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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해 위에서 보는 지리산 노고단 일출 (feat. 미스터션샤인 '무지개다리')

신비를 간직한 지리산은 오래전부터 우리 민족의 영산(靈山)으로 여겨져 왔어요. 경상남도, 전라남도, 전라북도에 걸쳐 우뚝 서 있죠. 가장 높은 천왕봉을 비롯해 해발 1,400m가 넘는 봉우리가 14개나 있어요. 이 봉우리들 사이로 떠오르는 일출은 일생에 한 번쯤 꼭 봐야 할 장관이랍니다.

 

# 지리산 노고단의 일출

▲ 지리산 노고단의 일출

남도의 지붕을 이루는 백두대간의 산줄기는 지리산의 만복대(1,433m), 고리봉(1,248m),종석대(1,361m), 노고단(1,507m), 반야봉(1,751m), 삼도봉(1,501m)으로 이어지고 천왕봉(1,915.4m)에서 끝을 맺어요. 지리산의 3대 봉우리는 천왕봉, 반야봉, 노고단인데요. 지리산은 이 3대 주봉을 중심으로 마치 병풍처럼 펼쳐져 있어요.

 

지리산의 장엄함은 천왕봉의 높이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닌데요. 오히려 그 넓이와 깊이에서 나온답니다. 지리산은 그 면적이 자그마치 485㎢에 달해요. 전북의 남원, 전남의 구례, 경남의 함양, 산청, 하동 등 3도 5군이 머리를 맞대고 있어요.

 

▲ 이른 새벽 노고단 산장에서 노고단 고개로 오르는 길

전라남도와 전라북도의 경계에 있는 노고단은 지리산 봉우리 가운데 가장 쉽게 오를 수 있어 등린이들도 도전해 볼 만한 등산 코스입니다. 주차장이 있는 성삼재 휴게소에서 노고단 정상까지는 3.2㎞, 등린이도 넉넉잡고 2시간이면 정상에 오를 수 있지요.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지리산은 보존을 위해 엄격하게 출입 인원과 출입 시간이 제한돼 있는데요. 일출 광경이 천왕봉에 뒤지지 않는 노고단 탐방로는 예약제로 운영되고 있어요.

 

 국립공원공단 예약시스템 바로가기
https://reservation.knps.or.kr/
 
 지리산 노고단 탐방로 예약하기
https://reservation.knps.or.kr/contents/T/serviceGuide.do?prdDvcd=T&parkId=B01&vrteId=TB013XXX01

 

▲ 노고단 고개 출입통제소에서 바라본 노고단 정상

새벽 4시 무렵 성삼재를 출발해 부지런히 캄캄한 산자락을 오르기 시작했어요. 손전등 불빛에 비친 나무와 계곡이 조금은 괴기하게 보였습니다. 어둠에 눈이 익어 손전등을 껐더니 새벽하늘 구름 사이로 별이 빛났습니다. 새벽 산행은 청량감이 가득했답니다.

 

산행은 노고단 산장을 거쳐 노고단 고개까지 이어져요. 밤하늘에 뜬 수많은 별을 벗 삼아 어두운 탐방로를 1시간가량 걸어 노고단 고개 출입통제소에 도착했어요. 멀리 노고단 정상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다시 나무 계단을 20분 정도 올라 마침내 노고단 섬진강 전망대에 도착했어요. 해 뜰 무렵 노고단 정상에는 사람들이 숨죽여 일출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곧 여명이 밝기 시작하더니 산등성을 넘어가는 구름바다를 지켜보는 동안 구름 사이로 한 줄기 빛과 함께 찬란한 햇살이 나기 시작했어요. 중첩된 산봉우리들이 갑자기 멀리까지 모습을 드러냈지요. '광명'이라는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답니다. 여기저기에서 탄성이 들려왔고, 지리산 동쪽 천왕봉 방향에서 떠오르는 태양은 매우 장엄했습니다.

 

주변이 서서히 환해지고 하늘과 산은 칠흑에서 연분홍빛으로, 다시 푸르게 변해갔습니다. 빛이 사방으로 뻗어가면서 대지의 숭고한 풍경이 가슴 벅차게 한눈에 들어왔어요. 해가 뜨고 밝아 오면서 화엄사 골짜기가 윤곽을 드러내고 구례를 덮었던 하얀 구름이 미세하게 흘러가는 것이 보였어요.

 

황홀한 천왕봉 일출은 3대를 두고 공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고 하죠. 지리산의 일출은 조정래 선생의 장쾌한 『태백산맥』에 환상적으로 그려져 있어요. 조선 초기의 문신이자 서예가인 김일손 역시 일출의 인상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한밤중 천지가 청명하고 큰 들은 광막하여 흰 구름은 산골짜기에서 잠을 자는 듯한데, 마치 바다의 밀물에 올라앉은 것 같고, 머리 내민 산봉우리들은 흰 파도에 드러나는 섬처럼 점점이 찍혀 있다. 내려다보고 쳐다보니 마음이 오싹하고 몸은 태초의 원시에 와 있고, 가슴속은 천지와 함께 흐르는 것 같다. 이튿날 여명에 해가 돋아 오르는 것을 보니 밝은 허공이 거울과 서성이며 사방을 바라보니 만 리가 끝이 없고 대지의 뭇산은 개미집이나 버러지 자국만 같다. 다만 구름이 하늘에 붙은 줄로만 알았고 그것인 반공에 떠 있는 물건이라는 것을 몰랐는데 여기 와서 눈 아래 펀펀히 깔린 그 아래는 반드시 대낮에 그늘져 있을 것이다."

 

# 지리산 3경 노고단 운해

노고단은 제사를 지냈던 터였기 때문에 봉(峰)이라는 지명보다 단(壇)이라는 표현이 적합하여. 노고봉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노고단 이름은 지리산 천왕봉의 할미당에서 유래했어요. 천왕봉 기슭에 '할미'에게 산제를 드렸던 할미당이 통일신라시대까지 있었는데, 고려 시대에 이곳으로 옮겨져 한자어인 노고단(老姑壇)으로 된 것이죠. 노고단이란 늙은 시어머니를 위한 제사 터를 말하는데요. 우리말로는 할미단이라고 하지요. 고(姑)는 마고를 뜻하기도 해서 마고 할머니를 위한 제사 터라고도 합니다.

 

조선시대에는 지금의 노고단 자리에서 서쪽으로 2㎞ 떨어진 종석대(1,361m) 기슭으로 할미당을 옮겨 산제를 드렸다고 전해져요.

 

지리산에는 10경이 있는데요. 바로 천왕 일출, 피아골 단풍(직전 단풍), 노고운해, 반야낙조, 벽소명월, 세석철쭉, 불일현폭, 연하선경, 칠선계곡, 섬진청류랍니다.

 

이 가운데 3경에 들어가는 ‘노고운해’는 노고단 정상 아래 펼쳐지는 '구름바다'의 절경을 가리킵니다. 여름철 노고운해 속에 원추리 꽃과 야생화가 만발하면 노고단 주변은 천상의 화원을 이뤄요.

 

노고단은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아고산대 초원 지대로 기온이 낮고 바람이 많아 키 큰 나무가 잘 자랄 수 없는 조건을 갖추고 있답니다. 또 지형 특성상 바위보다는 흙이 많아 원추리, 지리터리풀, 일월비비추, 큰까치수염, 노루오줌, 흰제비난 등 20여 종의 야생화가 계절마다 피어납니다.

 

유홍준 선생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지리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채색 장식화 보다는 수묵 담색화를, 예쁜 분원사기보다는 금사리 가마의 둥근 달 항아리를 좋아하고, 바그너나 모차르트보다는 바흐를 좋아할 것이며, 그런 사람이라면 톨스토이의 소설을 책상에 앉아 줄을 치며 읽을 것이라며, 하나의 안목은 다른 안목에도 통한다고 했어요. 그는 '산은 지리산'이라고 치켜세우기도 했죠.

 

그는 복잡한 마음을 달래고 새로운 희망을 품기 위해 오른 지리산 노고산에서 일출과 운해를 보며 마음속에 '산은 지리산'으로 자리 잡았어요.

 

# 지리산 천은사의 무지개다리

▲ 지리산 천은사 무지개다리 수홍루

새벽어둠 속에 지나쳤던 계곡과 나무를 살펴보며 노고단에서 내려오는 길에 천은사에 들렸어요. 천은사는 인근 화엄사, 하동 쌍계사와 더불어 지리산을 대표하는 3대 사찰 중 하나이지요.

 

안내판에 쓰여 있는 ‘구렁이의 전설이 깃든 감로천’, ‘아름다운 무지개다리 수홍루’라는 표현은 천은사를 잘 나타내는 문구처럼 보입니다.

 

▲ 무지개다리 수홍루와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한 장면

일주문을 지나면 곧바로 예쁜 무지개다리와 수홍루가 보여요. 천은사의 아름다움은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에서, 애신이 수홍루에서 희성을 응원하는 장면, 구동매가 극락보전에서 애신 부모에게 애절하게 고백하는 장면을 통해 소개되기도 했죠.

 

▲ 소나무 숲과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한 장면

천은사의 진가는 팔상전을 돌아 담장 밖으로 나설 때 발휘되는데요. 야생차밭을 지나 계곡을 건너면 소나무 숲이 펼쳐집니다. 쉬엄쉬엄 걷다보면 이 길은 수홍루 앞에서 끝을 맺습니다.

 

▲ 보제루에서 바라본 극락보전과 배롱나무

마당을 사이에 두고 극락보전을 마주 보고 있는 보제루는 설법을 하고 신도들이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마련된 누각입니다. 보제루에 들어앉아 창틀에 기대서 두 발을 잠시 쉬었어요.

 

천왕문 위로 커다란 은행나무가 낮게 흔들리는 것이 보였는데요. 비가 시원하게 내려도 좋을 풍경이었어요.

▲ 천왕문과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한 장면

천은사의 정확한 창건 연대는 전해지지 않아요. 신라 흥덕왕 3년(828) 인도 출신 덕운 스님이 창건한 후 도선국사가 중창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확실한 기록은 없답니다. 고려 시대 이후로 번성했지만 임진왜란 등을 겪으며 사찰의 역사는 잊히고 지워졌어요. 이후 광해군 2년(1610) 소실된 가람을 중창해 명맥을 이었답니다.

 

천은사는 원래 마르지 않은 샘이 있어 감로사라고 불렸는데요. 숙종 5년(1679) 중건하면서 절 이름이 천은사로 바뀐 것이랍니다. 절 샘가에 출몰한 큰 구렁이를 잡아 죽인 후로 물이 솟지 않아 ‘샘이 숨었다’는 뜻의 ‘천은사’가 된 것이죠.

 

하지만 화재가 자주 발생하는 등 불상사가 끊이질 않자 원교 이광사(1705~1777)가 ‘마치 물이 흘러 떨어질 듯한 필체’로 일주문 현판을 써주자 그 후론 화재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해요.

 

지리산 노고단 탐방로는 다른 코스에 비해 등산로가 완만한 데다 식물 자원이 풍부해 누구나 언제든 지리산 깊이 걸음을 옮길 수 있는 곳입니다. 정상을 향하여 오르다가 무심결에 뒤를 돌아본 순간 펼쳐지는 발아래 구름바다는 형용할 수 없는 풍경이랍니다. 도시 생활에 몰두하던 사람들에게 밤하늘에 뜬 별과 노고단 일출 그리고 운해는 큰 감동을 선사합니다. 아름다운 가을로 접어드는 계절, 물병 하나 손에 들고 남도로 훌쩍 떠나 보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