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Home >

닭의 재발견

음식평론가 황광해의 식유기
꿩 대신 닭이 아니다. 소 대신 닭이다. 조선 초기 문신 서거정은 중국 고전을 인용 “소 잡아 제사 모시는 것보다 살아계실 때 닭고기, 돼지고기로 봉양하는 것이 낫다”고 했다.


토종닭은 없다


삼계탕은 우리 시대가 만든 음식이다. 닭과 인삼을 섞어서 끓이면 맛이 아주 좋다. 그러나 닭이 문제다. 이른바 5.5호 닭이다. 550g이다. 병아리를 갓 벗어난 것이다. 뼈도 채 여물지 않았다. 이걸 영계라고 먹으면 곤란하다. 채 자라지 않았으니 맛도 없다. 닭고기의 맛은 근육과 더불어 뼈, 닭 껍질 등에 많이 분포한다. 뼈, 근육, 껍질이 채 성숙되지 않으면 닭고기의 고소한 맛은 없다고 봐야 한다. 닭이 맛이 없다? 각종 견과류를 갈아 넣고, 조미료로 국물을 만드는 이유다. 삼계탕은 좋은 음식이지만 우리가 길거리 식당에서 만나는 삼계탕들은 공장에서 찍어낸 것 같은, 별 맛이 없는 것들이다.

토종닭도 의미 없다. 좋든 싫든 품종 계량은 끊임없이 일어난다. 고려시대, 조선시대 닭 품종은 이미 사라졌다. 현재 토종닭은 불과 50-60년 전의 닭 품종이다. 물론 지금같이 공장에서 만들어내는 닭고기보다는 맛있다. 그러나 닭고기 맛을 정하는 것은 사육 방법이다. 같은 품종이라도 바깥에서 뛰어놀게 하고 방목하면 훨씬 좋은 육질을 얻을 수 있다. 적절하게 운동하고, 햇볕과 바람에 노출되고, 각종 풀씨나 벌레 등을 잡아먹고 자란 닭이 맛있다. 닭고기의 맛은 품종도 중요하지만, 역시 사육 방법이다. 시골길에서 만나는, 바깥에서 방목한 닭이, 좁은 닭장에서 목도 돌리지 못하고 자란 닭보다는 훨씬 맛이 낫다.


◀ 저잣길, 신윤복. 생선을 파는 여인네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풍속화. 이러한 장면은 신윤복(申潤福, 1758-1817 이후)의 풍속화에서는 보기 드문 서민의 생활상이다. (본 저작물은 ‘국립중앙박물관’ 에서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저잣길’을 이용하였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닭고기를 어떻게 먹었을까? 


1) 암행어사가 닭고기 파티를?

한식은 유교를 바탕으로 만든 음식이다. 유교는 사람이 6종류의 고기를 먹도록 규정한다. 이른바 육축(六畜)이다. 소, 말, 돼지, 양, 개, 닭이다. 소는 농사를 짓는 주요한 도구다. 국가에서는 쇠고기, 우육(牛肉)을 아예 금육(禁肉)으로 불렀다. 금지한 고기, 즉 먹으면 큰일 나는 고기라고 했다. 말고기는 조선 초기부터 식탁에서 사라진다. 말이 주요한 교통의 도구여서 도축하지 않았으리라 짐작한다. 양은 한반도에서 잘 자라지 않는다. 기후 조건 등과 맞지 않는다. 돼지는 너무 많은 곡물을 먹고 그에 비해 먹을 수 있는 고기의 양은 그리 많지 않다. 비효율적이다. 결국 남는 것이 개와 닭이다. 그중 닭은 크기가 작다. 만만하다. 닭을 중요하게 생각한 이유다.


▲ 한반도 닭의 역사는 길다. 고려시대에도 양계장이 있었다. 


숙종 7년(1681) 6월, 영의정 김수항이 희한한 탄핵을 한다. “평안도 지방으로 갔던 암행어사 목임일이 지방의 ‘찰방(察訪)’, ‘적객(謫客)’들과 어울려 산의 절을 쏘다니며 연포회(軟泡會)를 열었다”는 것이다. 희한하다는 이유가 있다. 우선, 암행어사는 그야말로 암행을 해야 한다. 몰래 다니며 지방 관리들의 잘잘못을 가리는 것이 임무다. 그런데 암행어사가 하필이면 찰방, 적객이라니. 찰방은 지방 역원의 책임자다. 조선시대에는 관리들이 지방을 다니면 역과 원에서 먹고 잤다. 서류도 챙기고, 사람도 만나고, 말도 쉬게 했다. 역원의 책임자가 찰방이다. 찰방이 암행어사를 알아보면 동네방네 소문이 나기 마련이다. 그것도 파티까지 했다니. 적객은 더 기가 막힌다. 귀양살이 온 사람이다. 잘못이 있어 귀양을 온 주제에 암행어사와 어울려 파티를 했다니. 탄핵감이다. 산에 있는 절이야 넘어갈 수 있다. 조선시대는 숭유억불 정책이 비교적 잘 지켜졌다. 절에 가서 술, 고기 먹고 시회(詩會)를 연 선비들은 엄청 많다. 산사에서 연포탕을 먹으며 연포회를 했다고 해도 문제 될 것은 없다. 마지막 남는 것이 연포회, 연포탕이다. 연포회는 연포탕을 먹으며 노는 것을 말한다. 연포탕은 무엇일까? 연포탕(軟泡湯)의 ‘연포’는 부드러운 두부고 탕은 국이다. 연포탕은 연두부를 끓인 국이다. 특별할 것도 없다. 두부는 귀했지만 사대부들은 더러 먹을 수 있었다. 문제는 이때의 연포탕은 좀 더 화려한 ‘프리미엄 연포탕’이라는 점이다. 닭고기를 삶아서 작게 토막 낸다. 두부를 주사위 모양으로 썬다. 두부와 닭고기를 꿰어서 닭고기 국물에 넣고 끓여 먹는다. 두부 탕에 닭고기와 국물을 더한 것이다. 실제 이렇게 먹으면 맛있다. 


2) ‘계서지약’을 그리워하다

조선 후기에는 이런 연포탕, 연포회가 상당히 자주 있었다. 다산 정약용도 <다산시문집(제7권)> ‘절에서 밤에 두붓국을 끓이다’에서 “다섯 집에서 닭을 한 마리씩 추렴하고, 주사위처럼 썬 두부를 띠 풀에 꿰어 준비한다”고 했다. 역시 배경은 산에 있는 절이다. 조선 후기 홍석모가 쓴 <동국세시기(1849년)>에는 시월의 음식으로 연포탕을 꼽는다. 두부를 잘게 썰어 꼬챙이에 꿰서 지진 다음 닭고기와 함께 끓인 것이다. 목임일이 먹었던 연포회의 연포탕이나 다산의 연포탕과 비슷하다. 모두 ‘닭고기+두부+닭고기 국물’이다.

▲ 아무런 조미도 하지 않고 쪄낸 모든 고기 음식이 백숙(白熟)이다.


조선시대 문인들의 글에 가장 자주 나타나는 ‘닭고기’는 ‘닭과 기장밥’ 그리고 우정에 대한 것이다. 중국 후한(後漢) 때 범식과 장소는 태학에서 같이 공부하며 깊은 우정을 나눈다. 졸업을 할 때가 되었다. 범식은 장소와 헤어지면서 “2년 뒤 9월 15일 그대 집에 찾아가겠다”고 약속한다. 마침내 약속한 날짜가 되었다. 장소는 닭을 잡고 기장밥을 지었다. 장소의 부모는 “범식의 고향이 여기서 천리나 멀리 떨어진 곳인데, 어찌 그가 올 수 있겠느냐?”라고 했다. 장소는 “범식은 신의가 있는 선비이니,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하였는데,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범식이 도착하였다. 닭[鷄, 계]과 기장[黍, 서] 밥에 얽힌 약속[約], 계서약(鷄黍約)이다. 조선의 선비들은 ‘닭과 기장밥’의 우정을 부러워했다. 친구가 찾아오면 ‘계서(鷄黍)’를 준비한다는 표현도 흔하게 나타난다. 


조선시대 가장 흔했던 닭 요리는 ‘백숙(白熟)’이다. 백숙이 닭고기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런 조미도 하지 않고 쪄낸 모든 고기 음식이 백숙이다. 오늘날의 백숙은 조선시대의 ‘연계증(軟鷄蒸)’이다. 닭고기를 부드럽게 쪄낸 것이다. 연계증은 ‘연계백숙(軟鷄白熟)’ 혹은 물로 쪘다고 수증계(水蒸鷄)라고도 했다(음식디미방). 1795년 6월,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 씨의 생신날 밥상에도 연계증이 있고 <오주연문장전산고>에도 별미로 연계증이 거론된다.


3) 맛있는 닭고기를 먹는 법? 욕심을 버린다

큰 닭 파는 집을 찾는 것이 요령이다. 최소 15호 닭(1.5kg) 크기 이상의 닭을 사용하는 집을 찾는 것이 요령. 큰 닭 한 마리당 5만 원을 받고 닭회, 구이, 찜, 죽을 내놓는 집이 좋다는 뜻이다. 호남지역을 중심으로 이런 닭 요리 집들이 더러 있다. 큰 닭 한 마리를 나눠서 먹는 것이 혼자서 삼계탕 한 뚝배기 먹는 것보다 낫다. 경제적으로도 이익이고, 고기 맛도 훨씬 낫다.

▲ ‘박달재’는 제대로 자란 닭들만 사용하고 조선간장으로 간을 맞춘다.


서울 마포 먹자골목의 ‘박달재’는 충청도에서 큰 닭을 공급받아 사용한다. 간장을 넣은 매운 닭볶음탕이 일품이다. 닭백숙도 가능하다. 1인분이 아니라 한 냄비 당 가격을 받는다. 2kg 이상의 닭고기가 주는 맛이 각별하다.

경기도 연천군의 ‘충남식당’은 보기 드물게 장닭을 먹을 수 있는 곳이다. 5kg 이상의 장닭은 미리 전화해서 푹 고아 달라고 해야 한다. 역시 닭 한 마리당 5만 원 정도를 받는다. 원래 두부가 좋은 집. 지진 시골 두부의 맛도 각별하다.


◀ ‘충남식당’의 장닭 백숙, 진짜 백숙을 찾는 이들에게 강추한다.

▲ ‘닭고기 음식점 중 육회를 내놓는 집들은 더러 있지만 ‘약수닭집’처럼 닭 모래주머니와 가슴살을 잘 어울리게 내놓는 경우는 드물다.


‘약수닭집’은 전남 여수시 봉산동 산위에 있는 한적한 닭고기 전문점이다. 여수는 해산물도 좋지만 닭고기도 좋다. 닭회, 구이, 찜, 녹두죽 등이 일품이다. 역시 2kg 이상의 닭 한 마리를 해체해서 여러 요리를 만들어준다. 닭집 마당에서 바라보는 여수만의 경치는 덤이다.

▲ ‘시골집’은 닭 한 마리를 해체해 회, 구이, 튀김, 죽 등으로 보여준다. 닭 회와 더불어 백숙 등이 한상차림으로 나온다.


전남 함평의 ‘시골집’은 닭고기 맛도 수준급이지만 접시에 나오는 모습도 일품이다. 허름한 시골집의 분위기와는 다른 닭고기의 맛이 대단하다. 4명 이상이 가는 것이 좋다. 2명으로는 양이 많다. 가격은 엄나무 백숙이 5만 원 선.


본문에 소개된 맛집 정보

  

   맛집 정보


     1  박달재: 서울시 마포구 토정로37가길 19 / 02-714-3660

     2.   충남식당: 경기도 연천 연천읍 상리로 86번길 3 / 031-834-0513

     3  약수닭집: 전남 여수시 구봉산길 77-8 / 061-642-8500

     4  시골집: 전남 함평 해보면 광암리 329 / 061-322-0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