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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발한 봄꽃이 지기 전에 조개부터 맛보자

글_김민경(푸드 칼럼니스트)
조갯살에는 철분이 풍부하고, 몸속에 쌓인 노폐물을 배출하는 성분이 있다. 때문에 요즘처럼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릴 때 우리 몸에 꼭 필요한 제철 음식이다. 무엇보다 봄 조개의 풍미를 끌어 올리는 건 봄날의 풍경이다. 조개향 그득한 봄 요리를 앞에 두면 봄꽃처럼 하늘하늘 마음이 들뜬다.

서울 공기가 여전히 차갑던 3월의 끝자락에 부산을 찾았다. 부산역 광장에는 온 몸을 휘감는 바람이 불고 있었다. 하지만 바람에 찬 기운이 하나도 없어 입고 간 겨울 외투가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이곳도 미세먼지로부터 자유롭지 않았지만, 내리쬐는 한낮의 햇살은 충분히 따뜻하니 그걸로 됐다. 시내를 지나 해운대까지 가는 동안 동네 골목 여기저기 피어난 봄꽃이 보인다. 연분홍 구름이 살포시 내려온 것 같기도 하고, 양떼가 오글오글 산을 뒤덮은 것 같기도 하다. 기차를 타고 겨우 3시간 남짓 달려온 것뿐인데 남쪽엔 이미 봄기운이 완연했다.

 

봄 조개 중에 특히 맛이 일품인 ‘백합’

붉디붉은 동백이 똑똑 떨어지고 매화, 목련, 개나리, 벚꽃 등 봄꽃이 만개하면 조개의 맛도 함께 오른다. 봄에 먹는 조개 중 특히 좋아하는 것은 백합이다. 백합은 더위가 시작되면 산란을 하기 때문에 그 전에 맛보아야 한다. 기껏해야 한두 달 남짓한 시간. 이때를 놓치면 선선한 가을까지 기다려야 제 맛을 볼 수 있으니 마음이 급할 수밖에. 반듯하고 정갈한 모양을 한 백합가운데 큰 것은 어른 손바닥만 하다. 껍데기 바깥에 나이테와 함께 백 가지 무늬가 있어서 백합이라고 하며, 날 것으로 먹어도 맛있기에 생합, 크기가 커서 대합으로 불리기도 한다. 미백색의 껍데기 안쪽에는 통통하게 차오른 연한 살구빛 조개살이 담겨 있다.

 

백합은 개펄에서 자라지만 다른 조개처럼 먹기 전에 해감을 하지 않아도 된다. 채취 후 깨끗한 물에 헹궈 껍데기를 열어봐도 모래나 진흙 한 톨 없이 깨끗하다. 생 백합 살은 부드러우면서도 씹히는 맛이 매력적이고, 다른 조개에 비해 비린 맛이 적다. 개인적으로 생 조갯살의 비린 맛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백합만은 기꺼이 여러 점 집어 먹곤 한다. 한입베어 물면 바다의 짭조름함이 입 안 가득 퍼지는가 싶더니 이내 조갯살 특유의 달착지근함이 혀를 파고든다. 마치 파도가 들이치듯 두 가지 맛이 반복되니 입 안은 끝도 없이 즐겁다. 크기가 작은 생 백합은 살을 발라 푸성귀에 얹어 식초와 고추장과 함께 버무려 먹는다. 봄 입맛을 돋우는데 이만한 요리가 없다.

 

백합은 간단하게 조리할수록 맛있다. 석쇠에 구울 때는 쿠킹호일로 감싸야 한다. 호일로 감싸지 않고 구우면 조갯살이 탱탱하게 익어 씹는 맛이 좋지만 감칠맛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반면 호일로 감싸면 조갯국물이 빠져나가지 않아 살도 부드럽고 씹는 맛도 더 좋다. 집에서는 구이를 하기가 쉽지 않으니 쿠킹호일로 감싸 쪄 먹어도 좋다. 백합탕도 빼놓으면 섭섭하다. 찬물에 넣고 푹 끓이면 백합이 커다란 입을 쫙쫙 벌린다. 여기에 다진 마늘, 청양고추, 홍고추, 대파 등을 취향대로 넣고 끓이기만 하면 끝. 아무것도 넣지 않아도 뽀얀 우윳빛 국물이 깊고 개운한 맛을 낸다. 조갯살을 다 먹은 뒤에는 수제비나 칼국수를 넣어 즐길 수 있다. 이때 봄동이나 노란 알배추 몇 잎 넣고 끓이면 국물이 더 달고 시원해진다. 백합은 주로 서천, 부안, 영광, 신안 등 서해의 개펄에서 많이 잡힌다. 현지에서 먹는 싱싱한 맛이 남다르니 꽃놀이를 겸하여 서쪽 바다로 가 보는 것도 좋겠다.

 

내장까지 고소하게 즐기는 키조개

백합 뿐 아니라 봄 조개는 대체로 맛있다. 하나만 요리해도 둘이 먹을 만큼 큼직한 키조개는 회로 먹을 것을 추천한다. 키조개의 흰 관자의 맛이 깔끔한데 반해 날개(외투막) 부분은 조개 특유의 감칠맛이 쪽쪽 배어난다. 관자와 날개를 떼어내고 남은 부분은 구워 먹는다. 내장은 절대 버리지 말고 무염버터와 송송 썬 쪽파, 편 썬 마늘, 붉은 고추 몇 쪽을 넣어 고소하게 익혀 먹자. 비단처럼 색이 고운 명주조개는 노랑조개, 갈미조개, 명지조개로도 불린다. 감칠맛이 있고 크기도 여러 가지로 요리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죽과 밥, 탕과 국, 구이와 찜, 무침, 전, 칼국수 등에 두루 잘 어울린다. 무엇보다 맛이 달아 쌉싸래하고 향이 진한 봄나물과 어우러지면 궁합이 제대로다.

 

▲섬진강 근처에서 맛볼 수 있는 재첩국과 재첩무침, 재첩비빔밥

 

봄의 절정을 알리는 섬진강 재첩국

마지막으로 봄 풍경이 절정을 이룰 때 섬진강변에서 맛볼 수 있는 재첩도 빼놓을 수 없다. 재첩은 생김새는 바지락과 비슷하지만 크기는 훨씬 작다. 재첩국은 재첩을 한가득 넣고 끓인 것으로,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바다 조개가 선사하는 굵직한 개운함은 없지만 섬세하고 잔잔함이 느껴진달까. 무엇보다 손톱만큼 작은 조개를 일일이 해감하여 껍데기를 벗기고 끓이는 정성만 보더라도 참 대단하다. 삶은 재첩은 무쳐 먹기도 하고, 전으로 지져 먹기도 한다. 재첩국은 서울 도심에서도 먹을 수 있지만, 봄에는 봄꽃이 흐드러지게 핀 섬진강변에서 꼭 한 번 맛보길 권한다. 일기예보를 보니 곧 봄비가 한차례 세게 내린다고 한다. 이르게 핀 남쪽의 봄꽃은 지겠지만 조개는 더 맛이 오를테니 서둘러 여행 계획을 세워보자.

 

▲부산 자갈치 시장 풍경

 

 

 

"너와집"


샤브샤브로 유명한 백합 전문점. 백합구이와 탕, 샤브샤브를 맛볼 수 있는 세트가 있다.

메뉴 : 평일 점심코스 18,000원부터

위치 : 서울시 강남구 삼성로 543(삼성점)

문의 : 02-557-8107

 

"갯벌의 진주"


강남의 소문난 조개구이 맛집으로, 직장인들의 회식 장소로 유명하다.

메뉴 : 조개구이 4만5천 원, 조개찜 4만 9천원

위치 : 서울시 강남구 학동로2길 55

문의 : 02-544-8892

 

"뱃놈"


조개껍질 위에 살짝 얹어 주는 스파게티가 별미다. 푸짐한 양으로 모임 장소도로 제격.

메뉴 : 뱃놈 조개구이 3만9,900원

위치 : 서울 광진구 광나루로19길 9

문의 : 010-4208-5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