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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널리스트의 조건, 금융 분석 23년차 DB금융투자 이병건 팀장

증권사 리서치센터는 국내외 상장주식을 포함해 여러 시장성 자산에 대한 분석과 전망을 내놓는다. 리서치센터의 애널리스트들은 시장의 다양한 투자자들이 올바른 투자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판단의 근거들을 제시한다. 예측하기 어려운 변수들 속에서 산업과 기업의 미래를 내다보는 애널리스트에게 열정과 성실은 기본, 데이터와 정보를 분석해 얻은 통찰과 신선한 아이디어는 자신만의 무기다. DB금융투자 리서치센터를 찾아 증권사의 '브레인'이자 '꽃'으로 불리는 애널리스트의 조건을 알아봤다.

 

외길로 분석해 온 금융 산업

일반적으로 주식 애널리스트들이 관심을 갖는 것과 달리 금융산업은 가능성 있는 작은 기업을 찾아내 고속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 보기에는 적당치 않은 섹터다. 금융기업은 자금시장 전반에 관계되어 있고, 감독 규제와 법규 등 제도 변화에 민감하게 움직인다. 정책 기조에 따라 제도가 변하면 기업 가치가 바뀐다. 이런 환경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논리적이고 특히 연역적 접근방식이 금융산업 분석의 기본 틀로 작용한다.

 

“치열한 논리적 분석과 금융산업 전반에 대한 고찰이 필수라는 점이 금융산업 분석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DB금융투자 리서치센터의 산업분석1팀 이병건 팀장은 금융 분석에 집중해 온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DB 금융투자 리서치센터 산업분석1팀 이병건 팀장

이병건 팀장은 대학에서 서양사를 전공했다. 1996년 삼성생명에 입사하면서 금융업계에 첫발을 들여놓았다. 금융회사를 다니면서 금융에 대해 더 알고 싶어서 재무관리 및 회계 관련 공부를 시작했다. 국내에 CFA(국제재무분석사)가 한 두 명 밖에 없던 시절 CFA 1차 시험에 합격했다. 금융에 대한 이 같은 관심은 2000년 DB금융투자 리서치센터 경력사원 입사로 이어졌다. “금융 분석을 하는 일이 나한테 잘 맞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런 기회를 준 것이 우리 회사였어요.”

 

서양사를 공부한 그는 금융산업을 유기체의 관점에서 본다. 살아있는 산업으로 다른 산업이나 시장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어떻게 변화하는지 그 흐름을 살펴보려고 한다.

 

시의성과 정교함의 균형, 주목 받은 분석 보고서들

이병건 팀장은 23년째 금융 분석이라는 외길을 걷다 보니 금융시장에서 주목 받은 보고서들도 여럿 내놓았다. 2006년 4월,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만성적 적자 구조에 빠진 자동차보험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것을 계기로 금융산업 전반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당시 집에서 관련 뉴스를 보고 적시성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새벽에 택시를 타고 회사에 출근했습니다. 「청와대로부터 온 복음」이라는 3페이지 분량의 짧은 보고서를 작성했죠. 다음날 손해보험사 주가는 큰 폭으로 상승했고, 해당 보고서가 회자되면서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자동차보험은 의무보험이지만 우리나라에서 이익이 크지 않은 상품이다. 여러 부처가 관여되어 있어서 변화가 어려웠는데, 대통령의 국무회의 지시 후 제도적 힘을 받아 과잉청구가 개선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이 팀장의 보고서는 이런 손해보험사의 수익 개선을 예측한 것이 주효했다. “정교하고 자세한 분석과 시의성 있는 빠른 의견 개진 사이의 균형을 찾는 일은 지금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다소 성급하더라도 빠르게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할 때가 있어요.”

 

▲ 이병건 팀장의 카카오뱅크 분석 보고서 자료

최근 카카오뱅크 분석은 이와 반대되는 사례다. 2022년 10월 초 이병건 팀장은 카카오뱅크의 목표주가를 크게 낮춰 제시했다. IPO(기업공개) 이후 1년 가까이 지난 시점이고 주가도 고점대비 이미 많이 하락한 상태였다. 앞서 IPO 직전 비슷한 목표주가대를 제시한 보고서가 발간되기도 했다. “지금도 카카오뱅크가 매우 좋은 인터넷전문은행이라고 생각하지만, 워낙 유통물량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높은 가격에 시장에 상장되기 때문에 IPO 이후 상당 기간이 지나야 주가지수 편입 등에 의한 단기적 수급이 정상화될 것으로 판단해서 의견 제시를 늦췄습니다.”

 

이 팀장은 카카오뱅크에 대해 증권가에서는 대부분 높은 목표 주가순자산비율(PBR)을 적용해 목표주가를 제시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자기자본이익률(ROE) 수준이 낮고 고성장주라는 점에서 목표 주가수익비율(PER)을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은행으로 인가 받고 대출 위주로 영업하는 이상 성장폭은 유지되더라도 성장률은 크게 하락할 수밖에 없다고 예상했다. “정부에서 카카오뱅크 IPO 전후부터 중저신용자 대출비율 상향을 주문하면서 성장성에 큰 악영향을 받을 것으로 봤습니다. 한국의 가계부채비율이 높은 상황을 감안하면 카카오뱅크가 기존 은행들과 비교해 가져갈 초과성장의 폭은 IPO 전후 기대 보다 높을 수 없다고 봅니다.”

 

카카오뱅크 주가는 분석 보고서 발간 이후 2주 만에 제시했던 목표주가까지 하락했다. 이 팀장은 흔히들 앞으로 카카오뱅크만 남지 않겠냐는 말을 하지만 기존 대형 금융사들이 무기력하고 손 놓고 있을 리는 없다고 지적한다. 게다가 최근 발생한 데이터센터 화재로 인한 카카오 먹통 사태는 그동안 퍼진 핀테크에 대한 환상을 한 꺼풀 벗기는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한다.

 

2023년 도입되는 새 국제회계기준(IFRS17)에 대한 분석 보고서도 보험업종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회계 기준이 바뀌면 보험에 대한 많은 것이 바뀐다. 리모델링이 아니라 재건축 수준의 변화가 일어나는 중요 요인이다. IFRS17의 원칙은 보험상품을 판매할 당시의 가정대로 회계 처리하라는 것인데, 새롭게 체결되는 신계약과 그 수익성에 대한 가정만 수립되면 높은 확실성으로 실적 추정이 가능해진다.

“IFRS17이 도입되면 보험상품의 높은 수익성이 드러나게 되어 보험사에는 긍정적인 영향이 기대됩니다. 또한 보험회계와 일반회계의 차이점도 줄어들어 보험사에 대한 투자도 늘어나고 보험사간 M&A가 활성화 될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다만 IFRS17에서는 마치 건설/조선업의 공정률 반영 회계처럼 현금이 발생하지 않은 이익을 선인식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리스크 량도 함께 커질 수밖에 없다. IFRS17에 대응되는 새로운 지급여력제도 K-ICS도 그렇다. “따라서 수익성이 높아진 이상으로, 보험사들의 리스크 관리 역량이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좋은’ 애널리스트의 조건, ‘학습능력’

한편 최근 10년간 증권사 애널리스트 수는 크게 줄고 있는 상황이다. 개별종목을 찾아내 초과수익을 거두는 액티브 펀드 시장이 위축되고, 시스템적 접근이 필요한 패시브 시장 위주로 주식시장이 재편되고 있는 흐름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종목 추천 위주의 애널리스트 업무가 줄고, 자산배분과 관련된 투자전략의 중요성이 다시 높아졌습니다. 좁은 의미로 애널리스트 업무를 정의한다면 그 수가 줄고 있는 것이 맞지만, 증권사의 필수 시장분석 업무로 넓혀 보면 애널리스트 업무를 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늘고 있습니다.” 실제 애널리스트 경험을 바탕으로 증권사 외 기업 부설 경제연구소나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진출하는 기회도 늘고 있는 상황이다.

 

이병건 팀장은 ‘좋은’ 애널리스트의 조건에 대해 어려운 질문이라면서도 학습능력을 첫째로 꼽는다.

“그래서 비전공자였던 저도 이렇게 오래 애널리스트 자리에 있었다고 생각해요. 2000년 전후 에는 엑셀조차 잘 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전산 쪽 경험과 지식이 전무했는데, 삼성생명에서 마케팅 부서에 근무하는 동안 엑셀 데이터 전처리를 공부하다가 회사 시스템으로 간단한 자료를 뽑는 코딩 업무를 했습니다. SAS도 일부 공부했죠. 그런 경험이 CFA 과정에서 공부한 재무지식과 함께 DB금융투자 애널리스트가 된 후 큰 무기가 되었습니다.”

 

산업은 항상 변화한다. 모두가 다 아는 정보라면 고객은 굳이 애널리스트에게 묻지 않게 될 것이다.

“애널리스트는 본인이 아직 잘 모르는 것을 공부해서 고객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남보다 더 많은 자료를 다루어야 하고 전산과 어학능력도 기본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빠른 학습능력이에요. 매일 새로운 것을 보고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애널리스트로 타고난 사람이 아닐까 합니다.”

 

2023년 금융 산업 전망, 고금리 상황에 보험업종 주목할 만

미국의 테이퍼링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2023년 금융 시장은 어떻게 내다봐야 할까? 이병건 팀장은 장기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잡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입장이 완전히 완화적으로 전환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다만 양호한 소비와 고용 지표들은 후행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자칫 소위 ‘오버킬’이 일어나지 않도록 중앙은행들이 적절하게 대응해야 합니다. 또 상황이 어렵지만 근거 없는 우려는 하지 않았으면 하고요. 외환위기 때는 원화 채권에 대한 외국인 자금흐름을 템플턴자산운용의 펀드 하나만으로 분석할 정도로 한국의 입지가 형편없었습니다. 지금은 많은 중앙은행들이 원화 자산을 보유하고 있고, 그래서 현재 한미 금리역전이 일어나고 환율이 크게 올라도 생각보다 상황이 조용한 것입니다.”

 

현재 금융 시장은 FED가 기준금리를 계속 올리고 있고 2023년 경기전망은 불확실해서 수익률 곡선이 역전되어 있는 상황이다. 만기가 짧은 채권 금리가 10년 이상으로 만기가 긴 채권 금리보다 높은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이면 금융기업들의 영업이 매우 어렵습니다. 따라서 수익률 곡선이 언제 정상적인 상황으로 돌아서느냐가 중요하고, 그러려면 기준금리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더라도 일단 상승 추세가 일단락될 필요가 있어요. 금리 상승 기조가 끝나야 투자자들이 움직입니다.”

 

이병건 팀장은 금융 시장이 어렵다는 것을 전제로 2023년에는 보험업종의 전망이 낫다고 조언한다. 게다가 보험사들은 2022년에만 이미 자동차보험에서 1조 원의 이익을 냈다. “그동안 저금리상태에서 소위 역마진 문제에 시달려왔던 보험사들에게 금리 상승은 분명 긍정적인 요소입니다. 최근 생명보험사들이 과거 판매했던 저축성보험이 만기 도래하면서 어려움을 겪은 것 때문에, 이같은 금리 상황이 보험사들의 주가에 아직 덜 반영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애널리스트를 사라질 직종으로 꼽기도 한다. 하지만 이병건 팀장은 40년 전에는 캔들 차트를 사람이 그렸고 20년 전에는 엑셀을 사용했고 지금은 파이썬으로 작업한다며, 마지막 단계에는 사람이 해야 하는 일들이 있기 마련이라고 강조한다. 세상이 바뀌는 만큼 적응하고 변화하면 미래에도 애널리스트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 남아있을 것이라는 의미다. 새로운 것을 고객에게 설명하려면 그만큼 움직여야 한다며 매일 학습하고 변화하려는 그의 노력이 20년 넘게 금융 분석에 집중할 수 있었던 비결인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