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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 속 별이 빛나는 해변, 에이스트릭트(a'strict)

50여 일 넘게 이어진 장마가 끝나자마자 초강력 태풍이 연거푸 한반도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도 좀처럼 잦아들지 않고 있죠. 휴가나 여행을 떠나기는커녕, 마음 편히 외출하기도 어렵고 마주 앉아 식사하는 것조차 꺼려지는 요즘입니다. 지쳐버린 몸과 무기력한 마음에 힐링이 필요할 때죠. 먼 길을 떠나지 않고도 서울 한복판에서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잠시 번잡한 생각을 잊을 수 있다면 어떨까요? 생생한 바다를 옮겨놓은 듯한 디지털 미디어아트 ‘별이 빛나는 해변(Starry Beach)’에서라면 가능하답니다.

 

 

# 3D 디지털 미디어아트 ‘Starry Beach’

캄캄한 블랙박스 안으로 들어서면 집채만 한 푸른 파도가 넘실댑니다. 시원한 파도 소리까지 겹쳐 어둡고 차가운 겨울 바닷속에 들어온 듯해요. 부서지는 물거품부터 파도가 몰아치는 소리까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면 신발이 모두 젖어버릴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랍니다.

 

가로 13m, 높이 6m의 검은 벽을 타고 힘차게 위로 뻗어 나가는 파도는 사그라들었다 다시 솟구치기를 반복하고, 바닥으로는 쉼 없이 밀물이 밀려왔다 사라집니다. 중력을 거스르는 파도의 힘, 공간의 제약을 넘어 이쪽 끝과 저쪽 끝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바다의 무한함, 시각과 청각을 압도하는 장대함이 거센 파도로 둘러싸인 초현실 같은 풍경을 선사해요.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는 대형 멀티미디어 설치 작품 ‘Starry Beach(별이 빛나는 해변)’는 미디어아트 그룹 에이스트릭트(a'strict, art+strictly)의 아이디어와 기술, 그리고 예술이 융합된 입체적인 3D 미디어아트에요.

 

실제 바다에서 찍은 파도 영상이 아니라 컴퓨터 그래픽인데요. 4개월에 걸쳐 물의 속성을 분석한 에이스트릭트는 가상현실에서 물을 만든 뒤, 물결 세기를 정밀하게 계산해 시뮬레이션을 거쳐 물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답니다.

 

에이스트릭트는 물의 속성 자체를 조금 더 정확하게 전달하고 싶어 위에서 내려다보는 파도 물결과 모래 움직임을 섬세하게 살리는 부분에 공을 들였어요. 그리고 이 이미지를 디지털 멀티미디어 그래픽 기법으로 합성해 3분짜리 영상으로 완성했죠.

 

영상을 자세히 보면 같은 모양의 파도가 없을 정도로 파도 패턴을 다양하게 변주하며 치밀하게 제작한 것을 알 수 있어요. 실감 나는 파도 소리만 실제 바다에서 녹음했는데, 물결의 강도와 리듬에 맞춰 사운드를 편집했답니다.

 

 

# 아트테크 팩토리 ‘디스트릭트’의 오픈 유닛 ‘에이스트릭트’

<출처 : 유튜브 d’strict 채널 영상 캡쳐>

미디어아트의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하기 위해 에이스트릭트를 결성한 곳은 아트테크 팩토리 ‘디스트릭트(d'strict)’에요. 아트테크 팩토리는 팝 아티스트 제프 쿤스, 무라카미 다카시 등이 현대미술에서 선보였던 집단 생산 체제의 개념이랍니다. 디스트릭트는 지난 10여 년간 다양한 디지털 미디어 기술을 활용해 감각적인 융·복합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해왔어요.

 

‘동시대를 읽어내고 시대가 원하는 바를 실현해내는 것이 곧 예술혼이자 예술가의 정신’이라는 브랜드 철학과 탄탄한 기술력을 기반으로, 디스트릭트는 다양한 인터페이스와 디스플레이를 결합한 콘텐츠 제작을 통해 특정 공간에 최적화된 사용자 경험(UX)을 디자인해 왔어요. 경기도 고양시 일산 킨텍스의 4D 체험장 ‘라이브파크’가 대표적이고, KT, YG엔터테인먼트와 협력해 홀로그램 가상 공연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출처 : 유튜브 d’strict 채널 영상 캡쳐>

지난 5월에는 서울 삼성동 코엑스 아티움의 대형 LED 스크린에 미디어아트 ‘WAVE’를 구현했답니다. 착시 현상으로 입체감을 표현하는 아나몰픽 일루션(anamorphic illusion) 기법으로 평면의 스크린을 거센 파도가 요동치는 입체적인 공간으로 탈바꿈시켰어요.

 

교통량과 유동 인구가 많은 서울 도심이라는 장소적 맥락과 팬데믹이라는 시대적 상황에서, 사람들은 상상하지 못했던 직관적이고 강렬한 시각 예술에 매료되었어요. 넘실대는 물결을 바라보며 벗어나고 싶은 지금 이 세상 너머의 세계를 잠시나마 경험할 수 있었죠.

 

‘WAVE’ 작업은 패티가 지글거리는 햄버거 CF와 최신 스마트폰 CF가 점령한 옥외 광고판에 디지털 공공 미술을 선보여 신선한 반향을 일으켰어요. 국내뿐 아니라 CNN에 소개될 정도로 외신에서도 화제가 됐답니다.

 

디스트릭트 이성호 대표는 ‘WAVE’를 통해 상업 디자인을 하면서도 그 결과물이 예술적 가치를 담아낼 수 있다는 경험을 했다며, “우리가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을 활용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위안을 줄 수 있다면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해요.

 

그리고 광고주의 요청대로 제작하는 상업 디자인 회사 안에서 개인의 창의성을 제대로 발휘하기 힘들다고 판단했고, 아무 제한 없이 자유롭게 창작할 환경을 만들고 싶어 미디어아트 브랜드 ‘에이스트릭트’를 만들었죠.

 

에이스트릭트는 현재 기획·개발·시각·영상·공간·시스템·운영 디자인 등 다양한 전문가 70여 명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강렬한 시각적 경험을 토대로 한 미디어아트에 관심 있는 크리에이터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오픈 유닛입니다. 현대미술에서 예술 집단을 구성하는 방식을 열어둔 새로운 시도라고 할 수 있어요.

 

디스트릭트는 오는 9월 25일 제주도 애월에 ‘ETERNAL NATURE(영원한 자연)’를 주제로 감각적인 미디어아트 작품들을 관람할 수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몰입형 아트 전시장 ‘아르테 뮤지엄(Arte Museum)’의 개관을 앞두고 있어요.

 

 

#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화두,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물이 가진 다양한 속성과 풍부한 음향을 재료로 삼아, 생성되고 사라지는 에이스트릭트의 ‘파도’는 진짜인 듯 가짜인 매트릭스 세계를 극대화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이 작품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화두로 대두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을 통한 미디어아트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죠.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인터넷 혁명 시대라고 불리는 1990년대 처음 등장한 개념으로, 디지털 기술을 사회 전반에 적용해 전통적인 사회 구조를 혁신한다는 뜻을 담고 있어요. 이러한 변화는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언택트 기술의 수요 증가와 맞물려 점점 더 가속화하고 있어요. 코로나19라는 예측하지 못한 변수가 더욱더 빠른 사회 변화 속도를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죠.

 

<출처 : a’strict>

에이스트릭트의 공감각적 가짜 ‘파도’ 작품은 스펙터클한 아름다움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색다른 사유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현대미술이 추구하는 지점과도 만납니다.

 

디스트릭트의 작업은 최근 예술과 상업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는 가운데 다시금 그 끝은 어디인가를 묻고 있어요. 디스트릭트의 미디어아트는 미술 작가들이 보여준 미디어 파사드 작품보다 제공하는 경험적인 쾌감이 크고 전혀 다른 공간에 와있다는 몰입형 경험을 선사해요.

 

대중이 즐길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에이전트가 만든 일종의 ‘기획물’에 갤러리의 아우라를 입힘으로써 서로 윈윈이 될 수 있다면, 관련 시장이 형성되고 비슷한 사례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디스트릭트의 미디어 기술과 현대미술이 대중 곁으로 다가가는데 주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돼요.

 

퍼블릭 미디어아트로 새로운 소통 방식을 제시하고 있는 이번 전시는 기술력과 감수성 그리고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넘는 새로운 미디어 아티스트의 출현을 알리는 계기가 될 것 같아요.

 

 

# 에이스트릭트 ‘Starry Beach’ 전시관람 팁

에이스트릭트 ‘Starry Beach’는 서울 삼청동 ‘국제갤러리’ K3관에서 오는 9월 27일까지 무료로 전시됩니다. 별도의 예약 없이 현장 대기 후 입장할 수 있는데, 동시 관람 인원수는 10인으로 제한하고 있어요. 12시, 2시, 4시에 코로나19 방역으로 30분간 입장을 제한하기 때문에 방역 시간을 피해서 방문하는 것도 잊지 마세요.

 

전시 관람 후 K3관 뒤로 나오면 곧바로 소격동, 삼청동과 이어지기 때문에 옛 정취가 남아있는 동네를 함께 산책하는 계획을 세워봐도 좋을 것 같아요.

 

밀려오는 푸른 파도와 부서지는 물거품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으니, 어느새 잡념이 사라지고 위로를 얻었습니다. 에이스트릭트는 코로나 시대에 사람들이 어떤 것을 좋아할까 고민하다 대척점에 있는 자연을 떠올렸다고 해요. 기술의 힘을 빌리긴 했지만 ‘자연’이 가진 본연의 매력은 감춰질 수 없는 듯합니다. 밀려가는 파도처럼 코로나19도 어서 사라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