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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로부터 삶의 지혜를 배웁니다”

동부라이텍 조현길 상무
적당히 허리를 굽힌다. 쪼그려 앉아도 본다. 그러면 보인다. 사람들의 발길이 분주히 오가는 나직한 곳에 수많은 생명들이 살고 있다는 것이. 늘 우리 곁에 머물러 있지만 무심히 지나쳤던 것들, 바로 야생화다. 야생화는 허리를 굽히지 않으면 좀처럼 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각별한 애정과 겸손한 자세를 취해야 야생화의 참 모습을 볼 수 있다. 동부라이텍 조현길 상무는 이러한 야생화에게서 삶의 지혜를 배운다.



▲ 봄을 알리는 각시붓꽃, 새색시처럼 자태가 곱다.


   “산과 들의 풀들은 누군가 관심을 갖든 아니 갖든, 때가 되면 홀로 꽃을 피웁니다. 길고 추운 겨울을 이겨낸 만큼 화사한 자태로 그 모습을 드러

   냅니다. 야생화는 원예종과는 다른 수수한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산을 오르며 허리를 숙이면 그제야 야생화가 보입니다. 나를 낮췄을 때 비로소 

   아름다운 꽃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야생화로부터 더불어 사는 지혜와 겸양의 도를 배우곤 합니다. 노방(路傍)의 풀들은 삶의 스승과 다

   름없습니다.”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


숨 가쁘게 한 해의 절반을 달려왔다. 계절까지 줄달음쳤는지 요즘 날씨는 한여름을 방불케 한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어딘가로 숨어들어 쉬고 싶은 때다. 모든 것이 무채색으로 변해가는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면 푸른빛을 발하는 자연을 만날 수 있다. 자연은 존재만으로도 삶의 의미를 일깨워주는 귀중한 선물이다. 꽃은 더욱 특별하다. 보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주기 때문이다.


▲ 동부라이텍 조현길 상무


동부라이텍 조현길 상무는 시간이 허락하는 날이면 야생화를 찾아 떠난다. 일 년 열두 달 피고 지는 수많은 야생화들을 마주하고 사진으로 남긴다. “노루귀, 눈개승마, 깽깽이풀, 만주바람꽃, 한계령풀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꽃들이 지천에 널려 있습니다. 이름은 또 얼마나 정겹나요? 꽃의 생김새와 이름을 대조해보면 어찌나 잘 맞아떨어지는지, 우리 조상들의 해학적 표현에 감탄하게 됩니다.” 


조현길 상무가 카메라에 야생화를 담기 시작한 것은 2008년부터다. 해외 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그는 오랜만에 산을 찾았고, 그 길에서 이름 모를 꽃들을 만났다. “사람들의 발아래에서 허리를 곧게 펴고 있는 야생화가 눈에 들어왔어요. ‘이 녀석에게도 이름이 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산을 오르면 오를수록 수많은 꽃들을 만났습니다. 이전에는 미처 보이지 않던 세상이었어요. 그날부터 인터넷, 전문서적 등을 뒤지며 야생화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카메라와 컴퓨터, 휴대전화에는 수많은 야생화 사진이 저장돼 있다. 사진 한 장 한 장마다 꽃 이름도 정성스레 적혀있다. 조현길 상무는 촬영한 사진을 보여주는 것이 무척이나 부끄러운 눈치다. 사진을 배운 적 없어 어디 내놓을 만한 실력이 못 된다는 것이 그 이유다. 그저 꽃이 좋아 사진을 찍는 것뿐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고만고만한 풀이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피어나는 모습이 신기하기만 하다. 야생화를 향한 그의 애정 어린 시선이 사진마다 고스란히 녹아있었다.



조현길 상무가 촬영한 야생화 사진

 



인생을 즐기는 지혜를 얻다


그는 메마른 대지를 박차고 나오는 야생화들에게서 많은 것들을 깨닫는다. 얼어붙은 겨울 숲에서 봄을 준비하는 자연의 강건한 생명력은 경이로움 그 자체인 것이다. “봄에 피는 야생화는 수수한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론 연보라색 꽃잎을 곱게 차려 입은 깽깽이풀에 한 번 더 눈길이 갑니다.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분포하지만 쉽게 만날 순 없습니다. 개화 기간이 짧아서 꽃을 보기 위해서는 여러 번 산행을 해야 하는 아주 귀한 꽃입니다.”


▲ 깽깽이풀, 꽃을 보기 위해서는 여러 번 산행을 해야 하는 아주 귀한 꽃이다.


조현길 상무는 야생화를 만나기 위해 천마산, 국망봉, 광덕산 등 경기 인근의 산을 즐겨 찾는다. 1년에 한 두 번은 강원도 인제군 곰배령, 정선군 만항재 등 야생화 명소도 찾아간다. 하지만 그가 꼽은 최고의 출사지는 단연 백두산이다.


▲ 백두산의 봄은 6월 하순부터 시작된다.


“지난 여름휴가 때 꽃 탐사를 위해 백두산에 다녀왔습니다. 책에서만 봐왔던 녀석들을 마주하던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어요. 흐드러진 야생화 군락이 그야말로 장관이었습니다.” 백두산의 봄은 6월 하순부터 시작된다. 백두산이 가장 아름답게 피어나는 시기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니 올해는 어떤 모습으로 봄을 맞이할지 궁금해졌다. 


조현길 상무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김춘수 시인의 시(詩)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김춘수는 그의 시 <꽃을 위한 서시>에서 ‘존재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너는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고 했다. 또 다른 시 <꽃>에서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말했다. 길섶에 늘어서 있는 꽃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 계절을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우리의 발끝에는 수많은 잡풀들이 널려있습니다. 우리가 그들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삭막한 도심은 꽃밭이 됩니다. 동부 가족 여러분들도 산으로 들로 꽃 여행을 떠나보시길 바랍니다. 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지친 삶에 위안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