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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 사위에게 끓여준다는 겨울 매생이의 효능!

매생이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생생한 매생이는 여전히 우리에게 다소 낯선 것 같아요. 초록의 실오라기 같은 것이 덩어리져 있는 모습은 겨울철이면 시장에서 종종 보니 익숙하다 쳐도, 막상 매생이를 만져보면 그 기묘한 촉감에 당황스럽기 일쑤예요. 흐물흐물하고 진득한데 물처럼 흘러버리는 이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좋을까 싶죠.

글_김민경(푸드 칼럼니스트)

 

 

조선시대 실학자 정약전이 쓴 <자산어보>에 매생이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모양은 ‘누에가 만든 비단실보다 가늘고, 쇠털보다 촘촘하며, 검푸른 빛깔을 띠고 있다.’, 맛은 ‘국을 끓이면 연하고 부드러우면서도, 그 맛은 매우 달고 향기롭다.’ 조선시대부터 누군가는 먹었던 매생이가 정작 우리 식탁에서 환영받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어요. 사실 매생이는 양식 김에 붙어 자라는 골칫거리 취급을 내내 받아 왔거든요.

 

깨끗하고 매끈한 양질의 김을 생산하기 위해 김에 붙은 매생이는 죄다 뜯어내야 했고, 이걸 모아 어농부들은 국을 끓여 먹곤 했답니다. 그러다 2000년 즈음부터 매생이의 건강하고 맛좋은 면모가 알려지면서 매생이도 드디어 자신만의 어엿한 양식장을 갖게 되었어요. 매생이는 아주 까탈스러워서 깨끗한 환경에서만 자라며, 살을 에는 삭풍을 맞으며 한겨울에 무럭무럭 자라요. 매생이는 겨울부터 초봄까지는 싱싱하게 맛볼 수 있어요.

 

잠깐, 여기서 매생이랑 비슷한 몇 가지를 알아볼까요? 우선 파래가 있습니다. 청태라고도 불렸던 파래는 매생이보다 색이 어둡고, 가닥도 납작하며 훨씬 굵어요. 바다내음 같은 특유의 향도 진하며 맛도 더 배릿한 편이며 시원해요. 생파래는 매생이처럼 뭉쳐져 있어도 자세히 보면 다른 점이 금세 보인답니다.

 

그리고 감태가 있어요. 감태도 매생이처럼 돌돌 덩어리지어 팔기도 하지만 요즘에는 김처럼 가공한 마른 감태가 더 흔하죠. 감태는 파래와 매생이의 중간 정도 굵기에요. 향이 은은하면서 달착지근한 특유의 감칠맛이 나요. 감태는 파래와 매생이처럼 양식이 되지 않기에 시장에서 생물을 만나기 쉽지 않습니다. 김의 옛 이름 중 ‘해태(海苔)’라는 게 있는데 바로 ‘바다의 이끼’라는 뜻이에요. 청태(파래), 감태 역시 바다의 이끼를 색과 맛으로 표현한 것인가 봅니다.

 

매생이는 순우리말 이름으로 ‘생생한 이끼를 바로 뜯는다’라는 예쁜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싱싱한 매생이 한 덩어리는 한 ‘재기’라고 부르며 400g 정도 됩니다. 한 덩어리만 사도 3~4명이 2번 정도 요리해 먹을 양이에요. 매생이는 무척 가늘고 미끄러워 손에 쉽게 잡히지 않으니 반드시 체에 담아 물에 헹구세요. 그렇지 않으면 귀한 매생이를 몽땅 놓칠 수 있답니다. 조물조물 골고루 헹군 매생이의 물기를 털어내고 요리에 사용하면 됩니다. 한번 먹을 양만큼씩 통에 나눠 넣고 냉동 보관해도 됩니다.

 

매생이는 일단 시원한 국물맛을 내기로 유명합니다. 다만, 매생이는 한번 뭉치면 잘 풀어지지 않으니 국물에 넣을 때 살살 풀어가며 넣으세요. 무엇보다 매생이가 들어간 음식은 뜨거워도 김이 올라오지 않기 때문에 먹을 때 조심해야 합니다. 무심코 후루룩 떠먹었다간 입천장이 홀라당 벗겨지기 일쑤예요. 매생이 국은 ‘미운 사위 국’이라는 재미난 별명이 있어요. 딸을 데려다가 고생시키는 미운 사위에게 뜨거운 국 한 사발로 애먼 친정엄마의 마음을 표현했나 봅니다. 그런데 한편 매생이라는 식재료가 지닌 건강한 측면을 보면 역시 사위 사랑은 장모인가 싶기도 해요.

 

매생이는 콩나물보다 아스파라긴산이 3배나 많아 숙취와 피로 해소에 그만이에요. 게다가 매생이 특유의 미끌미끌함은 알긴산이라는 섬유질 성분인데, 바로 이 알긴산이 몸속 노폐물, 나트륨, 콜레스테롤 등을 배출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식이섬유가 풍부해 장운동을 활발히 하여 변비 해소에 좋고, 철분, 비타민, 미네랄, 칼슘 등을 풍부하게 지니고 있지만, 칼로리는 아주 낮죠. 배는 든든히 불리고 영양도 선사하지만, 살집은 키우지 않는 양질의 다이어트 식품입니다.

 

매생이 요리는 정말 간단해요. 흐물흐물 미끈미끈한 매생이를 물에 헹구는 것에 성공했다면 반 정도 한 겁니다. 떡국, 만둣국, 칼국수, 수제비 등을 만들 때 불을 끄기 직전에 매생이 한 줌을 잘 풀어 넣으세요. 냉기가 가시고 매생이가 골고루 풀어졌으면 바로 불에서 내려 조심조심 먹습니다. 매생이 한 줌 풀었을 뿐인데 시원하고 감칠맛이 밴 국물을 만날 수 있어요. 누룽지나 죽을 끓일 때도 마지막에 매생이 한 줌 넣어도 맛있죠. 이때 버섯이나 굴, 조갯살, 새우살 같은 것을 함께 넣어 끓이면 근사한 영양죽 한 그릇을 뚝딱 만들 수 있어요.

 

매생이에 부침가루나 감자가루를 넣고 개어 전을 부쳐도 맛있죠. 이때 씹는 맛을 조금 살리고 싶다면 감자채나, 양파나 당근 등을 썰어 넣어도 좋고, 오징어를 송송 썰어 섞어도 좋습니다.

 

한식을 벗어나도 매생이는 빛을 발합니다. ‘알리오올리오’처럼 마늘과 오일로 맛을 낸 심플한 파스타에 매생이를 곁들이기도 하고, 치즈 듬뿍 들어간 리조토에도 매생이를 곁들여 휘리릭 섞어 먹기도 합니다. 맛이 비리지 않고 깨끗하며, 잠깐만 열기를 가해도 시원하고 달큰한 맛이 금세 우러나기에 어떤 재료와 어우러져도 개성 있는 맛을 만들어내죠. 마지막으로 가장 좋아하는 궁합은 라면에 매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안 그래도 맛 좋은 라면에 매생이 한 줌 넣어 끓여 내면 해장, 술안주, 국수, 국물 요리, 밥반찬이 되어 줍니다.

 

요즘에는 매생이를 한 번에 먹기 좋게 동결건조한 블록 제품이 다양합니다. 요리 마지막에 한 조각씩 어디든 넣고 끓이면 수월하게 바다의 맛과 영양을 더할 수 있죠. 단, 블록 매생이도 뭉치고, 뜨겁기는 마찬가지이니 먹을 때 ‘미운 사위’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