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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든 길에도 풍경이 있으니 실패해도 괜찮다

유정아 | 칼럼니스트
12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간이다. 이맘때가 되면 올 한해도 아무것도 이룬 게 없다는 생각에 밤잠을 설치곤 한다. 온갖 크고 작은 실패의 기억들이 마음을 괴롭힌다.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그 계획을 지켰더라면, 좀 더 신중했더라면…. 후회한다고 해서 바뀔 일이 아니지만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런 나처럼 한해를 흘려보낸 듯한 마음에 잠 못 이루고 뒤척이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번 칼럼은 그러한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다.

실패의 순간 만난 깨달음

5년 전 겨울 어느 밤, 나는 내 덩치만 한 가방을 멘 채 터키의 한 바닷가 마을을 헤매고 있었다. 갑작스런 비에 길이 심하게 밀려 버스가 연착된 탓이었다. 해지기 전에 도착했어야 했는데, 버스에서 내렸을 때는 이미 한밤중이 다 되어 있었다.

불빛 부스러기도 없는 늦은 밤 골목길은 무섭도록 적막했다. 춥고, 짐은 무겁고, 배도 파오고, 비는 추적추적 내리는데 손에 쥔 건 가이드북에서 잘라낸 지도 하나뿐, 우산도 연락할 사람도 없었다. 덜컥 겁이 났다.

이틀 전까지의 계획대로라면 지금쯤 근처의 관광 도시에 있어야 했는데, 예쁘고 한적한 마을이 있다는 말에 혹해 행선지를 바꿔버린 게 화근이라면 화근이었다. 쫄쫄 굶은 채 어두운 골목을 홀로 걷고 있자니 후회가 밀려왔다. 남들처럼 투어로나 들를 것을. 한참 걷다 보니 호텔이라 적힌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허겁지겁 들어가 벨을 누르자 놀란 눈빛의 주인 남자가 나왔다.

내 몰골과 표정에서 상황을 파악한 호텔 주인은 내가 예상한 숙박비의 딱 두 배를 불렀다. 쓴 입맛을 다시며 돈을 낸 내게 그는 방 열쇠를 건네주며 ‘럭키 걸’을 연발했다. 내가 오늘 이 호텔의 유일한 손님이라 제일 좋은 방을 준다는 거였다.

그런데 웬걸. 문을 열고 들어간 방은 가관이었다. 청소를 언제 한 건지 집기가 여기저기 널려 있는가 하면 사방에 먼지가 쌓여 있었다. 씻으려고 수도를 트니 찬 물만 나왔다. 주인을 부르고 싶었지만 다른 투숙객도 없는 상태에서 그를 내 방에 들이는 건 너무 무서웠다.

덜덜 떨며 대충 씻고, 차디찬 초코바 하나를 우적거리며 침대에 누웠다. 이가 갈렸다. 석양을 보며 여유롭게 저녁을 먹겠다던 어제의 계획이 터무니없게만 느껴졌다. 내가 미쳤지, 내일은 곧바로 다른 데로 가버릴 테다. 이불을 둘둘 말고 누워 있다 설핏 잠이 들었다.

자는 둥 마는 둥 뒤척이다 새벽에 눈을 떴다. 비가 그쳤는지 밖은 조용했다. 뻐근한 팔다리를 주무르며 창문을 가리고 있던 커튼을 젖혔다.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창밖은 온통 금빛이었다.

오로지 파도 소리만 들리는 가운데, 발코니 바로 앞에 펼쳐진 바다 위로 해가 구름을 가르며 조용히 떠오르고 있었다. 들리는 거라곤 파도 소리뿐이었고, 난간 아래 바위에는 노란 고양이 한 마리가 나른하게 몸을 펴고 있었다. 모든 게 그린 듯이 완벽했다. 온전히 나 하나만 이 풍경에 속해 있는 기분이었다.

전날의 피로와 후회가 씻은 듯이 녹아내리는 가운데,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잘못 찾아 든 곳에도 완벽한 풍경이 있을 수 있구나, 하는.


실패를 인정하다

물론, 그날의 경험이 당장 내 무엇을 바꾸지는 못했다. 나는 졸업을 앞둔 대학생이었고, 등록금 낼 돈을 털어 다녀온 한 달짜리 여행에서 교훈을 발라내고 앉아있기엔 눈앞에 닥친 과제가 너무 많았다. 불투명한 미래 앞에서 감상은 빠르게 둔탁해졌다.

또래의 많은 학생들이 그랬듯 나도 졸업 즈음 깊은 자괴감에 빠졌다. 여기저기 욕심껏 손 댄 건 많았는데도 무엇 하나 번듯하게 성공한 게 없었다. 실패로 끝난 목표들은 그것을 준비했던 시간까지 집어삼키며 이력서 곳곳에 구멍을 냈다. 그걸 보고 있노라면 내 인생에 쓸모 있는 부분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아 참담했다. 무언가를 준비하다 실패한 ‘공백기’를 어떻게 그럴싸한 변명으로 둘러댈까 고민하는 데 많은 시간을 썼다. 몇 달이 지나면 그 시간들이 새로운 공백기가 됐다. 악순환이었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낸 후, 간신히 작은 회사에 들어갔다. 근무 환경이나 조건은 형편없었지만, 이렇다 할 경력도 스펙도 없는 나를 받아준 곳이니 실망시키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보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사장은 내 가능성을 보고 뽑은 게 아니었다. 별로 내세울 것이 없는, 그래서 아무리 막 대해도 다른 곳으로 쉽게 옮기지 못할 것 같은 사람을 찾은 것뿐이었다. 내 과거의 수많은 실패들은 다시 한 번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자책과 모멸감에 밤마다 잠을 설쳤지만 그래도 아침이면 꾸역꾸역 출근했다. 그 동안 시간 낭비한 벌을 받는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러던 어느 날, 출근길에 어느 회사의 구인 공고를 봤다. 꼭 하고 싶었던 일이었다. 잃을 것도 없는 마당에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그날 밤 울면서 내 모든 실패 경험을 털어놓은 자기소개서를 썼다. 떨어질 때 떨어지더라도 더 이상 변명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 다음 주, 나는 합격 통보를 받았다.

좋았지만 어리둥절했다. 이제껏 스스로를 감추고 포장하려 애쓸 때는 아무도 나를 봐주지 않았는데. 입사 후 나를 뽑은 이유를 물었다. 나 같은 사람이 필요했다고 했다. 결핍과 실패를 아는 사람이. 다행스러웠으나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더 나은 길로 향하는 과정일 뿐

그 말의 의미를 알아차리게 된 건 한참이 지나서였다. 사람을 만나고 글을 쓸 때마다, 무언가를 실패했을 때의 기억이 한 조각씩 떠올라 길잡이 노릇을 했다. 시험에 떨어진 사람을 가장 괴롭히는 건 무엇인지, 돈 없는 사람이 왜 예민해지는지, 자신감을 잃은 사람이 어떻게 작아지는지, 그리고 그들이 그나마 위로 받을 때는 언제인지. 겪어봤기에 볼 수 있었고 아니까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었다.

처음엔 신기했다. 같은 일이 여러 번 반복되자, 내가 그렇게 쓸모없는 시간을 살아온 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이제껏 ‘버린 시간’이라 여겨 온 나날들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내가 무슨 시험에 떨어졌고 무슨 자격증을 놓쳤고 하는 결과들이 아니라 그 당시의 생각과 감정과 일상들을 꼭꼭, 오래 씹었다.

많은 순간들이 보였다. 내 자격지심 때문에 멀어진 친구, 집 앞에서 눈물을 꾹꾹 참고 들어갔다 엄마 얼굴을 보자마자 통곡한 밤, 아무 버스나 잡아타고 앉아 마음을 다잡으려 애쓰던 날과 웃는 낯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이 괜히 미워 보이던 찌그러진 감정. 실패의 찌꺼기처럼 느껴져 내버렸던 것들인데, 돌이켜보니 그런 순간에 스쳤던 슬픔과 미안함과 아픔이 차곡차곡 쌓여 지금의 나를 지탱하고 있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쳤을 때 5년 전 겨울에 보았던 그 해변의 일출이 불현듯 떠올랐다. 잘못 들었다고 생각한 여행길에서 마주친, 잊을 수 없는 풍경이.

문득 지금까지 살아 온 모든 순간이 그런 풍경과 같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성공이니 실패니 하는 것들은 그 순간이 지나면 아무것도 아니게 되지만, 그 동안 보고 느낀 것들은 끝에 무엇이 있든 기억에 새겨지니까. 어쩌면 사람은 길의 끝에 놓인 결과가 아니라, 눈에 담은 길가의 풍경들을 곱씹으면서 깊어지는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자 실패가 예전처럼 두렵지만은 않았다.

힘들어 봐야 인생의 진리를 깨우친다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나는 여전히 성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실수하지 않으려 애쓰며 산다. 가능한 실패하고 싶지 않지만, 어떻게 하더라도 앞으로 무수히 무너지리라는 것 역시 알고 있다. 다만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 순간들을 더 이상 쓸모없는 시간이라 여기지 않을 뿐이다. 잘못 든 길에도 풍경이 있을 테고, 가끔은 완벽히 아름다운 순간을 마주칠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그 순간들이 다음 날들을 살아갈 때 길잡이가 되어 줄 테니까.

그러니 아무리 많은 밤을 괴로워하며 지새우는 사람이라도 자신이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생각만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괴로움을 느낀다는 자체가 삶의 어느 지점을 지나고 있다는 증거니까, 그냥 지금 보이는 것을 빠짐없이 눈에 담으면서 또박또박 걸어갔으면 한다. 언젠가 또 다른 갈림길에 서게 됐을 때, 지금의 풍경들을 꺼내보며 조금 더 좋은 길을 고를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