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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트렌드 키워드; 케렌시아, 혐핫, 와비사비

트렌드리포트

나답게 일하고

나답게 쉬자

By 칼럼니스트 김경

독일의 유명 소설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좀머 씨 이야기>의 주인공 좀머 씨는 이 세상을 가차 없이 버린 인물이다. 우리도 좀머 씨처럼 온갖 요구로 귀찮게 하는 이 세상과 단절하고 싶은 때가 있다. 몇 겹 잠금 장치를 한 채 시골의 오두막집의 은둔생활로 들어가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그런 용기는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지극히 평범한 우리에게도 숨을 고를 곳이 필요하다. 2018년 키워드로 케렌시아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그 이유가 아닐까. 와비사비, 혐핫 등 사람들이 주목하는 ‘나’만의 특별한 키워드를 알아본다.



나만의 공간이 필요해, 케렌시아


케렌시아(Querencia)는 스페인어에서 비롯된 말이다. 뜻은 투우장의 투우가 마지막 일전을 앞두고 숨을 고르는 곳을 뜻한다. 사는 게 아무리 전쟁 같아도 쉴 때 쉬고 싶다는 현대인의 간절한 소망이 있다. 이런 바람이 피난처, 안식처, 귀소본능을 일깨우는 공간적 욕구와 만나 케렌시아라는 트렌드를 만들었다. 자신에게 창조적 휴식과 새로운 에너지를 부여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상관없다. 예를 들면 카페나 카페처럼 꾸며진 내 집 거실, 혹은 서점이나 극장의 구석진 자리, 또는 탁 트인 들판이나 공원이나 작은 오솔길, 강변의 어느 빈 구석. 그리고 무엇보다 나만의 방이 있다.

케렌시아 덕분에 인테리어 업체들이 신이 났다. 카페 스타일의 1인용 라운지 소파나 의자, 각도 조절이 섬세하게 되는 침대, 우아하게 반신욕 하기 좋은 욕조, 은은한 조명 기구와 온갖 데스크 용품 등 나만의 휴식을 돕는 ‘잇(it)’ 아이템들을 케렌시아라는 이름 아래 줄지어 내 놓기 때문이다. 이들은 말한다. 잘 쉬려면 먼저 잘 꾸며야 한다고. 안락하고 질 좋은 의자는 필수고, 그 위에 폼나게 은은한 조명 정도는 때려줘야 케렌시아가 완성된다고. 하지만 정작 그렇게 제안하는 기사를 읽고 있으면 오히려 피로감이 몰려온다.



핫한 것은 피하겠습니다, 혐핫


‘잇(it)’이든 ‘핫(hot)’이든 남들이 인기 있다고, 혹은 인기 있으니 주목하라고 하면 지금은 되려 더 멀리하는 분위기가 더 지배적이다. 이른바 ‘혐핫’ 트렌드. 혐핫은 ‘싫어하다(嫌)’와 ‘인기 있다(hot)’를 합성한 말이다. 특정 장소가 지나치게 인기를 끌면서 사람이 한꺼번에 몰리는 것에 염증을 느끼는 나머지 더 멀리하게 되는 세태를 일컫는 신조어다.

최근에는 "유명해지는 것도 싫으니 우리 가게 오지 말라"며 블로그나 TV 광고에 무조건 손사래를 치는 사장님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사진도 찍지 마시고 블로그도 하지 말아주세요. 우리는 우리의 소중한 단골들을 지키고 싶습니다.” 그들은 ‘잇’이나 ‘핫’을 쫓는 사람들이 얼마나 변덕스럽고 싫증을 잘 내는 종자들인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 때문에 유명세를 기피하고 조용히 오래오래 살아남는 쪽을 택하는 것이다.

물론 ‘유명할수록 가기 싫다’는 소비자 또한 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너무도 많이 봐왔다. 이른바 나만의 ‘완소’로 꼽던 곳이 이른바 ‘핫 플레이스’가 되면서 얼마나 쉽게 변질되고 망가지는지. 사람들이 많아지면 무엇보다 시끄럽다. 맛도 변하고 분위기도 변한다. 설사 각고의 노력으로 그 맛을 유지한다고 해도 나만의 장소로 꼽던 그 평화와 오롯함이 깨진다면 절반의 성공인 셈이다. 이제 우리는 남들이 훑고 지나간 자리를 찾아서 돈을 써도 만족감이 없다는 걸 경험했다. ‘대세’에 휘둘려 ‘나만의 것’을 잃고 우왕좌왕 하는 희생양이 되고 싶지 않다는 의지들이 여기저기서 작동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완전하지 않아도 좋아, 와비사비


‘와비사비’는 트렌드를 배척하고 삶의 정수에 집중하는 삶이 얼마나 아름답고 만족스러울 수 있는지 우리에게 알려준다. 와비사비란 일본어로 불완전함을 뜻으로, <와비사비 라이프>라는 책에 사용됐다. 책의 저자 줄리 포인터 애덤스는 와비사비를 ‘부족함에서 만족을 얻는 삶의 방식’이며 또 ‘완벽하지 않은 것을 귀하게 여기는 삶의 방식‘이라고 풀이한다. 추가적으로 ’유행에 뒤쳐진 낡은 공간이나 물건에서, 평소 무심히 지나쳤거나 과소평가했던 순간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이 와비사비라 정의한다. 당연히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터득한 사람은 소유에 상관없이 풍요롭고 아름다운 삶을 산다.

애덤스는 자신의 집이 산불에 모조리 타버린 재난 속에서 삶의 방식을 발견했다. 나를 규정한다고 생각했던 모든 물건이 사라지고 나자 정작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찾게 된 것이다.

덕분에 나만의 공간을 위해 새로 뭔가 사들일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 되어 다행이다 싶다. 와비사비는 가진 것만으로 소박하게 삶을 꾸리고 그런 삶을 통해 생각지 못했던 곳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집이나 물건, 혹은 나 자신은 잡지에 나오는 것처럼 완벽할 필요가 없다. 최신 유행에 따라가려고 기를 쓰지 않아도 되고, 타인의 기준에 맞추어 아등바등 살 필요도 없다. 그래봤자 남는 것은 텅 빈 은행 잔고와 허망함뿐이다. 대신 모서리가 닳아 반들반들해진 식탁, 색이 조금 바랜 머플러 혹은 오래된 신발 같은 것들에서 남다른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면 늙는 일도 조금은 두렵지 않을 것 같다.


▲ 미국 수공예 오픈 마켓인 ‘엣지(etsy)’에서 2만5천원 상당의 가격에 팔리고 있는 찻잔.

말끔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마감이 '와비사비' 스타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