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Home >

1인 가구들, 나홀로 세상에 서다

1인 가구들, 나홀로 세상에 서다
혼자 사는 사람들, 즉 1인 가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혼밥, 혼술, 혼남 등 ‘혼자’라는 말이 들어간 신조어도 유행을 타기 시작했다. 방송국에선 이 유행을 발 빠르게 프로그램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왜 우리 사회는 혼자 사는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두는 것일까? 2016년 대한민국의 ‘나홀로 세상’을 들여다본다.


부러우면 지는 거야


명절 때마다 결혼 이야기만 나오면 벽장 속에라도 숨고 싶었던 노총각, 노처녀들이 우리 주변엔 너무나 많다. 그들에겐 결혼 이야기 자체가 명절증후군을 만드는 원흉이었다. 하지만 세상이 어느 순간부터 달라졌다. 결혼을 꼭 해야 한다는 말이 사라지고 혼자 사는 사람들을 바라보던 부정적인 시선도 줄어들었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 그늘을 벗어나 좀 더 밝은 곳으로 나오게 되었고, 사람들은 더 이상 그들을 외톨이나 아웃사이더로 보지 않게 되었다. 

통계청 발표(2015년)에 따르면 대한민국 전체 가구 수는 1,911만 가구이며, 이중 1인 가구가 520만 가구로 전체의 27.2%를 차지한다. 대단한 변화다. 특이한 것은 유럽에서 시작된 1인 가구 열풍이 미국으로 넘어가 일본으로, 그리고 우리나라로 순으로 확산되는 모양새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확산속도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빠르다고 한다.



달라진 것은 인구구조뿐만이 아니다. <나 혼자 산다> , <미운 우리 새끼>, <불타는 청춘>, <혼술남녀> 등 혼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TV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그들을 보는 시각도 변하기 시작했다. 퀴퀴한 냄새가 가득 찬 노총각의 방이 여과 없이 시청자의 안방까지 노출된다. 시청자들은 결벽증에 가까운 성격으로 ‘먼지웅’이라는 별명까지 붙은 한 남자의 일상을 보며 박장대소한다. 

과거와는 확연하게 달라진 풍경이다. 혼자 사는 사람들의 우중충함보다는 혼자 살면서 느끼는 재미와 자유로움이 강조된다는 점이다. 이를 지켜보는 시청자들은 1인 가구의 생활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오히려 부러움의 대상으로까지 여긴다. ‘부러우면 지는 거야’라는 말이 1인 가구를 바라보는 사람들 마음속에 은연중에 퍼지고 있다.


신인류, 1인 가구의 등장


약 20만 년이 넘는 인류 역사를 놓고 보면 1인 가구의 역사는 코끼리 발밑의 개미처럼 미미하다. 1인 가구가 사람들로부터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00년도 채 안 된다. 이런 주거형태는 인간들 생태계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정도로 그 영향력이 거대해지고 있다. 산업화와 도시화는 여럿이 모여 사는 것보다는 혼자 살 수밖에 없는 가구 형태를 만들었다. 글로벌 경기 침체와 청년실업 등은 20~30대 1인 가구 증가에 불을 댕겼다.



게다가 독일의 사회학자인 게오르크 짐멜이 ‘대도시는 개인에게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다른 환경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사적 자유를 보장한다’라고 표현한 것처럼, 도시화는 농경사회에서 는 거의 불가능한 ‘개인화’를 실현시킴으로써 1인 가구들에게 무한한 사적 자유를 보장해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게 한다. 

1인 가구의 증가는 새로운 사회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다. 가족이라는 범위 안에 들어오지 못 했던 1인 가구가 ‘혼자 사는 가구도 가족으로 볼 수 있다’는 약간은 비상식적인 개념으로 인정받는 분위기다. 국내 한 언론사가 ‘독신자를 하나의 가족으로 볼 수 있느냐’라는 물음에 약 22%가 ‘그렇다’라고 답한 결과만 보더라도 가족이라는 기존 개념이 깨지고 있는 것이다. 인류 탄생을 암시하는 장면으로 유명한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처럼 1인 가구의 등장은 신인류 탄생을 알리고 있다.


솔로 이코노미의 등장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결혼과 출산은 조상을 숭배하는 절대가치인 동시에 노동력을 생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봤다.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에겐 세금을 더 부과하고 심지어 선거권까지 박탈했다고 한다. 혼자 사는 사람은 역적인 셈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혼자 사는 사람들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보호하는 시대다. 1인 가구의 역할과 사회적 기능이 커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자 혼자 사는 사람들의 경제활동이 주목받고 있고, 나아가 침체된 사회를 구원해줄 구원투수로까지 인식되고 있다. 바로 ‘솔로 이코노미’의 등장이다. 

지난 2007년, 각국의 경제수장들이 모여 세계경제동향을 논의하고 협력을 다지는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1인 가구’와 ‘솔로’에 대한 개념이 처음으로 언급됐다. 솔로 이코노미라는 말을 전 세계인들이 인지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이때를 분기점으로 혼자 사는 사람들의 생활패턴이 사람들의 관심거리로 떠올랐다. 1인 가구를 타깃으로 한 생산이 증가하고 소비도 활발해지면서 솔로 이코노미의 개념은 세계적인 트렌드가 되었다.



수익창출이 최우선인 기업도 비즈니스 타깃으로 그들을 보고 있다. 1인 가구를 위한 메뉴를 개발해 대박을 낸 홍대 라멘집을 시작으로 1인 가구를 위한 음식과 재료, 가전과 가구 그리고 다양한 서비스 개발까지 기업들의 1인 가구 사랑은 활활 타오르고 있다. 그중 가장 큰 혜택을 보고 있는 분야는 편의점을 중심으로 한 생활형 유통기업이다. 혼밥과 혼술에 익숙한 1인 가구들을 겨냥한 편의점형 상품들이 큰 인기를 끌면서 편의점 업계와 대형마트 업계의 수익률은 최근 2~3년 새 큰 상승폭을 보이고 있다. 앞으로도 이런 추세는 지속될 전망이다.




이제는 울타리를 정비해야 할 때


통계에는 잡히진 않지만 실제로 1인 가구나 다름없는 사람들이 있다. 본인의 의사와는 반대로, 혹은 불가피하게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비자발적 솔로가 정부기관의 지방이전 정책으로 불가피하게 가족과 떨어져 지내게 된 공무원들이다. 그들에겐 가족이 있지만, 생활은 1인 가구의 모습을 하고 있다. 나홀로 생활을 즐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혼밥과 혼술에 적응하지 못한 채 힘든 공직생활을 이어가는 사람도 많다. 

한편 1인 가구에서 10가구 중 3가구는 60세 이상이 혼자 사는 독거노인 가구다. 이 노인들은 농촌이나 어촌 등의 시골집에서 혼자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이 통계청의 자료로 분석한 결과 지난해 60세 이상 1인 가구의 상대적 빈곤율은 67.1%였다. 각 지자체는 자의반 타의반 격리돼 혼자 사는 이들을 위해 다양한 대책을 선보이고 있다. 1인 가구의 증가는 솔로 이코노미를 만들어 내는 등 경제적인 순기능도 있지만, 고민해야 하는 사각지대임에는 틀림이 없다. 

해가 바뀌고 계절이 바뀌면 집집마다 대청소를 하고 부실한 곳은 손을 본다. 가족 구성원 중 한 명이 결혼을 하거나 유학, 군 입대 등 가족을 떠나는 일이 생기면 가구배치를 다시 하거나 집안을 정비한다. 1인 가구 급증으로 전통적인 가족 개념이 사라지면서 우리 사회도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으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오랜 시간 동안 4인 가구를 중심으로 이어온 제도와 규정들이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기엔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신인류로 우뚝 선 1인 가구, 이미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고 이들이 만들어 내는 솔로 이코노미가 침체된 경기를 되살려줄 원동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우리 미래산업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그들과의 공존을 어떻게 꾸미느냐에 달려있다. 기존의 울타리부터 정비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