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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근교 가볼만한 곳! 파주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건물은 공간과 재료를 매개로 방문객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특정한 사물을 가리키고 방문객이 사물을 보는 방법을 결정하기도 하죠. 건물은 내용을 전혀 알 수 없는 블랙박스가 아니라 현실을 강렬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에요. 출판사들이 모여 있는 파주출판도시, 날카로우면서도 부드러운 곡선 건물 한 채가 눈에 띕니다. 연둣빛 잔디밭과 파란 하늘 사이, 마치 흰 종이가 펄럭이듯 살랑살랑 손짓해요. 책과 예술작품은 물론 건축물 그 자체로도 미적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곳, 바로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입니다. 뮤지엄의 벽과 창문, 그리고 빛이 말을 걸어오는 즐거움을 함께 나눠 드릴게요.



# 대상의 본질을 드러내는 ‘예술의 미메시스’

화가의 손놀림을 따라 형태가 그려지고 색이 입혀지면서 세상의 한 조각이 화폭 위로 옮겨오는 일은 신비롭습니다. 이를 두고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미메시스(mimesis)’라고 했어요. 미메시스란 진짜를 원본 삼아 진짜처럼 모방하는 일이라고 정의할 수 있어요.

 

그림뿐만 아니라 조각, 음악, 시까지 모든 예술은 실재의 대상과 현실을 가상의 공간 속으로 옮겨 놓는 미메시스일 수밖에 없죠. 그때 예술은 착각과 혼동을 일으키는 절묘한 속임수의 기술이 된답니다.

 

플라톤은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며 손가락으로 이데아의 하늘을 가리키고 현실은 이데아의 복제이고, 미메시스는 그런 현실의 복제이므로 단순한 현실의 ‘모상’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했어요. 모방을 통해서는 이데아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이죠. 그에게 그림 속 포도는 현실의 포도, 이상적인 진짜 포도를 흉내 내고 있는, ‘포도’라고 불리는 어떤 것일 뿐이었습니다.

 

플라톤은 육체와 감각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롭게 벗어나 오로지 이성을 통해 모든 것의 참모습, 본질의 이데아를 탐구해야 한다며, 『국가』라는 대화편에서 자신이 그리는 이상적인 국가(polis)에서 예술적 미메시스를 모두 추방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했어요.

 

플라톤의 국가에서 쫓겨난 예술가들을 따뜻하게 받아들인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국가였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며 ‘행동하는 인물의 재현’이라는 ‘시학’의 차원에서 있음 직함의 개념과 미메시스를 연결했어요. 그는 『정치학』 8권, 『시학』 4권에서 모방과 흉내는 학습에 도움이 된다고 했답니다. 미메시스는 인간 고유의 학습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죠.

 

미메시스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긍정적인 시각은 일상 수준에서 예술의 지평으로 옮겨갑니다. 원상과 모상, 실재와 작품 사이에는 거리가 있어요. 그 차이와 거리를 긍정적으로 보면 그것은 대상에 있는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알짜만 보여준다고 할 수 있어요.

 

예술적인 미메시스란 바로 그 거리의 필터를 이용해 무언가를 걸러내 버리고 특정한 무언가를 뽑아내 응집시키는 정제와 정화의 작업이랍니다.

 

화가, 작가, 예술가는 가려진 대상의 ‘순수한 형상’을 포착하고 대상의 가장 본질적인 것, 가장 핵심적인 것, 가장 필연적인 것, 가장 인상적이고 강렬한 것을 뽑아내 화폭 위로 가져와 재현, 즉 ‘리프레젠테이션(representation)’ 해요.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변치 않는 본질이 있다는 믿음은 예술의 본질을 미메시스로 정의하는 서구다운 전통으로 이어져 왔어요.



# 알바루 시자의 건축 작품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은 건축물 그 자체로도 예술작품입니다. ‘미니멀리즘의 극치’, ‘빛과 공간의 환상적인 조화’란 평가를 받고 있어요. 이름대로 대상의 본질을 돋보이게 하는 다양한 규모의 전시 공간이 한 덩어리에 담긴 설계가 돋보입니다.

 

미메시스의 첫인상은 ‘하늘에서 흐르는 곡선’이에요. 대부분 직선으로 이어져 있는 다른 건물과 달리 창을 제외하고는 직선이 없어요. 건물은 아름답게 휘어져 있답니다. 누군가는 두꺼운 책을 펼쳐 세워놓은 것 같다고 하고, 이곳을 설계한 알바루 시자(Alvaro Siza)는 ‘여인이 앉아있는 모습 같다’고 했어요.

 

‘모더니즘 건축의 마지막 거장’으로 불리는 포르투갈 건축가 알바루 시자는 외형적 화려함보다는 사용자를 배려한 기능을 추구하는 건축가로 알려져 있죠. 1992년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았고, 2002년과 2012년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수상했습니다.

 

출판사 ‘열린책들’의 홍지웅 대표는 2005년 포르투갈과 영국을 다니며 보아 노바 레스토랑, 산타마리아 성당, 세할베스 현대미술관, 포르투 건축예술대학 등 시자의 작품을 보고 크게 감동하여 그에게 뮤지엄 설계를 맡겼다고 해요.

 

뮤지엄은 굽어 있어서 한눈에 보이지 않는데요. 얼핏 두 채로 보였던 건물은 입구에 다다라서야 잘록한 허리를 드러내요. 미메시스는 각종 해외 매체에도 소개되었습니다. 국내외 저명한 건축가와 아티스트들이 방문하며 건축가들의 성지로도 불립니다.

 

미국 건축가 피터 페레토는 “미메시스는 방문객에게 다양한 개념을 덧입히는 건축물이다. 건물을 처음 대했을 때 볼 수 있는 꽉 막힌 듯한 외관은, 모퉁이를 돌아 들어가면서 커다란 빈 곳으로 바뀐다. 바깥에서 보이는 견고함은 정문을 들어서면서 텅 빈 물속처럼 변한다”라고 썼답니다.

 

흰색에 가까운 연회색 빛 벽면으로 둘러싸인 건물에는 그 흔한 간판이나 전시 현수막도 걸려 있지 않아요. 벽면의 단조로움은 곡선이 생동감을 선사하며 오묘한 조화를 이루고, 단순한 벽면 덕분에 곡선의 날렵함이 더욱 눈에 띄어요.

 

미메시스는 층 구분이 명확하지 않는데요. 1층 로비에서 2층을 바라볼 수 있고, 3층에서 1층 로비를 내려다볼 수도 있답니다. 공간이 나뉘어 있으면서도 하나의 공간이기도 한 셈이죠.

 

이것은 건물 내에 기둥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가능해요. 가운데 벽이 안쪽으로 휘어져 들어와 기둥 역할을 대신해서 기둥 없이도 지붕을 지탱할 수 있는 것이랍니다.



# 빛이 선사하는 예술의 향연

처음 뮤지엄에 들어서면 조금 침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빛으로 미술관’이라는 콘셉트로 자연광으로만 명암이 드러나기 때문이에요. 알바루 시자의 건축 작품은 자연광을 중시합니다. 조명을 거의 사용하지 않아요. 산타마리아 성당도 전등을 사용하지 않고 창문으로 들어오는 자연광을 이용했답니다.

 

실내 천장에 조명을 설치한 듯한 빛은 사실 자연광입니다. 뮤지엄 안은 다양한 형태와 높이의 창으로부터 들어오는 자연광이 가득해요. 흰색의 다채로운 곡면 벽과 만난 자연광은 은은하면서도 더욱 더 풍요로워집니다. 조명이 있는지 천장을 훑어볼 정도로 밝죠.

 

하지만 자연광을 그대로 내부에 들이지는 않았는데요. 지붕에 창을 만들어 빛을 내부로 끌어들였어요. 천장 아래에는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을 만큼 큰 공간을 만들어 그 아래에 이중천장을 하나 더 달아 놓았답니다. 자연광은 이중천장에 반사돼 실내로 들어오고, 반사된 빛은 또다시 내부 벽에 비춰 은은한 분위기를 자아내도록 했어요. 자연광마저 간접조명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죠.

 

외관과 마찬가지로 내부 역시 흰 벽면의 단조로움에 곡선 구조가 리듬감을 불어넣고 있는 데다가 전시 작품도 널찍하게 간격을 두고 걸어 놓아서 여백이 많은 편입니다. 그런 점들 덕분에 작품 하나에 오랜 시간 집중하며 감상할 수 있어요.

 

시자의 의도대로 미메시스에는 그날의 날씨와 시간에 따라 전시공간의 분위기도 달라지는 마법이 펼쳐져요. 언제 가느냐에 따라 그림자가 길어지기도 하고 짧아지기도 하면서 흰 여백에 무늬를 수놓는답니다.

 

구름이 지나는 날이면 한 작품을 보고 있는 동안에도 변화하는 빛에 따라 작품의 분위기와 온도가 달라지는 경험을 할 수 있어요. 이쪽 창문에서 들어오는 빛, 저쪽 창문에서 지나가는 구름에 따라 달라지는 빛의 변화가 전시된 그림에 색다른 해석을 불러오는 것이죠.

 

여기서 하나 궁금한 것이 생깁니다. 어두운 날이나 밤에는 작품을 어떻게 볼까요? 시자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홍 대표는 시자와 서울 시내의 한 미술관을 관람하고 저녁 식사 자리에 마주 앉았어요. 시자는 불편한 표정으로 “미술품들이 인공조명 아래 놓인 채 모욕을 당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답니다.

 

홍 대표가 물었어요. “조명을 사용하지 않으면 날씨가 좋지 않거나 밤에는 어떻게 전시하죠?” 시자가 답했어요. “안 보여주면 됩니다!” 그만큼 자연 그대로의 빛 아래에서 작품을 있는 그대로 감상하길 바란다는 뜻이겠죠.

 

미메시스에서는 이처럼 계절과 시간에 따라 매번 다른 작품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인데, 자연광에 의존하다 보니 개관은 오전 10시로 동일하지만, 폐관 시간은 계절에 따라 다르답니다. 여름에는 오후 7시, 봄가을과 겨울에는 오후 6시에 문을 닫아요.



# 내면으로 빠져드는 공간, 그리고 미니멀리즘

2층에서 3층으로 올라가는 나무 계단은 하얀 벽면 사이에서 따뜻해 보입니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면 하늘에 구멍을 뚫은 듯한 동그란 천창이 보여요. '빛과 공간의 마술사'로 알려진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의 작품이 자연스레 떠오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를 맡은 원주 ‘뮤지엄 산’의 제임스 터렐관에서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죠.

 

홍 대표도 안도 다다오와 제임스 터렐이 함께 작업한 일본 나오시마의 지추미술관을 둘러보고 미메시스에도 터렐의 작품을 설치하고 싶었다고 해요. 터렐은 빛을 ‘도구’가 아닌 '빛 그 자체'에 중점을 두는 작가죠. 터렐의 작품을 '체험'한 이들은 그가 만들어낸 빛과 공간을 통해 자기 내면으로 빠져든다는 소감을 밝히곤 해요.

 

그의 대표작인 ‘스카이 스페이스(Sky Space)’는 날씨에 따라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에요. 천장에 뚫린 동그란 창문을 통해 시시각각 변하는 빛, 그리고 그 빛을 통해 자신의 내면으로 더욱 침잠해 들어가는 과정을 경험할 수 있답니다.

 

알바루 시자가 설계한 건축물들은 이중천장처럼 모두 ‘이중벽’으로 만들어져 있어요. 벽에 설치물을 넣고 그 위에 벽을 하나 더 세우는 방식이죠. 콘센트, 스위치, 비상등, 화재경보 장치 등 설치물을 벽을 파내 안으로 숨겼습니다.

 

시자는 혹시라도 설치물이 보이는 것을 막기 위해, 설계 입면도에 사람을 그려 넣고 시선이 어느 쪽으로 닿는지 시뮬레이션까지 합니다. 그만큼 불필요한 것은 최대한 숨기려는 노력이에요. 시자의 미니멀리즘이 극대화되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덕분에 미메시스에서는 고개를 어느 쪽으로 돌리든 유려한 곡선과 직선이 만나는 풍경이 한 폭의 추상화처럼 보입니다. 자연에서 나오는 빛을 따라 시선을 돌리다 보면 다른 차원의 공간에 들어온 것 같아요.



# 보고 느끼고 체험하며 즐기는 예술, 카페와 북앤아트숍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의 1층 로비는 널찍한 카페로 꾸며졌어요. 통유리를 통해 미메시스 야외 뜰이 훤히 내다보이는 실내 카페와 테라스에서 커피, 생과일주스, 허브티 등을 즐길 수 있습니다.

 

로비의 곡선형 벽을 따라 맞춤 제작한 책장에는 ‘열린책들’이 출간한 책들이 빼곡하게 꽂혀 있습니다. 카페에서는 비치된 ‘열린책들’의 책들을 도서관처럼 편히 볼 수 있어요.

 

카페와 한 공간에 있는 ‘북앤아트숍’에서는 ‘열린책들’이 설립한 예술 전문 출판사 ‘미메시스’의 책들을 할인된 가격에 구입할 수 있어요. ‘미메시스’는 단순히 비평가들이 쓴 담론보다는 예술가들의 삶의 혼이 담긴 자서전, 창작 노트, 일기, 예술 에세이 등을 위주로 출간하고 있습니다.

 

‘미메시스’는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 책의 속살은 실로 꿰매는 전통 제작 방식을 고수하죠. 이러한 고집은 디자인 문구를 만드는 데도 발휘됩니다. ‘미메시스’는 정교한 디자인에 높은 품질의 디자인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내놓고 있어요.

 

미메시스는 출판과 건축, 예술의 만남을 아우르는 문화공간으로서의 미술관을 지향하며 다양한 예술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어요. 또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신진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구매할 수 있는 아트마켓도 열고 있답니다.



#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방문 팁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은 강남역 기준으로 1시간 정도면 갈 수 있는 파주출판단지 내에 있습니다. 인근에 다른 출판사의 도서관과 카페, 대형 아울렛도 있는 만큼 함께 둘러볼 곳을 미리 계획하고 방문하면 알찬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미메시스는 인공조명 없이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빛으로 미술관>을 지향하는 만큼 계절에 따라 관람 시간이 변한다는 점 잊지 말고 미리 확인 후 방문하는 것이 좋겠죠?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 주소 : 경기도 파주시 문발로 253 (파주출판도시)

• 개관 시간

- 전시, 카페, 북앤아트숍 (수-일) (매주 월, 화요일 휴관)

- 11월부터 4월까지 10:00 – 18:00

- 5월부터 10월까지 10:00 – 19:00

• 관람 요금 : 성인: 7,000원 / 학생(8~18세) : 5,000원

• 문의 : 031-955-4100/

 

 

미메시스는 자연광 덕분에 시시때때로 변하는 빛의 향연 속에서 전시 관람 이상의 즐거움을 누리기에 충분한 공간이에요. 깊어져 가는 가을, 최소한의 것만 남긴 알바루 시자의 건축 철학처럼 미메시스에서 우리 삶에서도 거추장스러운 것은 모두 빼고 가벼워지는 시간을 가져 보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