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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은 영원하다! 라이프사진전 : 더 클래식 컬렉션

몇 년 전 세종문화회관에서 라이프 사진전이 한번 열린 적이 있었습니다. 지난 4월부터 다음 달 8월 말까지 잠실 소피텔 호텔 3층 뮤지엄 #209에서 전시 중인 라이프 사진전의 새로운 버전, ‘더 클래식 컬렉션’이 진행되고 있어요. 지난 세종 전시에 소개되었던 작품들 중 겹치는 작품들이 몇몇 있는데, 공개되는 사진의 개수도 약 70여 점이 늘어났고, 전보다 전시 공간도 덜 답답한 느낌으로 꾸며져 있어 관람하기에 좋았습니다. 석촌호수, 송파 근처의 데이트 코스를 계획 중이시라면 #209뮤지엄을 코스에 넣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라이프사진전 더 클래식

• 기간 : 4월 17일 ~ 8월 28일

• 주소 : 서울특별시 송파구 신천동29-1(잠실로209) 잠실 소피텔 앰버서더 호텔 3층 뮤지엄 209

• 운영 : 월요일 휴무 화-토요일 12:00-21:00 / 일요일 10:00-19:00

• 티켓 : 성인 15,000원 / 어린이, 청소년 12,000원 *오디오가이드 무료

• 주차요금 : 최초 1시간 6,000원 + 추가 10분당 1,000원

 

<라이프 사진전 : 더 클래식 컬렉션>은 세대와 시대를 뛰어넘어 ‘클래식’이라 불리는 작품들을 테마로 전시 개요를 짰다고 합니다. 이번 전시에서 소개되는 작품들은 화려한 미사여구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설명을 할 수 있거나, 그렇게 여겨져야 할 상황들을 담고 있는데요. 왜 전쟁이 비난받을만한 것인지, 어떻게 과학이 이 사회를 움직여 왔는지, 어째서 아직도 정치는 혼탁한지 등 클래식한 질문들에 대해, 그리고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해온 요소들에 대해서 사진으로 말하고 있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팜플랫 대신 오디오 가이드를 들을 수 있도록 입구에서는 QR코드가 인쇄되어 있었는데요. 환경을 위해 지류 팜플렛 생산은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디오 가이드는 무료이기 때문에 꼭 방문 전에 이어폰을 챙겨 가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1936년에 탄생한 사진 잡지 LIFE는 유명한 빨간 로고를 제외하고는 컬러 사진을 쓰는 것이 불가능했던 시대의 잡지인데요. 컬러사진의 대중화가 시작된 1930~1960년대에도 라이프는 주로 흑백사진을 주류로 다뤘었습니다. 검은색과 흰색 단 두 가지 색으로 전달해야 하는 흑백사진의 제약과 동시에 시적인 구성과 표현을 통해 수많은 빛과 어둠으로 클래식을 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고 할까요? 너무나도 감동적인 순간을 포함해 역사적으로 중요한 시점들과 그 시절이 만든 슬픔에 대해 가감 없이 표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우측 사진은 파리 근교 작은 마을의 시골 맹인 의사 알버트가 생후 3개월 된 아기의 등에 청진기 대신 귀를 기울이고 진료를 보는 순간이라고 해요. 서로 간의 신뢰와 믿음에 대해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사진인 것 같습니다.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며 거닐 수 있어 관람이 너무 어렵지도 않았는데요, 특히 이번 오디오 가이드 녹음은 각 파트마다 연관 있는 분들을 섭외해 모두 다른 분이 녹음을 했답니다. 그중에는 실제 6.25 전쟁 현장에 실제로 계시던 분의 오디오도 숨어 있었어요.

 

사진 그대로를 보고 느낌을 찾고, 옆에 적힌 설명글을 읽고 미처 몰랐던 사실에 대해 다시 한번 상황을 정립한 후, 다시 보는 느낌은 또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매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평온하게 내리쬐는 햇살 아래에서 앉아서 쉬고 있는 노인의 사진이 알고 보면 감옥 운동장에서 햇볕을 쬐고 있는 나치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이었다면, 이 사진은 상당히 다르게 받아들여집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기존 세종 전시에 비해 한국과 관련된 사진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어 더욱 반가운 마음으로 전시를 볼 수 있었습니다. 한국의 호랑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김구 선생님의 사진이 전시 중반부에 있었어요. 이후에 김구 선생님과 관련된 사진은 전시 후반부에 가면 한 장 더 등장하게 되는데요. 1949년 6월 26일 백범 김구 선생님의 서거 당일, 경교장에서 울린 총성과 함께 전해진 갑작스러운 서거 소식에 시민들의 애도의 물결은 약 120여만명으로 추산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날, 총알이 뚫고 나간 창문으로 보이는 경교장 앞뜰의 모습이 LIFE 매거진의 카메라에 담겼습니다. 이 사진 한 장에 담긴 그날의 참담한 분위기는 사진 속에 그대로 담겨 현재의 우리의 시선에게도 그 사건을 고스란히 전해주는 것 같아요.

 

 

단순히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 키스를 나누는 것 같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이 사진도 오디오가이드를 통해 들으면 그 사진에 얽힌 숨은 이야기를 엿들을 수 있었는데요. 1945년 8월 14일 전쟁이 끝났다는 방송을 들은 사람들이 종전의 기쁨과 흥분으로 뉴욕 타임스퀘어 광장을 가득 메웠을 때, 알프레드 아이젠슈타트는 카메라를 들고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 그날을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때 모든 여자들에게 키스를 날리며 광장을 가로지르는 수령을 목격했어요. 어린 소녀에부터 늙은 부인에 이르기까지 모두 부여잡고 환희의 키스를 퍼붓고 있던 수령을 따라가던 알프레드 아이젠슈타트는 이윽고 한 간호사를 보고 그녀에게 카메라 초점을 맞추었는데요. 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그 수령은 간호사에게 키스를 퍼부었고 그 때 알프레드의 셔터가 담아낸 사진이 바로 이 유명한 장면입니다. 이렇게 기쁨으로 가득한 종전의 상황을 사진 한 장에 가득 담겼다는 것을 알고 나니 그 사진의 의미가 또 다르게 느껴지더라구요.

 

파리 몽수리 공원에서 열린 귀뇰 인형극 도중, 용이 죽는 장면에서 각양각색의 표정을 짓는 아이들의 사진(상), 유니폼을 입은 미시건 주립대학의 군악대장이 한껏 다리를 치켜들고 의기양양하게 활보하는 모습 뒤로 7명의 아이들이 그를 따라 하려고 노력하며 캠퍼스 잔디 위를 행진하는 모습(하)

 

잠실 소피텔 호텔에 위치한 뮤지엄 #209는 넓은 통창으로 석촌호수 뷰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보통 전시장들은 가벽들로 감싸져 연출된 공간에서만 머물며 전시장 밖의 풍경과 날씨와는 동떨어져 전시를 즐기는 느낌의 묘한 감정을 느끼곤 했는데요. 이곳은 전시를 관람하다 한숨 돌리러 시선을 돌리면 바로 앞에 석촌호수와 함께 녹음이 푸르른 바깥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어 색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진은 보는 사람에게 저마다의 목소리를 갖고 말을 걸어온다고 합니다. 아메리카 인디언은 사진이 영혼을 훔쳐 간다고 믿었는데요. 좋은 사진이 시간 속에 응축된 이야기를 온전히 한순간에 포착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들은 이 사실을 이미 본능적으로 알아챘던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라이프지는 창간호에서부터 이런 사진의 특징이 잘 깃들어진 것을 골라 ‘SPEAKING Of PICTURES’라는 코너에서 지속적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주의 깊게 바라보면 이 사진 속에 담긴 장면들은 20세기를 살았던 사람들의 것이면서도 21세기를 사는 우리가 마주하는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바로 아직도 이 사진들의 목소리가 유효한 이유겠죠?

 

(1)예술가 마르셀 뒤샹이 계단을 내려가는 것을 연속된 다중노출로 촬영한 사진. 그의 유명 작품인 “계단을 내려가는 누드”를 연상케 한다.

(2)참새 둥지를 조사하기 위해 잔디 위에 납작하게 누워 있는 조류학자 마가렛 모스 니스

(3)미국 마이애미의 한 수영장에서 헤엄치고 있는 비틀즈

(4)네브레스카주 밀밭에 서 있는 한 농부

 

매거진의 주 활동 시기에 빗대어 전쟁의 참담함과 해방의 기쁨 등 주요 주제가 전쟁 관련 주제였다면, 간혹 귀엽고 사랑스러운 또는 지극히 일상적인 모습이 담긴 사진들도 중간중간 보였는데요. 생후 9주 밖에 되지 않은 전 세계에서 가장 어린 수영선수 쥴리 셀든이 아동 수영 강사였던 그녀의 할머니 젠 로벤 부인 옆에서 잠수를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사진은 로벤 부인의 야외 수영장 수중 창문을 통해 이렇게 촬영이 되었답니다. 그리고 우측 사진은 출근하는 바쁜 현대인들의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크리스티앙 디올의 후계자 이브생로랑이 디오르의 장례식장에 참석한 후 홀로 한참을 서있는 모습을 담은 사진(좌) 미국과 일본 군대의 전투로부터 도망쳐 나온 사이판 섬 원주민들이 숨어 있던 동굴에서 가까스로 생명을 부지한 채 발견된 작은 아기를 미 해군이 안아 나오는 장면(우)

 

오른쪽 사진의 아이는 <유일한 생존자>로 미군의 폭격과 화염방사기로 초토화된 사이판의 한 동굴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갓난 아기였다고 해요. 전쟁과 생명에 대한 역설적인 모습에 세계가 숙연해졌던 사진이었죠.

 

1936년 11월 23일 창간된 사진잡지 는 역사상 가장 성공한 잡지로 기억되고 있는데요. 창간 1년 만에 100만부를 발행하고 1940년대에 들어서는 세계 곳곳에서 1,350만부 가량을 찍어내며 정기 구독으로 800만명을 돌파했던 잡지로 티비가 보편화되기 전에는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미디어였다고 합니다. 당대 사진작가들에게는 매거진과 함께 일하거나 그곳에 소속되었다는 것이 정점에 올랐다는 것을 상징했을 정도라고 하니 매거진의 위상이 어느 정도였을지 상상이 가는데요. 찍어내고 선별한 사진들만 보아도 한 컷 한 컷에 담긴 그 당시의 상황과 감정을 정제하여 담아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심을 했을지 전해지는 사진전이었습니다.

 

전시 관람을 마치고 나면 제법 완성도 있는 굿즈들을 구경할 수 있는 기념품 샵이 전시 끝 공간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라이프 사진전에서 봤던 주요 사진들의 포스터를 구매할 수 있고, LIFE 로고로 만들어낸 마스킹 테이프, 연필, 스티커, 핸드폰 케이스 그리고 티셔츠와 가방, 모자까지 판매하고 있습니다. 로고 하나가 창출해 내는 수익이 크다는 것은 그만큼 그 로고를 대명사화하기 위해 수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였고, 그 작업이 대중에게 통했다는 것이겠죠? 세월이 흘렀지만 매거진의 그 위상은 지금 세대의 사람들에게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

 

전시회 당일 관람 티켓을 갖고 가면 주변의 카페나 맛집에서 10% 메뉴 할인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해당 카페나 맛집들은 잠실과 성수동 부근에 위치해 있었어요. 전시회 관람 후 티켓을 버리지 않고 챙겨 카페나 맛집에서 할인받아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니 참고해 보시길 바랍니다.

 

관람을 마치고 나오면 발권기 옆에 있던 포토매틱이 눈에 띄는데요. 올블랙 또는 네온사인 느낌의 배경 중 하나를 선택해 이날의 추억을 남길 수 있습니다. 포토매틱 기기야 요즘 워낙 인기라 어느 행사장을 가도 쉽게 접할 수 있지만, 사진전을 보고 나와서 접하니까 또 그 기분이 달랐어요. 촬영 요금은 1회 촬영에 5,000원이고, 카드 결제가 가능합니다.

 

오디오 가이드도 모두 무료로 들을 수 있고, 건물 내에 무료 와이파이가 제공되다 보니 전시를 어렵지 않게 즐길 수 있었는데요. 사진전에 직접 가기에 시간이 여의치 않는 분들을 위해 조금 더 자세히 전시에서 알게 된 스토리들을 함께 소개해 드렸습니다. 라이프 사진전은 8월 28일까지 약 한 달 반 정도 더 시간이 남아 있으니, 잠실에 들를 일이 있다면 꼭 한번 들러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