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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상 음식이 주는 특별한 의미

글_ 박정배(음식 칼럼니스트)
1월 24일은 DB그룹의 창립기념일이다. 해마다 새해 시작과 함께 맞이하는 DB의 생일은 50주년인 올해 더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특별한 날은 특별한 음식으로 축하하는 것이 당연지사. 우리 선조들은 생일이 되면 특별한 음식을 준비해 축하의 마음을 전했는데, 음식마다 지닌 의미 또한 남다르다.


전통 생일 상에 담긴 메시지


평균 수명이 30살이 채 안되던 조선시대에는 생일이 매년 살아있음을 축복하는 작은 축제였다. 때문에 생일이면 미역국과 귀한 쌀로 만든 갖가지 떡을 먹었다. 특히 탄생 후 처음 돌아오는 생일인 ‘돌’부터 환갑, 고희연, 팔순까지 생일을 기념하는 잔치를 성대하게 치른 것만 봐도 무병장수에 대한 염원이 얼마나 컸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생일은 단순히 탄생이 아니라 태어나 지금까지 무탈하게 살아온 이에 대한 격려와 응원, 축하의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저마다 다른 뜻을 지닌 생일 떡


이처럼 생일에 대한 의미가 각별했으니 이날 먹는 음식들도 귀한 것들만 골랐다. 생일상을 대표하는 음식은 떡이다. 아마 쌀이 귀한 시절이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생일상에 주로 올린 떡은 백설기, 수수팥경단, 인절미, 무지개떡 등이다. 특히 돌상에 빠지지 않는 백설기는 아기가 정결하기를 바라는 마음과 장수(長壽)를 기원하는 음식이다. 수수팥경단은 귀신으로부터 사람을 보호한다는 의미다. 예부터 붉은 팥은 귀신이 싫어하는 음식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동짓날 팥죽을 먹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다.



오색(五色)송편도 생일상의 단골 음식이다. 오행(五行), 오덕(五德), 오미(五味)와 같은 뜻을 지니며, 예쁘게 어우러진 오색송편처럼 만물과 잘 조화해 살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 또한 각색편, 색떡, 인절미, 절편 등을 만들어 주변에 베푸는 경우도 많았다. 궁중음식을 기록한 '이조궁정요리통고'(1955년)에는 “황태자나 공주의 첫돌에 각색편을 많이 만들어서 여러 집에 나누어 보내는 것으로 첫 생일을 축하한다”고 나와 있다. 두텁게 만든 두텁떡은 임금님의 탄신일을 경축하는 생일상에 빠짐없이 올랐던 음식으로, 가장 귀한 궁중의 떡으로도 유명하다.



생일상의 꽃, 미역국


떡 외에도 생일이면 꼭 챙겨먹는 음식이 있다. 바로 미역국이다. 요즘은 생일날 떡을 지어 먹는 경우는 드물지만, 미역국만큼은 꼭 챙겨 먹는다. 왜일까. 생일날 먹는 미역국은 한국의 삼신(三神) 신앙과 관련이 깊다. 삼신은 옥황상제의 명을 받아 인간세상에서 출산을 돕고, 산모와 갓난아기를 보호하며 자식을 염원하는 부인에게 아기를 점지하는 신을 말한다. 다른 말로 산신(産神)할머니 또는 삼승할망이라고도 부른다.


삼신의 어원이 삼줄(삼을 꼬아 만든 줄), 삼가르다(출산 후 탯줄을 끊다) 등인 것을 보면, 본디 ‘삼’은 임신을 뜻하는 포태신(胞胎神)을 지칭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삼신상에는 주로 쌀과 물, 미역이 올라갔다. 생명의 탄생을 관장하는 삼신상에 올린 음식이었으니, 자연스레 생일상에서도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 것이 아닐까.


뿐만 아니라 미역은 출산을 한 산모에게도 아주 좋은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이익(李瀷, 1681~1763)은 성호사설(星湖僿說)에서 “미역(海藿)이 산부(産婦)의 선약이 된다는 것은 동방의 풍속에서 중요한 처방”이라고 말했다. 생일날 미역국을 먹는 관습은 자연에서 유래된 지혜라는 의견도 있다. 조선 후기 문신이자 학자인 성대중(成大中, 1732~1809)이 쓴 청성잡기(靑城雜記)에는 “어미 고래는 새끼를 낳을 때가 되면 반드시 미역이 많은 바다를 찾아 실컷 배를 채운다”고 기록돼 있다. 여러모로 미역은 탄생, 건강을 기원하는 대표적인 식재료였던 셈이다.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생일상 음식들은 사실 저마다 그 뜻과 의미를 지닌 것들이다. 가족과 친지, 친한 이웃과 일 년에 딱 하루, 가진 것 안에서 최대한 성대하게 차린 생일상 음식을 나눠 먹으며 태어난 사람의 건강과 건승을 염원했으니, 그 온정도 적지 않은 힘을 발휘했을 것이다. 소박한 음식이지만 그 안에서 특별한 의미를 되새기는 생일상처럼, DB그룹의 창립 50주년과 창립기념일도 그동안의 노고를 자축하고 응원하는 자리가 되길 빈다.