장에서 일하는 동안 자녀와 시간을 보내지 못한 아빠들이 등원과 등굣길, 병원, 문화센터와 놀이터만큼은 전담하는 가정이 많아졌어요. 육아는 엄마의 일이 아니라 부모가 함께하는 것이라는 요즘 아빠는 이전 세대 아버지에게서 찾아볼 수 없던, '없던아빠'로 거듭나고 있답니다.

 

요즘 아빠의 변화는 일상의 관심에서 찾아볼 수 있어요. 채널A의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와 같은 육아 관련 방송을 아내와 함께 시청하거나 '하정훈의 삐뽀삐뽀 119 소아과'처럼 유아 발달을 다루는 유튜브 채널을 구독해요. 틈틈이 소셜미디어에서 '아기 안는 법' 같은 정보성 콘텐츠를 찾아보기도 해요.

 

유모차나 아기 띠처럼 아빠가 주로 사용하는 유아용품은 꼼꼼하게 스펙을 따져보고 구매하며, 온라인몰에서 기저귀와 분유의 초특가 핫딜을 찾아봅니다. 직장이나 모임에서 만나는 동료 아빠들과는 자녀의 유치원과 초등학교 진학을 놓고 뜨거운 토론을 벌이기도 해요.

 

일상의 변화는 앱 사용 데이터에도 나타나는데요. 시장분석 서비스 와이즈앱, 리테일, 굿즈의 분석에 따르면 주요 육아 앱 사용자 중 남성 비중이 2021년 23.8%에서 2023년 28.3%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어요.

 

아빠들의 변화는 직장에도 영향을 미쳐 육아휴직 신청이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1년 만 8세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의 자녀를 대상으로 한 육아휴직 사용자는 17만 3,631명인데 이 중 24.1%는 남성이었답니다.

 

2020년 처음으로 육아휴직자 중 남성 비율이 20%를 넘긴 후로 1년 사이에 1.5%나 늘어난 수치인데요. 다만 남성 육아휴직자의 70% 이상이 대기업 종사자라는 점이 아쉽지만 방향성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돼요.

 

10년 전 남성들이 지향했던 모습은 권위적인 아버지에서 친구 같은 아빠가 되는 '프렌디(프렌드+대디)'였다면, 지금은 자녀와 놀아주는 것은 '좋은' 아빠의 모습이 아니라 '당연한' 아빠의 역할로 받아들여지고 있어요.

 

직장에서 오후 6시에 칼같이 퇴근하는 젊은 남자 직원도 쉽게 볼 수 있는데요. 저녁 약속이 있어서가 아니라, 아이가 태어나 육아를 위해 집으로 달려가는 없던아빠일 확률이 높아요.

 

선물과 용돈으로 사랑을 표현했던 옛날 아버지들과 달리, 없던아빠는 자녀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가뜩이나 바쁜 시기에 가족에게 시간을 온전히 내주어야 하는 없던아빠들이야말로 '분초사회'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답니다.

 

결혼이 인생의 가장 큰 선택이 된 오늘날, 결혼 후 남자에게 기대되는 역할이 전에 없이 달라졌습니다. 가사 노동과 육아, 가족 관계의 균형점이 이동하고 있어요. 권위적 가장에서 평등한 동반자로 역할이 바뀌어 가는 요즘남편, 자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6시 신데렐라'를 자처하는 없던아빠들이 가정과 기업, 나아가 소비의 풍경을 바꾸고 있어요.

 

여성은 일터로 남성은 가정으로 들어오면서, 아내와 남편 모두 일과 가정을 넘나드는 멀티 플레이어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역설적이게도 이 때문에 결혼과 출산. 육아는 더욱 고난도의 일이 되고 아예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사람이 많아지기도 했어요. 중요한 것은 우리 공동체가 젊은이들이 더 많이 결혼하고, 더 쉽게 아이를 낳아 기르고, 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개인적 지지와 사회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일이겠죠?

 

자료: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