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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한식의 뿌리, 강진과 순천의 맛

호남 한식의 뿌리, 강진과 순천의 맛
호남은 곡창이 발달했다. 너른 평야가 있고 바다의 생산물도 솔잖게 많다. 산도 적당히 높다. 산에서 나오는 산물도 넉넉하다. 한마디로 먹을거리 대부분이 비교적 넉넉하다. 전남 강진은 ‘남도문화 1번지’이면서 한상차림 호남한식을 내놓는 ‘남도음식 1번지’이기도 하다. 한편 강진, 여수 등이 깊은 맛의 밥상을 낸다고 하지만 정작 순천에는 못 미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호남 한식의 뿌리를 찾아봤다.



여기 한 사내의 뒷모습이 있다. 내륙으로 깊게 들어온 구성포 물줄기를 따라 산을 오른다. 깊은 산속의 초가집 앞에 사내가 멈춘다. 그는 아홉 살에 어머니를 여의었다. 서너 명이나 되는 아들, 딸, 며느리를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나보냈다. 셋째 형은 처형당했다. 둘째 형은 섬에서 귀양살이 중 먼저 죽었다. 그나마 마지막까지 남았던 큰형도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났다. 75세 인생 중 18년을 유배지에서 보냈다. 아름다운 시절은 잠깐이었다. 느지막이 시작한 벼슬길은 10년 남짓이었다. 그나마도 귀양살이에, 귀양과 다름없는 벼슬길이었다.


▲ 다산초당 가는 길, 다산초당에서 백련사까지 이르는 이 길은 다산 선생과 백련사의 혜장선사가 교류하던 길이다.


전남 강진은 다산 정약용의 유배지다. 다산의 벗이자 스승, 멘토이자 든든한 후원자였던 정조 대왕이 1800년 승하하자, 다산과 둘째 형 약전은 바로 벼슬길에서 쫓겨나고 귀양길에 올랐다. 셋째 약종은 일찌감치 처형당했다. 다산은 포항 인근의 장기로 유배를 갔다. 한양에서 ‘황사영 백서사건’이 터졌다. 다시 한양으로 왔다가 문초를 받고 이번에는 전라도 땅으로 유배지를 옮겼다.


황사영 백서사건


조선 후기 천주교도 황사영이 조선의 천주교 박해를 막아달라고 청나라 북경에 있던 프랑스 주교에게 호소문을 보내려다 발각돼 처형된 사건이다. 그 유배 18년 동안 다산은 방대한 분량의 책을 썼다.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같은 숱한 명저들이다. 다산 정약용은 1801년 황사영 백서사건에 연루돼 전남 강진에서 18년간 유배생활을 했다.


약전과 다산은 나주 반남정에서 헤어졌다. 쓸쓸한 형제의 마지막 헤어짐이었다. 1801년 11월의 일이다. 약전은 흑산도로, 다산은 강진으로 갔다. 주막집 뒷방에서 추운 겨울의 유배생활을 시작했다. 문짝마저 성치 않은 주막집 골방이었다고 전해진다. 주모 노파가 괄시했다고 전해지지만 그거야 유배생활의 양념에 불과하다. 형 약전은 유배지 흑산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죽었다. 죽기 두해 전(1814년) <자산어보(玆山魚譜)>를 남겼다. 다산은 주막집에서 시작한 유배생활을 18년 동안 견뎠다.


▲ 길목에서 바라본 강진의 모습, 산길은 구성포 물길과 이어져 수려한 경치를 보여준다.



                                                      ▲ 다산초당                                                                                                                                   ▲ 다산 유물 전시관


어머니는 해남 윤 씨였다. 다산의 외가 해남은 바로 인근에 있었다. 외가 사람들도 처음에는 다산을 멀리했다. 외손이지만 중죄인이다. 천주교 신앙으로 얽힌 역적이면 쉽사리 가까이 하기 힘들다. 다산의 연보에는 ‘봄에 윤단(尹博)의 산정(다산초당)으로 옮김’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1808년 유배생활 8년만의 일이다. 


그해 봄에 옮긴 다산초당이 바로 지금의 다산초당 자리에 있던 초가집이다. 기와집으로 그럴 듯하게 재현했지만 이름부터 이미 ‘초당(草堂)’이다. 초가집이라는 뜻이다. 그나마 살만했다. 이 무렵부터 숱하게 많았던 해남 윤 씨 종가의 책들을 얻어 보고, 빌려본다. 윤 씨 집안 아이들의 ‘글공부 선생’이란 이름으로 외가의 지원을 받으면서 유배생활은 견딜 만해졌다.


▲ 한국 초창기 문단의 거성 ‘모란의 시인’ 김영랑의 생가도 강진에 있다.


유배가 끝나고 고향 마현으로 돌아가서 보낸 세월이 얼추 18년이다. 어차피 벼슬로부터는 멀어졌다. 유배와 글 쓰고 책 지으면서 보낸 세월이 36년, 인생의 절반이다. 강진 구성포 옆의 산길을 오르면 늘 저 앞에 다산이 걸어가는 것 같다. 군데군데 다산 정약용을 떠올릴 만한 기념물들, 길, 표지판 등이 있다. 참 쓸쓸한 이야기지만 다산이 강진으로 유배를 오지 않았다면 강진은 ‘남도문화 1번지’가 되기 힘들었을 것이다. 강진에는 정약용 유적지 외에도 고려청자 도요지, 영랑 생가, 백련사, 전라병영성 등 굵직한 문화유산들이 많다. 다산기념관과 한국민화뮤지엄 등의 전시시설도 있다. ‘남도문화 1번지’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다.


▲ 다산초당 천일각 옆으로 빠져 산길로 들어서면 백련사 서쪽으로 내려서게 된다. 다산초당에서 백련사까지 40분가량 걸린다.


화려한 음식을 기대한다면 반드시 강진일 필요는 없다. 강진 옆으로 흘러드는 구성포는 ‘기수만(汽水灣)’이다. 바닷물이 내륙으로 깊이 들어온다. 한반도에서 가장 긴 기수만이다. 바닷물에 비해 염분 농도가 낮고 내륙 강물에 비해서는 염도가 높다. 물고기와 각종 어패류들이 풍성했던 곳이다. 산도 적절하고 뻘도 좋다. 평야도 적당하고 기후도 좋다. 동요가수이기도 한 영남일보 이춘호 기자는 “한반도의 봄은 강진에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초봄, 보리가 한참 자랄 때 강진에서는 보리를 베어서 넣은 홍어애국을 먹는다. 봄의 시작이다. 육지의 보리와 바다의 홍어가 만난 것이다.


강진의 한식은 화려하지 않다. 고급이라고 부를 필요도 없다. 그저 넉넉하다. 강진 군동면의 된장은 유명하다. 예전의 전통적인 된장이다. 이제 옛 된장을 맛보기는 힘들지만 여전히 강진 읍내의 음식점들은 소박하고 넉넉하다. 그나마 옛 맛을 지니고 있다. ‘둥지식당’, ‘설성식당’, ‘해태식당’ 등이 유명하다. 3~40가지 반찬이 오르는 판에 혼자서 밥상을 청하기는 어차피 힘들다. 2인상, 3인상, 4인상의 가격이 다른 것도 재미있다. 4인상에 5~6만 원 정도면 왕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풍성하게 차려진다.


▲ 해태식당(좌측)과 둥지식당(우측). 강진의 한식은 소박하고 넉넉하다. 수십 가지 반찬이 올라 하나하나 맛보는 재미가 있다.


해태식당은 내외부가 깔끔한 편이다. 음식도 현대적인 맛이 있다. 물론 남도의 장맛은 그대로 살려두었다. 1인분(2만5천원)을 내놓는 것은 이집의 장점이다. 봄에는 강진 특산 대합, 여름에는 민물장어, 가을에는 전어와 오도리, 겨울에는 매생이국이 한자리를 차지한다. 둥지식당의 깔끔하면서도 푸짐한 밥상에 반한 사람들도 많다. 밥상의 그릇들이 청자인 점도 눈에 들어온다. 회, 조림, 찜 등 생선들이 푸짐하다. 짜지도, 비리지도 않은 게장의 감칠맛이 돋보인다. 


‘수인관’은 석쇠에 직접 돼지불고기를 굽는다. 양념에 잘 재어놓은 돼지불고기가 익어가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군침을 삼키게 만든다. 적당히 매콤한 것이 젓가락을 부른다. 껍데기의 쫄깃함도 살아있다. 먹는 내내 불 위에 올려놓아 온도를 유지할 수 있다. 정갈하고 푸짐한 남도음식상에 후식으로 떡까지 차려진다. 이집의 주력 메뉴는 돼지불고기 백반이지만, 백반의 밑반찬만으로도 밥 몇 그릇은 먹을 듯싶다.


▲ 돼지불고기 백반으로 유명한 수인관. 백반 한 상이 한정식 부럽지 않게 푸짐하게 나온다.


“순천서 인물 자랑하지 마라”는 말은 잘못 전달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인물이 미녀를 뜻한다는 주장은 너무 순진하다. 예전의 ‘인물’은 ‘인재(人材)’를 뜻한다. 훤칠하게 생긴 남자나 높은 벼슬살이에 나선 이들을 뜻한다. 순천의 인물은 남자다. 순천은 오래 묵은 도시다. 조선시대에는 ‘순천도호부(順天都護府)’로 인근의 여수, 돌산까지를 포함했다. 일제강점기에도 이 지역의 중심이었으니 인근의 수재들이 모두 순천으로 모였다. 이들이 모두 ‘순천 출신’이 되었다. 순천의 명문학교 출신들이 서울 등 외지로 나가면 모두 ‘순천 출신’이라 밝혔다. “순천에 인물이 많다”는 소문이 났을 법하다. 


순천은 여수와 멀지 않다. 생선류도 좋다. 광주에서 좀 더 편하게 갈 수 있지만 여전히 ‘순천 송광사’라고 표현한다. 송광사를 둘러싼 산들도 제법 높고 널찍하다. 산에서 나오는 나물들도 비교적 흔하다. 바다와 산이 가까이 있고 너른 평야가 발달했다. 더하여 오랜 전통이 있는 도시다. 이 정도면 좋은 음식을 만날 수 있다.


▲ 해태식당(좌측)과 둥지식당(우측). 강진의 한식은 소박하고 넉넉하다. 수십 가지 반찬이 올라 하나하나 맛보는 재미가 있다.


오래 묵은 도시들의 관청 주변에는 괜찮은 밥집들이 많다. 유동인구도 적고 외식이 흔치 않았던 시절, 관청 주변에는 밥집들이 쏠쏠했다. 그중 ‘대원식당’이 오래 묵은 순천의 괜찮은 밥집이다. 굴을 삭히면 굴젓이다. 2~3년 잘 삭히면 굴젓 중 ‘진석화젓’이라고 한다. 석화는 굴이다. ‘진짜 굴젓’이라는 뜻이다. ‘대원식당’의 진석화젓은 일품이다. 밥 비벼 먹어도 좋고 식사 중 가끔 찍어먹어도 좋다. 계절마다 식탁의 반찬들이 바뀐다. 깨끗하게 씻어서 올리는 봄동이나 풋배추, 미나리 등이 오히려 인상에 남는다. 석쇠에 구운 고기와 각종 젓갈, 김치류는 말할 것도 없다. 제철의 주꾸미구이도 그럴 듯하다. 마찬가지로 4인상이 가능하고 점심에는 2인상도 가능하다.




본문에 소개된 관광지 & 맛집 정보




  • 관광 정보
  • 1 다산초당
  • 2 고려청자 도요지
  • 3 영랑 생가
  • 4 백련사
  • 5 전라병영성
  • 6 다산기념관
  • 7 한국민화뮤지엄

  • 맛집 정보
  • <강진>
  • 1 둥지식당: 전라남도 강진군 강진읍 보은로3길 48-3 / 061-433-2080
  • 2 설성식당: 전라남도 강진군 병영면 삼인리 334-14 / 061-433-1282
  • 3 해태식당: 전라남도 강진군 강진읍 서성안길 6 / 061-434-2486
  • 4 수인관: 전라남도 강진군 병영면 병영성로 107-10 / 061-432-1027
  • <순천>
  • 1 대원식당: 전라남도 순천시 장천2길 30-29 / 061-744-35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