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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불호 심한 가지 맛있게 먹는 법

대학교 2학년 때 농촌 봉사활동을 간 적이 있어요. 태풍이 지나간 후 모종 중에 살 수 있을 것 같은 화분을 골라서 물로 살살 씻는 일을 했어요. 점심때가 채 되기 전에 동네 어르신들이 학생들 밥 먹으러 오라며 집집으로 부르셨어요. 삼삼오오 나뉘어 여러 집으로 흩어졌어요.

 

커다란 솥에 돼지고기를 듬뿍 넣고 끓인 김치찌개와 두부구이, 열무김치, 가지무침과 오이지, 삶은 달걀, 싱싱한 오이랑 고추 그리고 고추장 한 사발까지 정말 푸짐한 상을 받게 되었어요. 함께 둘러앉은 친구 중 하나는 가지를, 다른 하나는 오이를 못 먹는다고 소곤거렸어요. 이유는 보라색에 스펀지 같은 식감이 이상하다, 오이에서는 기묘한 비린내가 나기 때문이라고 했죠.

 

이후 지금까지 가지를 피하는 이들을 몇몇 더 만났어요. 색깔과 식감이라는 이유는 비슷했죠. 물론 가지를 먹지 않아도 크게 불편할 일은 없어요. 하지만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에요. 가지라는 채소는 놀라울 정도로 맛있는 면모를 많이 갖고 있거든요.

 

글_김민경(푸드 칼럼니스트)



우리는 보통 가지를 쪄서 소금이나 간장, 된장 등으로 양념해 나물로 즐기곤 하죠. 이럴 때 가지를 찌는 대신 구워보세요. 길쭉하게 2~3등분해도 좋고, 어슷하고 도톰하게 썰어도 좋아요. 아무것도 두르지 않은 프라이팬에 가지를 올리고 노릇한 색이 나고 말랑해질 때까지 끈기 있기 구우면 됩니다.

 

잘 구운 가지에 양념만 바꿔도 별식이 됩니다. 우리가 쓰는 된장 대신 일본 된장에 설탕을 조금 섞어 가지에 올려보세요. 여기에 실파나 쪽파 송송 올리면 보기에도 좋고, 풍미도 산뜻해지죠. 굴 소스와 간장, 물엿 등을 섞어 달고 짭조름하게 양념해도 좋아요. 매콤하게 즐기고 싶다면 두반장이 아주 잘 어울려요. 양념을 올린 가지는 오븐에 넣어서 한 번 더 구워내면 좋은데, 오븐이 없다면 쿠킹포일 등으로 덮은 다음 프라이팬에서 열기를 가하세요. 양념도 열기를 만나면 훨씬 풍미가 살아나거든요.

 

앞서 사용한 양념으로 가지볶음을 만들어도 좋죠! 돼지고기, 소고기, 오징어나 새우, 닭고기 등을 넣고 함께 볶으면 꽤 근사한 일품요리가 됩니다. 기름기가 많은 부위보다는 담백한 고기나 해물을 사용해야 가지의 달콤함, 부드러움과 잘 어울려요. 볶을 때 풍미를 더 하기 위해 매운 고추, 마늘, 대파, 마른 고추 등을 곁들이면 우리가 낼 수 있는 맛의 폭이 확 넓어지죠.

 

가지를 구울 때 오븐(에어프라이어)을 활용해보세요. 가지를 길쭉하게 반으로 갈라 소금과 오일을 뿌려 섭씨 200도의 오븐에 넣고 천천히 구우세요. 속이 젤리처럼 말랑하고 촉촉해지려면 30분 이상 구워야 할 거예요. 잘 구운 가지 위에 파스타용으로 나오는 시판 토마토소스와 피자 치즈, 작게 썬 양파와 올리브 등을 올리고 다시 오븐에 넣어요. 이제 치즈가 충분히 녹을 때까지 기다리면 됩니다. 먹을 때는 통후추를 갈아 솔솔 뿌리고, 핫소스나 치즈 가루 등을 입맛대로 곁들여봅니다. 가지를 여러 개 준비해 몇 개에는 크림소스를 올리고, 볶은 베이컨과 마늘을 토핑처럼 활용해도 됩니다. 여름에 땀 흘리지 않고 준비할 수 있는 꽤 근사한 요리죠.

 

가지를 납작하게 썰어 소금, 후추, 오일만 뿌려 구운 다음 샌드위치 재료로 여러 장, 두툼하게 끼워 넣어도 맛있어요. 이때 스프레드는 토마토소스와 바질페스토, 피망이나 가지 스프레드 그리고 햄과 치즈도 준비해요. 기본 재료지만 가지 덕에 맛은 물론 향까지 그윽한 샌드위치를 만들 수 있어요.

 

가지의 하이라이트 역시 튀김이죠. 시쳇말로 운동화도 튀기면 맛있다지만 가지는 그 이상입니다. ‘겉바속촉’이라는 말은 가지에 잘 어울리는 표현이죠. 가지를 튀기는 방법을 여러 가지가 있어요. 원통 모양으로 도톰하게 써는 법, 길이로 열 십자로 갈라 써는 법, 가지 겉에 칼집을 내는 법이 있어요. 마지막 방법은 오징어 몸통에 가로 세로로 칼집을 넣는 것처럼 가지에도 격자무늬로 칼집을 내는 것을 말해요. 이렇게 하면 튀길 때 칼집 사이가 벌어지며 재미난 모양이 되고, 양념 등을 할 때도 속속들이 쉽게 배죠.

 

어떤 모양으로 썰더라도 가지에 소금을 뿌려 살짝 절여 수분을 빼고 밑간을 하세요. 가지의 몸통은 매끈하여 튀김반죽이 잘 묻지 않으니 밀가루나 전분을 먼저 묻히고 튀김반죽을 잘 입혀요. 뜨거운 기름에 넣어 튀김옷이 익으면 바로 건지세요. 이렇게 튀겨 낸 가지는 어떤 양념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요. 굴 소스를 베이스로 달콤하고 짭조름한 양념과 한 번 볶아 내고, 두반장 베이스로 만든 매콤한 양념을 끼얹어 내고, 탕수육 소스에 찍어 먹고, 레몬즙과 피시 소스로 만드는 이국의 풍미와도 잘 어울리죠. 개인적으로는 이른바 ‘떡꼬치 소스’라고 불리는 고추장, 간장, 케첩, 설탕 등을 섞어 만든 고추장 강정 소스에 버무린 가지 튀김을 정말 좋아해요. 참고로 살짝 마른 가지를 튀겨 강정을 말리면 씹는 맛이 열 고기 부럽지 않고요. 가지 튀김을 양념하고, 맛볼 때는 반드시 뜨거울 때여야 합니다. 식으면서 가지의 수분이 점점 빠져나가 바삭하게 씹는 맛도 구름처럼 부드러운 식감도 줄어들 수 있어요.

 

마른 가지는 집에서 만들어도 됩니다. 조금 모양이 못난, 값싼 가지를 사다가 손가락보다 굵고, 길이는 비슷하게 잘라 채반에 널어 두세요. 촉촉함이 사라지되, 통통함은 남은 정도로 말리면 됩니다. 이렇게 살짝 마른 가지는 볶고, 굽고, 튀기고, 조리고, 장아찌로 만들고, 심지어 밥 지을 때 얹으면 구수한 가지 밥이 됩니다.

 

비현실적인 보라색 속에 가득 찬 스펀지 같은 가지의 속살은 사실 금빛 달콤함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