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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명절 음식(feat. 냉동실)의 놀라운 변신

저는 제사가 많은 집에서 자랐어요. 장남인 아빠에게 시집온 엄마는 일 년에 5번의 제사와 2번의 명절 차례를 준비했죠. 친척이 모두 모이는 할아버지 제사 때면 식구들이 끼니때 먹을 칼칼하고 개운한 반찬까지 준비하고, 이부자리까지 봐놔야 했어요. 와중에 추석이면 우리 네 식구는 둘러앉아 송편을 빚고, 설에는 가래떡을 굳혀 납작납작 끝없이 썬 다음 만두를 빚었죠. 제사와 명절을 치를 때마다 여러 가지 음식을 차곡차곡 담아 동네에 돌리고, 친척들께 싸드리지만, 여전히 우리 몫은 남곤 했죠. 하루 이틀 먹어 물릴 때쯤 엄마는 이 음식으로 국물 자박자박한 잡탕을 끓여주셨어요. 그게 기똥차게 맛있어서 지긋지긋한 제사를 아주 미워할 수만은 없었죠. 서른이 훌쩍 넘어 ‘제사 없는 집’에 시집을 갔더니 변덕스럽게도 이제는 물리게 먹던 명절에 음식이 그리워집니다.

글_김민경(푸드 칼럼니스트)

 

 

명절 음식은 갈무리가 중요해요. 차례를 마치고, 가족들과 나눠 먹은 다음에는 무조건 한 번 먹을 분량씩 나눠 냉장이나 냉동을 해야 버리지 않고 먹을 수 있어요. 찐 생선 중 부세조기, 민어, 도미처럼 큼직한 것은 몸통과 대가리를 분리해 보관하세요. 몸통은 프라이팬에 구워 따끈하게 데워 먹고, 대가리만 모아서 찌개를 끓이면 아주 맛있어요. 크기가 작은 생선은 통째로 몇 마리씩 나눠 냉동실에 두었다가 찌개, 구이, 탕으로 요리해 먹으면 되고요. 차례상에 올라간 생선은 대체로 짭짤하게 간이 배어 있고, 한번 조리한 것이라 얼었다 녹아도 살집이 부스러지지 않고 쫄깃하니 맛이 좋답니다.

 

생선, 해물, 고기 등으로 다양하게 만든 전 역시 종류별로 섞어 한번 먹을 양만큼 나눠서 냉동하세요. 전으로는 해먹을 요리가 많아요. 촉촉한 전을 프라이팬에 말리듯 구워요. 혹시 귀찮지 않다면 기름을 넉넉하게 부어 튀기듯 다시 익히면 더 맛있어요. 전에 소스를 만들어 곁들일 겁니다. 기름에 마늘, 양파, 대파같이 향이 좋은 재료를 먹기 좋게 썰어 넣고 충분히 볶아요. 맛있는 냄새가 물씬 나기 시작하면 튀긴 전을 넣고 기름이 묻도록 살짝 뒤섞어요. 그다음 시판용 칠리소스(중국요리에 많이 쓰는 것이지요)를 넉넉히 부어 센 불에서 뒤적뒤적하면 끝! 피망이나 매운 고추를 듬뿍 썰어 같이 볶아도 맛있어요. 찐 생선 역시 이렇게 조리해 먹어도 좋아요.

 

치즈와 곁들이는 방법도 있어요. 한입 크기로 썬 전을 내열 용기 바닥에 한두 층 쌓아요. 그 위에 시판 토마토소스를 바르고, 슬라이스 모차렐라 치즈로 덮어요. 다시 전, 토마토소스, 치즈 순으로 올리며 쌓아요. 마지막에 뚜껑이 되는 치즈는 도톰히, 넉넉히 쌓아 덮어주세요. 전자레인지나 오븐에 치즈가 녹을 정도로 데우거나 구워요. 먹을 때 통후추를 조금 갈아 뿌린 다음, 핫소스나 토마토케첩을 입맛대로 뿌려 곁들이면 됩니다. 아이들과 함께 먹는다면 통조림 옥수수를 중간중간 넣어보세요. 톡톡 씹히는 달콤한 맛이 좋아요.

 

나물은 솥밥이나 비빔밥이 일순위죠. 비빔밥은 집집마다의 방법이 있을 테니 생략할게요. 바닥이 두꺼운 냄비에 불린 쌀을 넣고 밥을 짓고, 그 사이 나물을 비빔밥에 넣듯 잘게 썰어요. 나물에 물기가 너무 많다면 가볍게 짜거나 프라이팬에 살짝 볶아 물기를 날려주세요. 취향에 따라 다진 마늘이나 참기름을 더 넣어 맛을 내도 좋아요. 이 나물을 밥에 얹어 뜸을 들이세요. 냄비 바닥에서 타닥타닥 소리가 나도록 밥을 살짝 눌려 누룽지로 만들어 먹으면 더 맛있어요. 다 된 밥은 살살 섞어 그릇에 담아 먹습니다. 고추장이나 달걀 프라이를 곁들여도 좋고, 그대로 먹어도 맛있어요. 저는 항상 이걸 김에 싸 먹어요. 조미김도 좋고, 생김을 구워 나물밥에 돌돌 말아 참기름 간장에 콕 찍죠.

 

나물과 잡채를 잘게 썰어 섞은 다음 김이나 만두피로 감싸 튀겨 먹어도 맛있어요. 김으로 감싸면 튀김옷을 입혀야 하고, 만두는 그대로 굽거나 튀기면 됩니다. 김말이로 만들어서 다시 냉동하여 두고 먹기도 하죠. 남은 잡채로 볶음밥을 많이 하는데 이때 고추기름이나 두반장을 넣고 매콤하게 맛을 내면 여러번 먹은 잡채라도 지겹지 않아요.

 

여러 가지 전과, 찐 생선, 고기 산적, 나물을 모두 섞어 만드는 요리는 잡탕이 최고예요. 무나 양파를 바닥에 도톰하게 깔고 멸치 육수를 자작하게 부어 끓여요. 무가 익어 투명해지면 남은 명절 음식을 보기 좋게 둘러 담아요. 전을 가장자리로 둘러 담고 가운데 나물, 생선, 고기 산적 같은 것을 담으면 좋죠. 간장, 다진 마늘, 고춧가루를 섞어 양념장을 만들어 국물에 풀어요. 맛있는 김치가 있다면 쫑쫑 썰어 같이 넣어도 좋고, 불린 당면을 함께 넣어도 맛있죠. 마지막에 얇게 썬 양파, 대파를 솔솔 뿌려 보글보글 끓여요. 양념 국물이 전에 배어들고, 여러 재료의 맛이 국물에 우러나며 진국이 됩니다. 마지막에 간을 보고 고춧가루나 국간장을 더해 한소끔 끓여 완성해요. 밥도둑이자 술안주로 그만인 잡탕 찌개가 됩니다.

 

마지막으로 딱딱하게 굳은 떡은 구워 먹으면 제일 편해요. 말랑하게 구워 꿀, 설탕, 메이플 시럽, 잼 등을 곁들여 달콤하게 드세요. 와플 기계에 떡을 넣고 모양내어 구우면 맛있고 재미도 있죠. 부지런하다면 떡튀김도 추천해요. 튀김에는 농도가 진한 조청이나 물과 설탕을 넣고 끓여 만든 시럽을 곁들이면 식감이 더 좋아요. 이때 견과류를 다져 넣거나, 말린 곶감이나 대추를 잘게 썰어 같이 묻혀도 맛있어요. 색다르게 즐기고 싶다면 시나몬 파우더를 살살 뿌려보세요.

 

 

명절 음식은 늘 애매하게 남아 냉장고 속에서 자리 차지만 하고, 선뜻 손이 가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명절 음식은 이미 만들어진 음식이기 때문에, 조금만 맛을 더해도 새로운 음식이 탄생할 수 있어요. 오늘 소개해드린 레시피로 남은 명절 음식을 재탄생 시켜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