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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집콕 취미, 허브 키우기

랜선 라이프에 초록의 싱그러움을 더해볼까

세계를 정신없이 뒤흔들어 혼을 쏙 빼놓는 전염병으로 인해 우리의 뜻과 상관없이 ‘랜선 라이프’에 몸을 싣게 되었습니다. 밖에 나가지 못하니 더 나가고 싶고, 낯선 곳에 갈 수 없으니 더 궁금해지죠.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 랜선을 타고 호기심과 무료함을 달래는 여행길에 종종 올라보기도 하고 달고나 커피와 천 번을 휘저어야 하는 달걀 수플레도 만들어 먹어봅니다. 그럼에도 빼앗긴 2020년의 싱그러운 봄은 돌아오지 않고, 여름을 맞기에 우리의 몸은 너무 칙칙하며 볼품없고 찌뿌듯하게 느껴져요. 이럴 때는 자연이 내어주는 것에 몸을 맡겨 보세요. 꽁꽁 묶여 있던 우리의 생활과 단조로운 식탁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특별한 허브 몇 가지를 소개해드립니다.

글_김민경(푸드 칼럼니스트)

 

 

우리가 봄이면 흔히 먹는 달래, 냉이, 쑥 그리고 향이 좋은 재료로 꼽히는 깻잎, 방아잎도 허브에 속합니다. 허브는 대체로 고유의 향과 맛이 있고, 약효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잎과 줄기 꽃과 뿌리 등을 두루 활용할 수 있어요. 허브의 독특한 향은 마음에 안정을 주고, 머리를 맑게 한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또한, 대체로 소화를 돕기 때문에 음식과 함께 조리하여 먹으면 풍미도 살리고, 몸에도 이롭죠. 서양요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로즈메리, 민트, 바질, 캐모마일, 라벤더 등이 모두 허브에 속해요. 이 중에는 집에서 어렵지 않게 키울 수 있는 것이 꽤 있답니다.

 

초보 가드너라면 씨앗보다는 모종을 추천합니다. 허브 모종을 구해 화분에 옮겨 심어보세요. 옮겨 심을 때는 꽃집 등에서 영양분이 있으며 물이 잘 빠지는 흙을 구입해 화분에 채워 넣으면 좋습니다. 물을 너무 자주 주기보다는 흙을 만져봤을 때 표면이 말라있다면 듬뿍 한번 주는 것이 좋아요. 허브는 햇살과 따뜻한 온도, 수분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바람이 필요해요. 통풍이 잘 되는 곳에 놓아두면 무럭무럭 자라는 허브를 만날 수 있습니다. 키우기 어렵지 않은 허브를 꼽자면 로즈메리, 바질, 민트, 루콜라, 레몬밤 등이 있어요.

 

손으로 잎을 살짝 쓰다듬기만 해도 사방에 향이 퍼지며 손에까지 그 향이 배는 로즈메리는 키우기도 좋은데 쓸모도 많아요. 여러 음식 재료와 무난하게 어울려 요리에 활용하기 좋지만 허브 자체를 먹기보다는 향만 우려내는 용도에요. 우선 고기 마리네이드에 제격입니다.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오리고기 등 무엇이나 잘 어울리죠. 소금과 후추로 밑간을 먼저 한 고기에 오일을 골고루 바를 때 로즈메리 잎을 뜯어 함께 마리네이드 해두면 은은한 풍미가 요리에 그대로 배요. 감자튀김 등을 할 때 재료와 함께 기름에 로즈메리를 넣고 같이 튀기면 그 향이 배어 똑같은 요리라도 어쩐지 우아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토마토소스와 해산물을 듬뿍 넣고 보글보글 끓여 먹는 해산물 수프에 로즈메리를 줄기째 넣고 끓이면 풍미가 부드럽게 살아납니다. 수프가 완성되면 바질이나 이탈리안 파슬리를 잘게 썰어 마지막에 얹어 먹으면 산뜻한 맛과 향까지 더할 수 있어요.

 

이탈리안 파슬리는 파스타 요리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단골 허브에요. 특히 조개를 넣어 만드는 파스타, 마늘과 고추만 살짝 들어간 알리오 올리오처럼 단순한 재료의 파스타 요리에 듬뿍 뿌려야 제맛이죠. 파스타에 사용할 때는 잎과 줄기를 모두 잘게 잘라 키친타월에 넓게 펼쳐 올려 수분을 빼고 사용하면 뭉치지 않고, 풍미도 한껏 살아납니다. 튀김요리를 찍어 먹는 타르타르소스 등에도 이탈리아 파슬리를 잘게 다져 섞어 소스로 활용해도 맛있어요.

 

통통한 잎이 예쁜 바질은 익혀 먹기에는 아까우니 웬만하면 신선함을 그대로 즐겨보세요. 모차렐라 치즈, 토마토, 바질의 궁합은 이미 알려진 샐러드 조합이죠. 이 조합이 아니라도 바질은 모든 샐러드에서 빛을 발해요. 장식을 위해 작은 잎은 잎째 올리기도 하지만 향을 즐기며 먹기에는 잘게 썰어 골고루 뿌려주면 좋습니다. 으깬 감자 샐러드, 소시지 등을 넣고 만든 샐러드, 아보카도 샐러드, 토마토와 셀러리, 양파와 잎채소가 풍성하게 든 샐러드 등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용으로 쓰면 좋아요.

 

맛 좋은 토마토소스가 있다면 빵에 발라 토스터에 살짝 구워 바질을 얹어 함께 먹어보세요. 입맛에 따라 빵에 마늘을 문질러 알싸한 맛과 향을 입혀도 좋아요. 마지막으로 바질이 무럭무럭 자라 풍성하게 수확했다면 소량이라도 바질 페스토를 만들어보세요. 바질 두 움큼, 잣 약간, 마늘 2~3쪽, 소금, 후추를 믹서에 넣고 부드럽게 갈릴 수 있을 정도로 올리브오일을 부어 곱게 갈아요. 맛을 보고, 마늘이나 소금 등을 입맛에 맞게 첨가하여 한 번 더 갈아서 병에 담아 보관하면 됩니다. 파스타 소스, 디핑소스, 스프레드 등으로 두루 활용할 수 있는데 향이 좋은 만큼 되도록 빨리 먹는 게 좋아요.

 

어린잎을 꼭꼭 씹으면 버터 맛이 나고 큼직한 잎에서는 알싸한 맛이 나는 루콜라는 최고의 샐러드 재료에요. 잎채소와 허브의 역할을 모두 하니 루콜라만 있으면 별다른 향신료는 없어도 그만인 셈이죠. 루콜라는 너무 크게 키우지 않고 20cm 정도 자랐을 때 먹어야 맛있습니다. 때를 놓쳐 무럭무럭 자랐다면 오일에 마늘과 함께 살짝 볶아 먹거나 오픈 샌드위치, 피자 토핑으로 활용하면 되니 걱정은 마세요. 루콜라에 토마토 몇 쪽, 래디시 한 개를 얇게 썰어 넣고, 오일과 식초, 소금으로만 만든 드레싱을 끼얹어 먹으면 맛있어요. 겨울에 담가 둔 과일 정이 있다면 드레싱에 조금 섞고, 다진 양파까지 넣으면 한결 맛깔스러워진답니다.

 

민트와 레몬밤은 흔히 차로 많이 먹듯 음료와 잘 어울려요. 장식용보다는 팍팍 갈고, 으깨서 그 향을 충분히 음료에 배어나게 해야 제맛이에요. 과일청에 탄산수를 섞은 다음 민트나 레몬밤을 넣고 머들러로 잎을 잘 으깨 잔에 얼음과 함께 담아 마셔보세요. 과일청과 물, 허브를 함께 갈아 넓은 쟁반에 펼쳐 얼리면, 이것을 포크로 긁어 빙수처럼 떠먹는 여름 디저트로 내놓아도 좋아요. 작게 얼려 진이나 보드카를 살짝 부어 녹여가며 먹는 여름의 칵테일도 꿀맛이죠. 음료에도 좋지만 잘게 썰어 감자와 베이컨처럼 맛이 묵직한 재료가 들어가는 샐러드의 마지막에 뿌리면 상큼한 맛을 선사하여 입맛을 돋우기에도 정말 좋아요.

 

펜넬 잎과 딜은 다른 허브와 비교할 수 없는 매력적인 향을 지니고 있습니다. 생선 등의 해산물을 오븐에 구울 때 한 줄기 넣으면 먹는 내내 기분 좋은 풍미를 즐길 수 있죠. 앤초비, 발효 햄, 치즈 등을 먹을 때 조금씩 떼어 얹어내는 것도 잘 어울려요. 타임과 오레가노는 로즈메리처럼 고기 요리에 두루 사용하면 잘 어울리는데 특히 육류를 뭉근히 끓여 익히는 수프나 스튜에 넣으면 좋아요. 세이지는 버터와 찰떡궁합을 이룹니다. 버터에 고기를 굽든, 생선을 굽든, 파스타를 볶든 우선, 세이지를 버터에 충분히 볶아 향을 낸 다음 요리를 해보세요. 너무나도 멋진 풍미에 이것이 과연 내가 한 요리인가라는 의문이 들 만큼 풍미 가득한 맛의 세계가 활짝 열릴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