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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바꾼 위대한 씨앗, 감자

 

 

감자는 착하다?

감자는 착하다. 식재료를 두고 착하다고 표현하면 어색하지만 감자를 조금만 알고 나면 이 작물이 퍽 착한 식재료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참 고마운 작물, 감자의 영양정보

 

 

 

 

흔하지만 귀한 구황작물


먼저 감자는 대표적인 구황작물이다. 인류 역사상 사람들을 가장 많이 구한 작물은 감자다. 우리나라에서는 메밀 등을 구황작물로 사용했지만 유럽에서는 메밀조차도 귀했다. 감자는 유럽에 전래되자마자 바로 구황작물 노릇을 한다. 유럽의 빈곤함을 기록한 내용들 중에는 흔히 “집안에 먹을 것이라고는 감자 몇 톨 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나마 다행이다. 그 이전에는 “집안에 먹을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는 것이었을 터이다. 전염병과 기근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갈 때 유럽을 구한 것도 감자였다. 결국 감자는 유럽의 대기근을 막은 착한 식재료인 것이다.

 

감자는 16세기 스페인 탐험가들이 유럽으로 들여왔다. 감자의 원산지는 남미의 안데스 산맥으로 지금의 페루다. 감자는 잉카문명 이전부터 남미에서 널리 경작되었다. 남미에서 잘 자라고 주요한 식량 자원으로 이용했던 것을 스페인 탐험가들이 유럽으로 들여온 것이다.

감자의 두 번째 착한 점은 ‘어디서나 잘 자란다’는 점이다. 당시 유럽에서는 밀이나 귀리 등을 재배했는데 구황식물 노릇을 한 감자는 밀, 귀리보다 더 잘 자랐다.


 

감자는 재배법이 쉽다는 장점도 있다. 오늘날과 달리 예전에는 새로운 작물이 소개될 경우 재배방법을 알아내기가 힘들었다. 원산지의 기후나 토양이 다른 곳에서 새로운 식물을 재배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새로운 작물의 재배법을 알아내더라도 그 방법을 널리 퍼트리는 것 역시 쉽지 않았다. 그러나 감자는 새로운 대륙에서 쉽게 정착했다. 감자는 어떤 땅에서나 무럭무럭 잘 자랐다. 유럽인들은 “감자를 키우기 좋은 환경은 있지만 잘 안자라는 곳은 드물다”는 사실을 바로 깨달았다. 감자는 서늘하고 습기가 많은 기후를 좋아하지만 온대지방 어느 곳에서나 재배가 가능하고 열대지방에서도 잘 자란다. 감자는 우리가 극지방이라고 부르는 남, 북극 정도를 제외하면 모든 곳에서 잘 자란다.


 

 

유럽 감자의 역사에는 아픈 그늘도 있다. 우선 지금의 감자와는 달리 유럽에 정착된 감자는 크기도 작고 표면도 쭈글쭈글했다. 게다가 이 희한한 식물은 땅속에서 자랐다. 땅속에서 자라는 작물을 처음 본 유럽인들은 이 감자를 무섭게 생각했다. 악마의 식물이라고 여겨 한동안 식용하지 않았다. 가장 먼저 감자를 널리, 많이 식용한 곳은 늘 기아에 시달리던 아일랜드였다. 감자는 1580년대에 아일랜드에 전래되어 오랫동안 아일랜드 인의 주식이 되었다. 불행은 유럽 전역을 휩쓸던 감자 잎마름병이 아일랜드에 퍼지면서 시작되었다. 1840년대 아일랜드는 유례없는 기근으로 100만 명이 굶어 죽는 대참사를 맞았다. 감자 농사가 무너지면서 기아와 질병이 시작된 것이다. 결국 감자 대기근을 시작으로 아일랜드인들은 대규모 미국 이민을 시작한다. 존 F 케네디 대통령 가문도 이때 아일랜드에서 미국으로 건너온다. 만약 감자농사와 감자 대기근이 없었다면 미국 대통령도 바뀌었을 판이다. 

오늘날 감자가 널리 이용되는 것은 이 작물이 지니고 있는 영양분이 많을뿐더러 단위 면적 당 생산되는 영양분과 열량이 가장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감자가 싸구려 식품은 아니다.

 

일찍이 괴테는 “감자는 신이 내린 가장 위대한 축복”이라고 표현했다.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의 콜럼버스 탄생 500주년 기념관 고문이었던 헨리 홉하우스는 <역사를 바꾼 위대한 씨앗 5가지>라는 책을 썼다. 이 책에서 홉하우스는 말라리아 치료제인 키니네, 사탕수수, 인도와 영국 및 중국의 역사를 바꾼 차(茶), 남북전쟁의 시작이었던 목화 그리고 감자를 손꼽았다. 감자는 유럽과 미국의 역사를 새로 만들었다.

 

 

감자의 이름으로!


감자(potato)의 이름은 참 혼란스럽다. 원래 감자의 원산지인 페루에서 감자는 ‘파파(papa)’라고 불렸다. 유럽인들이 캐러비아 해변에서 발견한 고구마 비슷한 작물은 ‘바타타(batata)’였다. 오늘날의 감자, 포테이토(potato)라는 이름은 결국 파파(papa), 바타타(batata), 파타타(patata)를 거치며 정착된 것이다.

 

우리나라에 감자는 1820년대 북방에서 처음 전래되었다. 흔히 감자는 “관북(關北)에서 들여왔다”라고 한다. 관북은 중국 접경 지역이었던 의주와 평양, 해주를 연결하는 선을 말한다. 당시 감자는 북저(北藷) 또는 북감저(北甘藷)라고 불렀다. 모두 북방감저(北方甘藷)라는 이름에서 비롯된 것이다. 오주 이규경이 쓴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는 감자를 기록한 보기 드문 서적이다. 감자가 한반도에 퍼진 것은 19세기 중엽이기 때문에 조선시대 기록에는 당연히 감자가 나타나지 않는다. <오주연문장전산고> 기록(북저변증설北藷辨證說)에는 “북저는 일명 토감저(土甘藷)라 하는데 순조 24∼25년에 관북에서 처음 들어온 것이다”라고 쓰여 있다.

 

감자가 전래되기 수십 년 전에 일본 쓰시마를 통해 한반도에 고구마가 들어왔다. 고구마의 원래 이름이 바로 감저(甘藷)다. 북방감저라는 이름은 ‘북방에서 전래된 고구마’라는 뜻이다. 이 이름에서 북방이 빠지고 감저, 감자가 된 것이다. 엉뚱하게도 고구마를 뜻하는 이름이 감자가 된 셈이다. 감자는 한편으로 ‘마령서(馬鈴薯)’라고도 불렸다. 마령은 말방울이고 ‘서’는 산마나 산약을 뜻한다. 땅속에서 감자를 캐내면 마치 말방울 같이 생긴 감자가 달려온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감자는 탄수화물이 풍부하며 칼륨, 칼슘, 비타민 C 등도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다.

 

감자는 종류가 다양하다. 겉껍질도 갈색, 노란색, 분홍색, 빨간색, 자주색(청색) 등으로 다양하며 속살이 겉과 같은 것도 있으며 흰색이 비교적 많다. 감자는 스튜, 수프, 캐서롤, 샐러드, 팬케이크 재료로 사용되고 햄버거 가게나 프라이드치킨 전문점에서 칩(chip)이나 튀김으로 등장한다. 이탈리아 파스타의 일종인 뇨끼(gnocchi)도 감자로 만들어진다.

 

감자를 호칭하는 가장 아름다운 이름은 프랑스인들이 가지고 있다. 바로 ‘땅속의 사과(pomme de terre)’라는 이름이다. ‘폼므 데 떼레’를 줄여서 폼므[사과]라고 부르기도 한다. 프랑스인들은 감자로 여러 가지 요리를 만든다.

북한에서는 감자요리법을 기록한 책자를 발간하기도 한다. 북한 측의 주장으로는 김일성 주석이 ‘언 감자국수’를 좋아했다고 한다. 겨울철 깊은 산속에서는 먹을 것이 귀하다. 주민들은 언 감자로 녹말을 만들고 국수를 만든다. 김일성이 이 국수를 좋아했다는 것이다.

 

강원도에서는 감자로 만든 수제비를 ‘감자옹심이’라고 부른다. 별미다. 곱게 갈아서 감자전을 만들기도 한다. 갓 지져내는 감자전은 감자 특유의 향이 고스란히 살아 있다. 강원도 속초-강릉 사이에 있는 식당 ‘사돈에팔촌’에서는 감자전과 감자옹심이(감자수제비)를 먹을 수 있다. 주문을 받은 후 옹심이를 끓여내기 때문에 감자 특유의 신선한 향이 살아 있다. 좋은 감자옹심이는 투명하고 맑은 색을 띄고 씹으면 사각거리는 식감이 살아있다. 중앙시장에는 감자떡도 판다. 비슷비슷한 맛이지만 서울 등 다른 지역의 감자떡과는 맛이 다르다. 시장 곳곳에서 감자떡을 만날 수 있다. 색깔도 호박을 넣은 노란색, 쑥을 넣은 짙은 녹색 등 다양하다. 하얀 것은 순수 감자떡이다. 양에 따라 2,000원, 3,000원 정도의 값을 받는다. 손에 들고 다니며 먹어도 좋다.

 

 

 

 

 

사돈에팔촌
주소: 강원 속초시 교동 636-90
전화번호: 033-638-6315

 

 

속초관광수산시장&강릉중앙시장
주소: 강원도 속초시 중앙동 471-4 속초관광수산시장 내,

강원도 강릉시 성남동 50 강릉중앙시장 내

 

 

 

진부집
주소: 강원도 강릉시 성남동 50 강릉중앙시장 먹자골목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