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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테일한 묘사에 놀라는 <일리야 밀스타인 : 기억의 캐비닛>

이름은 처음 들어도 그림을 보면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친숙함이 느껴지는 일리야 밀스타인의 작품이 있죠. 오늘은 New York Times, Facebook, Google, Gucci, LG전자 등 세계적인 브랜드와 매거진과의 콜라보를 선보이는 젊은 일러스트레이션 작가, 일리야 밀스타인의 전시회를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일리야 밀스타인의 작품들은 특유의 맥시멀리즘 화풍으로 구석구석 숨어 있는 디테일을 찾는 재미가 톡톡했는데요.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신작과 오리지널 일러스트레이션 작품을 포함해 약 120여 점이 준비되었는데요. 삼성역 ‘마이아트뮤지엄’에서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디테일한 묘사에 놀라는 맥시멀리스트의 천국, # 일리야 밀스타인 : 기억의 캐비닛

• 일정 : 23.09.20 – 24.03.03

• 위치 : 마이아트뮤지엄(서울시 강남구 테헤란로518 섬유센터빌딩 지하1층)

• 전화 : 02-567-8878

• 운영 : 10:00 - 19:40 (입장 마감 19:00, 공휴일 정상개관)

• 티켓 : 성인 18,000원 / 청소년 14,000원

*무료 도슨트 평일 주 3회, 3타임 (월,수,금 - 11시,14시,16시)

 

 

극도로 자세하거나 강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무언가를 보았을 때, 우리는 탄성을 내뱉기도 하고 헛웃음을 짓기도 합니다. 일리야 밀스타인의 작품을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서 역시 볼 수 있는 반응이기도 한데요. 책상 위 기린 인형의 발에 걸려 있는 구슬 팔찌, 보도볼록 틈 사이에 핀 잡초와 민들레 꽃, 책 사이 조그맣게 그려둔 인덱스까지 작고 소소한 것들의 디테일까지 친절하게 그려 넣은 일리야 밀스타인의 작품들은 작품 앞에 머무르는 관람객들의 발걸음을 잡아 끈다고 해야 할까요? 마치 작가가 본인의 캐비닛을 열어 하나씩 수집품을 꺼내어 즉석에서 보고 묘사해 주는 것 같이 생생한 표현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캐비닛에 들어갈 만큼 작은 물건이지만 그 작은 것으로부터 수많은 기억을 소환해 낼 수 있듯이, 작가 ‘일리야 밀스타인’의 캐비닛에서 지금 막 꺼낸 듯 한 그의 작품들은 작가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떠한 경험이 축적되었는지 작가의 내면을 한 칸씩 꺼내어 보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합니다.

 

전시는 크게 일리야 밀스타인의 내면을 시작으로 점점 타인과 우리가 사는 세계로 세계관을 확장하는 여정을 따라 총 네 개의 세션으로 나뉘어 소개됩니다. 우리는 이번 전시에서 작가의 세계관이 어떻게 타인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글로벌 협업에 이를 정도로 수많은 이의 사랑을 받게 되었는지 탐구해 보는 시간을 가져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Cabinet 1. A Library by the Tyrrhenian Sea 티레니아해 옆 서재

단독 또는 둘의 인물이 등장하는 작품들이 가장 먼저 등장합니다. 이 섹션에서는 작가의 자아가 두드러지는 작품들과 가장 가까운 타인이라고 할 수 있는 연인을 묘사한 작품들이 주로 등장하는데요. 자화상으로 유추되는 단독 인물이 등장하는 작품에서는 고독과 사색의 묘한 양면성이 드러나며 작가의 사회적인 목소리를 반영해 풍자의 의미를 덧댄 초기 작품들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작가의 커미션 작품들을 볼 때에는 어디에 브랜드의 제품이 녹아들어 있나 로고를 찾는 재미가 있는데요. 특히 LG 전자 커미션 작품은 집안 곳곳에 숨겨져 있는 LG 로고의 가전들을 찾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콜라보로 만들어진 상업 예술임에도 소장하고 싶을 정도로 완성도 있고 광고로 인해 작품의 이야기가 어색해지지 않게 보이도록 하는 것, 아마도 일레야 밀스타인의 장점 중 하나가 아닐까 싶은데요. 아래쪽에 보여드린 사진은 ‘애거사 크리스티의 세계’라는 작품으로 영국 추리 소설의 거장 애거사 크리스티와 로렌스 킹 출판사의 의뢰를 받아 그린 작품에서도 그 매력은 더욱 크게 드러납니다.

 

실제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별장에서 그려진 작품으로 곳곳에 아기자기하게 그려진 소품들이 모두 그녀의 생애를 말해주고 있어 유심히 요소들을 살펴보는 재미가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요? 각각의 소품이자 단서들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 유추해 보세요. 전시를 두 배 더 즐겁게 관람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 Cabinet 2. Riviera Memories. 리비에라에서의 추억들

인물들이 함께 등장하는 작품들로 구성되어 가족 및 친구들과 즐거운 한때를 함께 하는 모습이 등장하는 두 번째 캐비닛, 타인과 공존하는 세계가 그려진 이 작품들에는 상상적인 공간보다는 실제 장소가 등장하는데요. 작품 속 간판, 표지판 등을 통해 그림의 배경을 짐작해 떠올리는 재미가 있습니다. 작가의 삶이 내면에서 외부로 연결되며 작가의 세계가 확장된 것을 볼 수 있는 챕터이기도 합니다. 행복하고 소중한 순간들을 깨알같이 숨겨 놓은 작가의 힌트를 따라 디테일들을 찾아보세요.

“일상 속 작은 부분에서 스스로에게 행복감을 줄 수 있는 것을 찾아보세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고 스스로를 소중하게 대하는 것이 분명 당신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줄 거에요” 소소한 일상에서의 행복을 말하는 일리야 밀스타인의 작품 속에서는 빛과 그림자를 이용해 일상의 행복을 표현하는 데 섬세하게 묘사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섹션에서의 작품들은 더욱 따스한 느낌과 생동감이 가득한데요. 특히 아래쪽의 길게 이어진 ‘봄베이 사파이어’라는 작품은 파노라마로 이어지는 작품의 왼쪽부터 각각 10년 단위로 변화하는 20세기를 인물의 의복을 통해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하나의 연대기를 한눈에 보여줍니다. 사람들의 생활과 여가, 기술의 변천사와 달리 변함없는 사랑을 받는 정원의 모습을 아름답게 묘사된 것을 대표적으로 보여준답니다.

섹션의 중간에 특별한 공간을 발견해 보세요. <책거리>라고 마련된 이 공간에서는 이전에 공개되지 않았던 원화 드로잉을 포함해 채색되지 않은 작품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머릿속에서 이미지를 그리는 것으로 시작해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를 종이 위에 펼쳐내는 방식으로 작업을 한다고 하는데요. 이 디테일한 드로잉 속에서 작가의 컬렉션과 취향을 엿볼 수 있습니다. 또한 책거리의 중간에는 ‘티레니아해 옆 서재’를 접목해 특별한 포토존이 마련되어 있어 직접 책상에 앉아 작품 속 작가의 모습에 몰입해 인증샷을 남길 수 있습니다.

 

# Cabinet 3. Evening in Soho, Summer 1983. 1983년 여름, 소호의 저녁

공동의 장소, 군중, 번화가 등 더 큰 외부 세계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등장합니다. 이 섹션에서는 밀스타인이 표현하는 군중의 양면성을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일리야 밀스타인을 세상에 알리는 데 큰 계기가 되었던 뉴욕 타임즈와 협업한 작품 시리즈가 대표적입니다. 소호, 트라이베카, 할렘, 이스트 빌리지 등 뉴욕 맨해튼의 주요 구역에 거주했던 실제 인물이 경험한 과거의 기억들을 참고하여 그린 이 시리즈에서는 흔히 볼 수 있을법한 거리 풍경을 작가 특유의 예리하고 위트 있는 통찰력으로 표현합니다. 작은 부분이지만 표지판과 상징성이 있는 요소들을 바탕으로 위치와 시기를 짐작할 수 있는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작가의 대부분의 작품들이 아기자기하고 서정적인 작품들이 가득하지만, 사회적 목소리를 전달하기도 하고 가끔은 위트 있게 비틀어 풍자의 의미를 전하기도 합니다. 지역 공동체나 활기찬 거리 풍경뿐 아니라, 작가의 상상과 직관으로 창조된 세계와 군중을 기이하게 묘사한 개인 작품들도 함께 공개되는데요. 밀스타인이 표현하는 군중의 양면성으로 순수와 상업 예술의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독특한 세계관을 확인해 보세요.

 

# Cabinet 4. Lost Portrait in the Cabinet 캐비닛 속 분실된 초상화

애니메이션 라따뚜이를 떠올리게 하는 영화 속 한 장면. 인간 링귀니가 쥐 레미에게 식당을 열어주며 간판을 달아주고, 레미의 가족이 그의 다름을 포용해 주며 식당 일을 돕는 등 영화의 후반부가 등장합니다. 유치한 만화영화일 것이라는 편견을 가졌던 작가는 첫 장면을 본 후 매료되어 어린이를 타겟으로 하는 애니며이션도 아름다울 수 있고 큰 감동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을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는데요. 재미있게 봤던 영화 속 한 장면이 작품으로 나타나니 괜스레 반갑기까지 합니다.

 

인물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 작가의 신작들을 볼 수 있는 가장 마지막 섹션인데요. 특정 인물이 그려지지 않음으로써 작품 속 장소는 더 많은 상상을 유도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순수한 풍경 자체를 그려내는 것에 집중했는데요. 자연과 동물, 공간만을 묘사한 이 섹션의 작품들을 통해 세계를 초월한 여백을 느끼며 색다른 상상들에 빠져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I hope that my work feels relatable and Allows the viewer to enter the image”

제 작품이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그들이 작품 속으로 들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토록 섬세하고 디테일한 작업 스타일을 갖고 있는 ‘일리야 밀스타인(1990)’은 기이하고 밀도 높은 묘사의 대가인 ‘히에로니무스 보스(Hieronymus Bosch)와 피터르 브뢰헐(Pieter Bruegel)과 같은 일본 목판화, 이집트와 아즈텍 상형문자 등의 요소 등에서 다양한 영감을 받는다고 하는데요.

 

작가만의 독창적인 맥시멀리즘 화풍의 경이로운 디테일과 가독성을 띄는 그의 작품들은 순수미술과 상업 예술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듭니다. 단 한 점의 작품 만으로도 작가의 아기자기하고 디테일 넘치는 스타일을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나요? 작품이 한 점씩 더해질수록 지금껏 발견하지 못했던 또 다른 새로운 면모를 발견해 나가는 것 같은 전시였습니다.

현장에서는 평일에 시간을 맞추면 무료 오디오 도슨트를 들을 수 있고, 시간이 맞지 않더라도 ‘큐피커’어플을 통해 3,000원의 유료 도슨트로 더욱 실감 나게 전시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약 40-50분 정도의 관람 시간으로 여유를 갖고 전시를 즐겨 보시는 것은 어떠실까요? 전시 관람을 마치고 나오면 정말 다양한 굿즈의 라인업을 만나보실 수 있는데요. 아기자기한 일러스트레이션 작화가 많았던 만큼 사고 싶은 엽서의 개수가 많아 가짓수를 줄이는 것이 힘들더라고요. 이 외에도 퍼즐, 수첩, 테이프, 포스터, 그립톡과 클립, 포스트잇 등 정말 다양한 종류의 굿즈들 역시 이 전시의 매력 요소 중 하나였습니다.

 

이미 뉴욕 타임즈와 구글, 페이스북, 구찌 그리고 국내의 LG전자까지 수많은 세계적 브랜드들의 러브콜을 받는 작가로 어디선가 한 번쯤 작가의 작품을 본 적이 있는 분들이 많아 이번 전시는 조금 더 낯익고 반가운 전시가 아니었을까 싶은데요.

 

일리야 밀스타인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전시를 선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소규모 전시를 제외하고 약 120여 점 이상의 대규모 특별 기획전은 처음이라고 합니다. 마이 아트 뮤지엄에서만 볼 수 있는 오리지널 드로잉과 신작이 있다고 하니 얼마 남지 않은 전시 기간이 끝나기 전에 꼭 한번 직접 작품들을 현실감 있게 즐기고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작고 소중한 일상을 작가 만의 방식으로 그려낸 작품들에서 공감을 일으키며 숨은 그림을 찾는 듯한 재미있는 경험을 만끽하실 수 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