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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첩 속 음식이야기④ 개장국과 육개장

음식평론가 황광해의 식유기

화첩 속 음식이야기④

개장국과 육개장

By동대리


육개장은 개장국이 그 전신(前身)이다. 개장국은 개고기를 재료로 끓인 장국이다. 문제는 개장국이었다. 원래 안동에서는 개장국이 널리 유행했을 것이다. 안동 장씨 할머니가 쓴 <음식디미방>에도 개고기 손질법이 자세히 나온다. 그러나 개고기에 대한 호불호는 극명하다. 그 시절에도 개고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있었다.


scene #1. 정조 1년(1777년) 7월, 정조 암살범 일당 ‘개 잡는 집’에 모이다

 

<명의록>에 있는 내용이다. 사건은 간단하다. 홍상범, 전흥문, 강용휘 등이 정조 암살을 시도한다. 암살 시도 내용은 유치할 정도로 간단하다. 정조가 잠자고 있는 궁궐, ‘존현각’의 지붕에 올라가서 정조 암살을 시도한다. 정조는 즉위 이전부터 암살의 위협에 시달렸다. 밤에 잠자리에 들 때도 옷을 챙겨 입고 위급한 상황을 준비했을 정도였다. 이날도 마찬가지. 지붕위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자, 정조는 즉각 대응한다. 범인 일당은 궁궐 밖으로 도망친다. 

 

“7월 28일, 대궐 밖의 ‘개 잡는 집’에 가서 강용휘와 전흥문이 개장국을 사 먹고 나서 함께 대궐 안으로 들어갔는데, 별감 강계창과 나인 강월혜를 불러 한참을 귀에 대고 속삭였습니다.” 이날의 상황에 대한 범인들의 실토 내용이다. 범인들은 이날 거사가 실패하자 모두 도망을 친다. 그리고 다음날 다시 만난다. 역시 ‘개 잡는 집’이다. 범인 전흥문이 털어놓은 내용이다.



“그 이튿날 ‘개 잡는 집’에서 서로 모였는데, 강용휘의 한쪽 발은 물에 넘어져 아직도 젖어 있었고, 홍상범과 성이 김가(金哥)인 사람이 또한 수문통에서 뒤를 밟아 가다가 사세의 기미가 이미 틀려버린 것을 보고서 곧바로 빠져 나왔었습니다.” 정조 암살미수 사건이 있었던 것은 1777년이다. 이때는 한양 도성 군데군데 ‘개 잡는 집’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개 잡는 집’의 가게 이름은 없다. 그저 ‘궁궐 밖 개 잡는 집’이라는 식이다. 

 

조선시대에는 여섯 가지 가축을 먹었다. 6축(六畜)으로 ‘소, 말, 돼지, 양, 개, 닭’이다. 소는 농경의 주요한 도구다. 식육의 대상이 아니다. 소를 함부로 도축하는 것은 법률로 엄격하게 금했다. 말은 교통의 수단이다. 말고기는 조선 초기 나타났다가 곧 사라진다. 양은 한반도에서 잘 자라지 않는다. 돼지는 너무 많은 곡물을 소비한다. 닭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먹는 곡물을 먹는다. 만만한 게 개다. 개를 보양식으로 여기는 것은 우리시대의 잘못된 문화다. 개는 늘 먹는, 상식(常食)의 대상이었다. 정조 암살미수범들이 ‘개 잡는 집’에서 모였던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 신윤복, <주사거배>, 《혜원 전신첩》. 가마솥 두 개를 걸어 놓은 부뚜막 앞에 주모가 술구기를 들고 있다. 가마솥 안의 내용물은 소고기의 허드레고기 부위 혹은 개고기였을 가능성이 있다. 도포(道袍)나 중치막(中赤莫)차림의 선비도 보이지만 붉은색 덜렁과 노란 초립을 쓴 무예청(武藝廳) 별감(別監)하며, 까치등거리에 깔때기를 쓴 나장(羅將)의 모습도 보인다. 간송미술문화재단 제공.


조선시대 풍속화가 혜원 신윤복(申潤福, 1758-?)의 그림 중, ‘주사거배(酒肆擧盃)’가 있다. 배경은 선술집이다. 말 그대로, 서서 술잔을 기울이는 분위기다. 양반들과 하급관리, 천한 직업의 관리들이 너 댓 명 서 있다. 주모는 크고 작은 그릇과 부뚜막을 앞에 두고 앉아 있다. 부뚜막에는 솥이 두 개 걸려 있다. 아래에 아궁이가 있는 걸 보면 뭔가를 끓이고 있거나 이미 끓였음을 알 수 있다. 이 솥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추론한다. 소고기의 허드레고기 부위 혹은 개고기였을 가능성이 있다. 혜원의 이 그림은 정조 암살미수 사건이 일어난 1777년 이후의 작품일 가능성이 많다. 정조 시대는 조선의 르네상스였다. 비교적 풍요로웠다. 고기도 흔해진다. 혜원의 ‘주사거배’는 정조 시대의 풍속도일 가능성이 있다. 이 시대에는 한양에 ‘개 잡는 집’이 흔했다.


scene #2. 개고기를 먹는 것은 야만이다


조선 후기 문신 이유원은 <임하필기>에서 개고기 식용을 둘러싼 찬반 사례를 보여준다. “연경(북경) 사람들은 개고기를 먹지 않을뿐더러 개가 죽으면 땅에 묻어준다. 심상규(1756-1838)가 북경에 갔을 때 경일(庚日, 복날)을 맞아 개고기를 삶아 올리도록 하였다. 북경사람들이 크게 놀라면서 이상히 여기고 팔지 않았다. 심상규가 그릇을 빌려 삶았는데 그 그릇을 모조리 내다버렸다. (황해도) 장단의 이종성(1692-1759)은 잔치에 갔다가 개장국을 보고 먹지 않고 돌아와 말하기를, ‘손님을 접대하는 음식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두 사람이 달랐다.”

 

▲ 조선후기에 이미 개고기 식용파와 비 식용파가 나뉜다.

 

심상규가 성절사로 북경에 간 것은 1812년이다. 청나라 때다. 청나라 사람들이 개고기를 먹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청 태조 누르하치가 죽을 고비를 넘긴 적이 있었다. 산속에서 큰 불을 만났고 정신을 잃었다. 이때 누르하치를 구한 것이 개다. 청나라 사람들이 개를 먹지 않았던 이유다. 심상규는 개를 먹지 않는 북경에서 굳이 개고기를 찾았다. 이종성이 개고기를 피한 것은 그 이전이다. 앞 시대의 이종성은 개고기를 피한 반면 뒷시대 사람인 심상규는 개고기를 즐겨 먹는다. 뒤죽박죽이다. 조선후기에 이미 개고기 식용파와 비 식용파는 나뉜다.

 

scene #3. 육개장은 쇠고기로 마치 개장국 같이 끓여 낸 것이다

 

육개장(肉狗醬)은 ‘육(쇠고기)+구장’이다. 구장은 개장국을 의미한다. 육개장은 쇠고기를 주재료로 마치 개장국 같이 끓인 것이다. 일제강점기 초기 경부철도가 뚫렸다. 일본은 부산항을 이용하여 한반도의 곡식 등을 약탈해 일본으로 퍼 날랐다. 경부철도는 일본제국주의자들이 한반도 약탈의 도구로 만든 것이다.

 

▲ 안동 ‘옥야식당’은 대파를 많이 넣고 끓인 선지해장국을 선보인다.

 

경부철도가 생기면서 작은 도시들이 갑자기 커졌다. 대구가 대표적이다. 작은 도시가 갑자기 커졌다. 사람들이 역을 중심으로 몰려들었다. 사람들이 몰리면 시장이 선다. 시장이 서면 사람들이 더 모여든다. 이들에게는 음식을 먹을 공간이 필요하다. 조선후기에 이미 개고기 식육파와 비 식육파가 갈렸다. 개고기를 피하는 사람들도 많다. 개장국을 끓이되 쇠고기를 사용하는 집들이 생긴다. 대구 육개장의 시작이다. 육개장의 이름이 ‘대구탕(大邱湯)’인 이유다.

 

육개장 끓이는 법은 간단하다. “고기를 삶은 후, 반드시 손으로 찢고 양(내장)은 칼로 썬다. 대파를 많이 사용한다. 고기와 고춧가루, 고추장으로 양념한 채소를 버무려 다시 한소끔 끓여서 낸다. 한번 삶아낸 밀국수를 넣어서 먹으면 맛있다.” 대구식 육개장에는 말린 토란대와 고사리, 대파, 고추기름 등이 들어간다. 고기 부위를 정하지는 않았지만 우둔, 양지 등을 사용한다.

 

▲ 대구 ‘옛집식당’은 육개장 전문식당으로 식객들 사이에서 최고의 맛집으로 손꼽힌다.

 

안동 중앙신시장에는 전국적으로 많은 팬을 가지고 있는 노포 ‘옥야식당’이 있다. 옥야식당은 대파를 많이 넣고 끓인 선지해장국을 선보인다. 고기, 선지, 대파, 무가 주재료다. 육개장이면서 해장국 노릇을 한다. 최고의 해장국이자 육개장인 셈이다. 대구 ‘옛집식당’은 대구 토박이들도 헤매는 깊은 골목에 자리한 노포다. 무와 대파를 많이 넣어서 국물 맛이 달다. 업력이 50년을 넘겼다. 나이든 아주머니가 소량을 만들어 국밥이 다 팔리면 문을 닫는다. 맑은 육개장이다. 대파의 흰 부분을 주로 사용한다. 쇠고기는 한우를 사용한다.

 

▲ 남양주 별내의 ‘황소한마리육개장’은 고사리, 토란대 등을 제대로 사용한다. 손님들도 ‘오래 전에 만났던 육개장 맛’이라고 평가한다.

 

원래 육개장은 황소고기로 끓였다. 남양주 별내의 ‘황소한마리육개장’은 거세하지 않은 황소고기를 이용한 정통 육개장을 내놓고 있다. 고사리, 토란대 등 사용하는 식재료도 정통 육개장에 가깝다.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아 국물이 시원하고 깊다.

 

▲ 종로 ‘시골집’에서는 선지해장국 식 술국, 육개장을 맛볼 수 있다. 석쇠불고기, 사발문어, 육회, 시골메밀묵, 모듬전 등의 메뉴도 인기가 좋다.

 

서울 종로의 ‘시골집’은 안동 장터국밥 식의 해장국 겸 술국을 내놓는다. 원형은 장터국밥으로 육개장과 비슷하다. 현재 주인의 시어머니가 안동 5일 장터에서 팔던 음식을 재현했다. 무의 단맛을 잘 살린 선지해장국 식 술국, 육개장이다. 밥과 술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

 

본문에 소개된 맛집 정보

 

  • 맛집 정보
    • 1 옥야식당: 경북 안동시 옥야동 307-2 / 054-853-6953
    • 2 옛집식당: 대구광역시 중구 시장북로 120-2 / 053-554-4498
    • 3 황소한마리육개장: 경기 남양주시 별내동 588-8 / 031-528-6292
    • 4 시골집: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 230 / 02-734-0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