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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자에서 생산자로, 팬덤의 경제학

수용자에서 생산자로, 팬덤의 경제학
굿즈(goods)가 기업의 새로운 마케팅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굿즈란 기업(브랜드)이나 연예인들이 팬을 대상으로 디자인한 상품이다. 굿즈는 ‘팬덤(fandom: 한 대상을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집단)’ 문화를 기반으로 삼는다. 때문에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판매하는 일반 상품과는 차이가 있다. 오늘날 스마트폰 보급 등 정보기술이 발달하면서 팬덤의 활동 영역도 함께 넓어지고 있다.









팬덤과 마케팅


과거에도 스타에 열광하는 현상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팬덤과는 차이점이 있다. 과거의 팬덤은 단순 수용자, 즉 객체로서의 수동적 열광이었다. 오늘날의 팬덤은 문화 주체자 또는 콘텐츠 재생산자로서 시장의 선순환 구조에 적극 동참하는 ‘능동적 소비자’다. 제작자(produce)는 70% 정도를 리드하고, 나머지 30%는 소비자(consumer)의 몫으로 남겨 둔다. 팬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해 나머지를 채워나가게 권한을 위임하면, 결과는 100%를 넘어 그 이상도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프로슈머(prosumer)’ 개념은 팬덤 경제의 기본이 된다.



Prosumer


앨빈 토플러가 저서 <제3의 물결>에서 주장한 용어로 생산자(producer)와 소비자(consumer)의 합성어다. 소비만 하는 수동적인 소비자에서 벗어나 소비뿐만 아니라 직접 제품의 생산·개발에도 참여하는 ‘생산하는 소비자’를 뜻한다



팬덤 마케팅은 이러한 가치 구조를 극대화하는 개념이다. 즉 주체간 상호 호혜와 자발적 참여, 창작적 증여의 형태로 이루어지는 이타적 선물 경제(gift economy)다. 보상과 등가교환 가치를 우선시하는 일반적인 상품 경제(commodity economy)와는 다른 나눔과 공유의 재창조성을 내포하고 있다. 팬덤 구성원 입장에서는 ‘능동적 참여’와 ‘생산적 공유’라는 즐거움이 창출된다. 반면에 기업은 마케팅 효과를 극대화하고 충성도 높은 고객을 결집시킬 수 있는 수혜자가 된다.



Mnet 예능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 제작 방식과 이를 통해 발탁된 그룹 ‘아이오아이’의 활동에서 팬덤 마케팅의 요소를 찾아볼 수 있다. 해당 프로그램은 50개의 기획사에서 모인 101명의 소녀 연습생들을 출연시켜 100% 일반인 투표 참여로 선발했다. 다양한 평가 방식부터 이후 데뷔 그룹명까지 공모를 통해 클라우드 소싱했다. 현재까지도 이들의 활동은 화제가 되고 있으며 팬과 언론의 관심 속에 스타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초기 팬덤 문화는 서브컬처(subculture) 즉, 특수 계층의 마니아 문화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10대부터 장년층까지 연령의 폭이 넓어지고 있으며 대상 또한 연예인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르와 일반 상품에까지 확대됐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 영역에서 팬덤 브랜드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팬덤과 굿즈


굿즈(goods)는 팬덤 마케팅의 핵심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굿즈란 기업(브랜드)이나 연예인들이 팬을 대상으로 디자인한 파생 상품이다. 이 용어는 한국과 일본 이외에 대부분의 나라에서 머천다이즈(merchandise, MD상품) 또는 캐릭터 상품의 개념을 지닌 포괄적 뜻으로 쓰인다. 우리나라에서는 소규모의 기호성 캐릭터 상품이라는 축소된 의미로 쓰인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은 아이돌 팬덤 문화를 이야기하며 H.O.T와 젝스키스 등 1세대 아이돌에 열광했던 세대들의 추억을 소환했다. 1997년은 이른바 ‘빠순이’로 불리는 팬덤이 생겨난 시대다. 풍선, 우비 등의 응원도구는 아이돌 1세대 굿즈 문화의 효시다. 오늘날 굿즈는 기획사의 사업 다각화와 팬 마케팅 수익 창출 요소로 자리 잡았다.




SM 엔터테인먼트는 문화복합공간인 ‘SM Coex Artium’을 만들어 소속 연예인들의 시그니처 아이템과 다양한 상품, 소속 아티스트가 광고하는 코즈메틱 브랜드 제품 등을 판매하고 있다. 한류 편의점 ‘SUM Market’도 만들었다. 마켓에서는 소녀시대 팝콘, EXO(엑소) 손짜장, 샤이니 탄산수 등의 제품과 이마트와 협업으로 제작한 다양한 K-푸드들이 판매되고 있다. 


YG 엔터테인먼트 또한 ‘YG존’을 만들어 소속 연예인들의 음반과 소품, 관련 상품들을 판매하고 있다. 우리은행과 제휴해 적금, 체크카드 등의 금융상품도 출시했다. 콘서트 티켓 예매 시 금액의 10%까지 청구할인을 받을 수 있으며 토익 응시료 할인, 인터넷 서점 할인, 영화관 할인 등의 혜택도 있다. 메이크스타와 같은 한류 클라우드펀딩 플랫폼의 등장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재미있는 현상은 기획사에서 제작한 굿즈 외에 일반인들이 제작한 비공식 굿즈 시장 규모가 연간 1000억 원대에 이른다는 사실이다. 공식적으로 제작된 굿즈보다 자유롭고 창의적이며 완성도 높게 제작된 비공식 굿즈들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럭비공 같은 팬덤의 매력은 바로 이러한 의외성에 있다.


팬덤과 기업


굿즈는 기업의 마케팅 수단으로도 자리 잡았다. 기업이 가진 색과 캐릭터를 상품과 결합하여 긍정적인 효과를 내고 있다. 스타벅스는 시즌별로 텀블러, 컵 등의 굿즈를 제작해 소비자들로부터 인기를 얻고 있다. 도서 판매 사이트인 알라딘도 굿즈 덕을 톡톡히 봤다. 알라딘이 도서 구매자에게 주는 굿즈는 수십 가지에 이른다. 지난해 책을 구매한 사람에게는 물병을 나눠줬다. 세련된 디자인의 물병을 받기 위해 책을 구매한 사람들도 꽤 있었다.



빙그레는 최근 ‘바나나맛우유’ 제품 패키지에 소비자 참여의 공간을 만들어 매출을 올렸다. 기존 제품명에서 자음을 뺀 ‘ㅏㅏㅏ맛우유’를 출시, 소비자들이 제품 패키지에 원하는 메시지를 써넣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SNS상에는 ‘사랑해맛우유’ ‘나만봐맛우유’, ‘반해라맛우유’, ‘잠깨라맛우유’, ‘칼퇴해맛우유’ 등 다양한 응용버전이 지속적으로 올라오고 있다.


각 기업들은 엔터테인먼트 시장과 결합하면서 기업의 이미지와 상품의 매출에 시너지를 내고 있다. 팬덤이 더 이상 엔터테인먼트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기업 마케팅의 핵심 요소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상업화된 팬덤 문화, 논란이 되다


지난해 서울YMCA 시민중계실은 기획사 직영매장의 아이돌 그룹 고가 상품 가격 조사 결과를 공개하고, 공정위에 이중 일부 기획사를 조사해달라고 요청했다. 인기 아이돌 가수들을 가장 많이 거느리고 관련 상품도 많이 판매하는 SM엔터테인먼트, YG엔터테인먼트 두 곳이 조사대상으로 특정됐다. 이들 기획사들이 시장 지배적 지위를 남용해 상품 가격을 멋대로 매기고 비싸게 판매했다는 것이 서울YMCA 측의 주장이다. SM이 판매하는 ‘엑소 이어폰’은 123만원에 달하고, YG의 빅뱅 관련 상품인 야구점퍼는 17만5천원이었다. 


굿즈는 사실 팬층 내에서도 비싸다는 인식이 형성돼 있다. 하지만 스타를 좋아하고 따르고 싶어 하는 이에게 비싼 가격은 오히려 팬심을 증명하는 기회가 된다. 결과적으로 고가의 상품도 인기리에 판매된다. 이러한 지나친 고가격 책정은 다수의 10대 팬들에게 지나친 부담을 주고 과소비를 조장할 우려가 있다. 굿즈의 고가 논란이 불거지자 기획사의 가격 책정 방식을 조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가격 산정에 문제를 딱히 꼬집어 찾기는 힘들었다는 전언이다.



굿즈를 무조건 비판만 할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기업 마케팅의 주요 아이템인 동시에 한류 시장의 떠오르는 수익 창구 역할을 톡톡히 하기 때문이다. SM Coex Artium의 경우 방문객과 타깃의 대다수가 해외 관광객이다. 즉 구매력이 높고 경제활동이 활발한 해외 소비자층을 위한 상품과 함께 투 트랙 전략으로 비교적 저렴하면서도 활용도가 높은 10대 겨냥 굿즈 상품을 맞춤 제작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결론적으로 팬덤 문화는 ‘소비자가 주도하고 참여하는 문화 주체적 현상’이다. 그러므로 팬덤 경제는 팬덤 구성원과 기업이 상호 호혜적으로 동참해 서로 즐거움과 건강한 이윤을 추구해 나가는 선순환 패턴으로 자리매김해야 할 필요가 있다. 소비자들의 자발적 능동성이 강요하지 않는 나머지 힘과 얼마나 자연스럽게 일치시키느냐 여부가 바로 팬덤 리더십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 아닐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